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9년 7월 15일,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대가 나일강변의 전략요충지 로제타에서 요새 터를 파던 중, 한 장교가 문자들이 빽빽하게 적혀있는 가로 72㎝·세로 114㎝·두께 30㎝ 크기의 검은 현무암 석판 하나를 발견했다. 돌에는 54행의 그리스 문자와 이를 번역한 이집트 상형문자, 서민들이 즐겨쓰던 민중문자(현재의 아랍어)가 함께 새겨져 있었다. 나폴레옹이 중요한 돌이란 사실을 모를 리 없었건만 2년 뒤 영국군에 패배하는 바람에 돌은 영국으로 넘어가 대영박물관에 보관됐다.
그때까지도 이집트 상형문자가 해독되지 않은 터라 많은 학자들이 이 검은 돌에 달려들었다. 프랑스의 젊은 언어학자 샹폴리옹도 ‘로제타 스톤’ 해독에 매달렸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집트 상형문자가 ‘의미’를 표현하는 표의(表意) 문자라고 생각한 데 반해 샹폴리옹은 어쩌면 상형문자가 ‘소리’를 나타내는 표음(表音) 문자일 수 있다며 주류 학자들과는 다른 연구방법을 선택했다. 이집트의 기호들이 ‘그림’이 아니고 ‘발음기호’일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돌에 쓰여진 그리스 문자는, 돌이 기원전 196년에 제작됐고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공덕비임을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상형문자에도 반드시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름이 들어있을 것으로 믿은 샹폴리옹은 기호들 가운데 유독 타원형으로 둘러싸인 한 기호에 주목했다. 역시 옳았다. 왕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는 같은 방식으로 ‘제2의 로제타 스톤’으로 불린 오벨리스크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이름도 찾아냈다. 이로써 로마인의 역사책에서나 등장하던 클레오파트라의 이름이 이집트 역사에서도 생생하게 살아났다. 프톨레마이오스와 클레오파트라 두 이름에서 시작된 발음기호 찾기는 1822년이 되어서야 27개 파라오(왕)의 이름과 상형문자의 음가(音價)를 모두 밝혀낼 수 있었다. 이집트 5000년의 신비가 풀리는 극적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