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美 맨해튼 프로젝트와 인류최초의 원자폭탄 실험

독일의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베를린의 카이저빌헬름화학연구소에서 1938년 12월 22일에 우라늄의 원자핵 분열을 성공시켰다는 소식이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를 통해 미국에 망명 중인 엔리코 페르미와 레오 질라드에게 전달된 것은 1939년 초였다. 질라드가 아인슈타인을 설득해 핵분열이 군사목적에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알리도록 하고, 아인슈타인이 1939년 10월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쓰면서 미국의 원자력 연구도 비로소 본 궤도에 올랐다.

한동안 지지부진하던 원자력 연구가 급물살을 탄 것은 1941년 12월 6일 미국 과학연구개발청 장관 바네바 부쉬가 루스벨트 대통령으로부터 원자력 연구에 대한 최종승인을 얻어내면서였다. 미 정부는 육군부에 실무 책임을 맡겼고 육군부는 1942년 6월 핵개발을 담당할 공병대를 발족시켰다. 20억 달러나 투입된 이른바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가 시작된 것이다. ‘대용품개발연구소’였던 발족 당시의 이름은 8월에 ‘맨해튼 관구’로 바뀌었다. 초기연구가 주로 진행된 컬럼비아대가 맨해튼에 위치한 데서 따온 암호명이었다.

9월 17일 최고책임자에 임명된 레슬리 그로브스 공병대 준장은 13개주에 걸쳐있는 37개 시설과 12곳의 대학부설연구소, 10만 명의 종사자를 연결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는 원자폭탄 설계와 조립을 담당한 오펜하이머의 제안에 따라 뉴멕시코주 로스알라모스 교외에 비밀연구소도 건설했다. 계획에 참여한 수 천명의 직원들은 비밀을 지키도록 했고 옆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게 관리했다. 연구진은 1942년 12월 2일 페르미가 시카고대학의 한 실험실에서 최초로 제어된 연쇄반응을 일으키는데 성공함으로써 핵분열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리고 곧 워싱턴주의 핸포드에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플루토늄을 제조하고, 테네시주의 오크리지에서 U-235를 분리해냈다.

마침내 뉴멕시코주 앨러모고도 외진 사막에서 인류최초의 플루토늄 폭탄 실험이 실시한 것은 1945년 7월 16일이었다. 폭발과 동시에 높이 15㎞, 폭 1.5㎞에 달하는 버섯 모양의 거대한 불꽃이 대지를 뒤덮은 실험은 모든 면에서 예상을 능가하는 성능을 보였다. 곧 트루먼 대통령이 일본에 무조건 항복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으나 예상대로 일본 군부는 항복을 거부했다. 파멸을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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