19세기 중엽,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와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오랜 세월 소국으로 분열돼 있던 독일을 통일하는데 매진한다. 1862년에 총리가 된 비스마르크는 곧 군비확장에 박차를 가했고, 덴마크(1864년)와 오스트리아(1866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프로이센을 유럽의 강국으로 부상시켰다. 프로이센이 자국을 중심으로 북부 독일연맹을 결성해 독일 땅과 인구의 3분의 2를 소유하는 대국이 되자 국경을 맞대고 있는 프랑스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프로이센 입장에선 프랑스야말로 독일의 통일을 가로막는 마지막 장애물이었다.
이처럼 북부 독일연맹과 프랑스간의 긴장이 한껏 고조되고 있을 때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을 ‘엠스전보 사건’이 터진다. 1870년 7월 13일 빌헬름 1세가 보낸 한 통의 전문이 비스마르크에게 전달됐다. 프랑스 대사가 엠스에서 휴양 중인 자신을 찾아와 자신의 친척인 호헨촐레른가(家)의 레오폴트는 물론 그 누구도 공위(空位)로 있는 스페인 왕 후보에 추천하지 말라는 나폴레옹 3세의 뜻을 전해와 자신이 이를 정중하게 거절했다는 내용의 전보였다. 순간 비스마르크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곧 프랑스 대사가 프로이센 왕을 모욕했고, 왕도 단호하게 이를 거절한 것으로 전보의 문맥을 바꿔 언론과 외교가에 흘렸다. 비스마르크가 노린 대로 전보는 프랑스인에게는 거절당한 데 대한 분노를, 프로이센인에는 무례한 요구에 대한 적개심을 자극했다.
1870년 7월 19일 프랑스가 먼저 선전포고를 했으나 이는 비스마르크의 계략에 말려든 어리석은 결정일 뿐이었다. 9월 2일 스당 전투에서 나폴레옹 3세가 9만 명의 군인들과 함께 포로로 잡히면서 전쟁은 사실상 프로이센으로 기울었고, 프랑스는 4개월 뒤 항복했다. 빌헬름 1세는 1871년 1월 18일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제국을 선포하고 화려한 황제 대관식을 거행하며 승리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베르사유 궁전은 48년 뒤 1차대전에 패한 독일이 프랑스 등 연합국에 치욕적인 조약을 맺는 장소로 사용돼 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케했다. 전쟁후 프랑스는 유럽대륙의 터줏대감 자리에서 물러나야했고, 잡다한 왕국들의 집단이었던 게르만족은 독일제국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