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살육과 폭력으로 점철된 콩고 내전 시작

2차대전 후 아시아를 진원지로 한 식민지 바람이 아프리카에도 불었다. 1960년은 그 절정이었다. 한 해 동안 니제르, 코트디부아르, 가봉, 소말리아 등 17개국이나 독립해 그 해는 ‘아프리카의 해’로 불렸다. 1885년 이래 벨기에령이었던 콩고도 그해 6월 30일 독립했다. 5월 총선에서 제1당이 됐으나 의석수가 작았던 국민운동당 당수 루뭄바는 초대 총리가 됐고, 루뭄바와 연합한 카사부부는 초대 대통령이 됐다. 카사부부는 콩고의 가장 큰 부족 바콩고족 출신으로 콩고 독립운동의 초기 지도자였고 명망가였다.

세력 균형을 이루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구리, 코발트 등 지하자원이 풍부한 카탕가의 룬다족 출신 촘베였다. 총선 전, 카사부부와 촘베는 부족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를 독립 콩고의 형태로 생각했으나 루뭄바의 투쟁으로 벨기에가 루뭄바의 독립안을 받아들이자 불만스러워했다. 그러나 카사부부는 대통령이 되어 불만이 해소됐지만 촘베는 독립 후의 구도를 인정할 수 없었다. 7월 11일 촘베가 마침내 분리독립을 선언하면서 살육과 폭력으로 점철된 콩고 내전이 시작됐다.

유엔평화유지군이 콩고에 도착했으나 카탕가의 재통합에 나서달라는 루뭄바의 요청을 거절하고 자신들의 역할을 ‘평화 유지’로 한정짓자 루뭄바는 소련과 동구권 국가에 손을 내밀어 내전을 국제문제로 비화시켰다. 그러자 벨기에와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카사부부가 루뭄바를 해임했고 루뭄바는 다시 카사부부 해임선언으로 맞받아쳤다. 어수선한 가운데 9월 14일 모부투 상사가 쿠데타를 일으켜 카사부부를 가택연금하고 12월 1일 루뭄바를 체포해 숙적 촘베에게 넘겼다. 결국 루뭄바는 1961년 1월 17일에 처형됐다. 이렇게 시작된 콩고내전은 1965년 모부투가 무혈 쿠데타를 다시 일으켜 대통령에 취임할 때까지 지루하게 이어졌다. 모부투의 출현은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군부통치 시대의 서막이었다. 콩고 내전을 신호탄으로 사하라 사막 이남의 블랙 아프리카는 1960년대 내내 세계의 화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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