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대한민국 헌법 공포

1948년은 ‘대한민국호(號)’를 진수시키기 위해 전 국민이 숨가쁘게 질주했던 한 해였다. 먼저 5월 10일 총선으로 198명의 제헌의원이 탄생하고, 5월31일 최고령자 이승만을 임시의장으로 한 역사적인 제헌의회가 개원됐다. 첫 본회의는 188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이승만을 정식 국회의장으로 선출했다. 이로써 3권분립의 한 축이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이제 대한민국의 밑그림이 될 헌법을 제정할 차례였다. 누군들 경험이 있었을까, 당연히 시행착오가 따랐다. 6월1일 국회 내에 발족한 ‘헌법 및 정부조직법 기초위원회’는 유진오 등 10명을 전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이들이 내놓은 헌법 초안은 내각책임제와 양원제였다. 대통령중심제를 원하는 이승만으로부터는 미움을 샀지만 위원회는 내각책임자를 그대로 둔 채 양원제를 단원제로 바꾸기만 하고 헌법안을 채택했다.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이승만은 분노를 드러내며 압력을 가했다. 내각책임제를 강행할 경우 자신은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것이다. 당시 이승만은 김구가 5·10 총선에 불참하고 현실정치에서 한 발 뺀 상태에서 유일한 절대 강자였다. 6월 22일 한민당이 이승만에게 먼저 굴복했다. 내각책임제를 대통령중심제로 바꾼 수정안을 다음날 국회 본회의에 상정한 것이다. 곧 “하룻밤 사이에 역사가 뒤바뀌었다”는 말이 돌았다.

수정안을 놓고 12차례나 토론을 벌였지만 대세는 이미 이승만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7월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헌법이 가결됐고, 17일에는 이승만 의장이 헌법에 서명·날인하고 이를 내외에 공포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의원내각제 요소를 일부 가미했다지만 대통령중심제였다. 그리고 사흘 뒤 이승만은 국회에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이승만에게 실질적인 힘 그리고 막강한 힘이 실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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