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남정현 필화사건… 소설 ‘분지’로 구속

1965년 7월 9일, 중앙정보부가 소설가 남정현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남씨가 쓴 단편소설 ‘분지(糞地)’가 반공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역사상 가장 현란하고 황홀한 순간이었던 4·19가 5·16에 의해 허망하게 무너져내렸을 때의 비통함과 좌절감을 동력으로 삼아 쓴 소설이긴 했지만 현대문학 1965년 3월호에 처음 실렸을 때만해도 소설은 특별히 주목을 끌지못했다. 그러나 소설이 북한의 ‘통일전선’ 5월 8일자에 전재되면서 상황이 돌변했고, 소설은 필화사건에 휘말렸다. 그리고 5월 어느날 남정현은 정보기관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한 끝에 7월 7일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북한은 남정현 구속 다음날 ‘조국통일’ 7월 8일자에 또 ‘분지’를 실어 부아를 돋우었다.

문인들과 언론기관이 다투어 ‘분지’의 무죄를 주장하는 과정에서도 곤욕을 치른 사람이 있었다. 조선일보 7월 13일자에 남씨의 구속을 항의하는 글을 쓴 백낙청과 원고를 청탁한 당시 조선일보 문화부장 남재희가 정보부에 끌려간 것이다. 남정현은 7월 24일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나긴 했으나 이듬해 7월 23일 불구속기소되어 법정에 선 첫 작가가 됐다.

‘분지’는 1967년 6월 28일 1심 판결에서 선고유예판결을 받았으나 1980년대 중반까지 ‘금서’ 족쇄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재판 과정에서 증인으로 나선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작품의 용공성을 묻는 검사의 질문에 “그것은 달을 가리키는데 보라는 달은 안보고 손가락만 보는 격”이라고 반박해 화제를 낳았다. 남정현의 이름이 ‘현대문학’에 다시 등장하는 데는 33년의 세월이 흘렀다. 현대문학이 1998년 10월호에 다시 ‘분지’를 실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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