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노태우 민정당 대표, 직선제를 골자로 한 6·29선언 발표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이 대통령 간선제를 규정한 제5공화국 헌법으로 그해 말 대통령 선거를 치르겠다는 이른바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고, 6월 10일 여당인 민정당의 노태우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로 선출되면서 이른바 ‘6월 항쟁’이 대한민국 거리거리를 에워쌌다. 전국의 아스팔트가 시민과 정권과의 맞대결로 아수라장의 연속이었던 6월 28일 자정 무렵, 전 대통령이 군고위층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도록 지시했다. 이튿날 서울 근교에서 군부대의 이동이 목격되는 등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갔다.

그러나 보안사, 민정당, 정부 등에서 비상계엄 선포를 만류한 데다 오후에 레이건 미 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방문한 릴리 미국 대사가 계엄령을 반대하면서 전 대통령은 빼려던 칼을 다시 칼집에 집어넣었다. 비상계엄의 포기였다. 계엄령으로 사태를 해결하지 않겠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문제를 풀어야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6월 20일 전 대통령이 노 대표를 불러 대통령직선제를 받아들이자고 요청했으나 노 대표가 선뜻 응하지 않자 다음날 다시불러 설득했다.

결국 21일 두사람은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될 중요한 문제에 합의했다. 이후 두 사람은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을 중계자로 해 비밀리에 일을 추진했다. 그리고 맞은 6월 29일. 노 대표가 당 중앙집행위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직선제로 개헌하고 김대중을 사면․복권하는 등 시국수습을 위한 8개항을 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는 이른바 ‘6·29선언’이었다. 참석자들은 경악했고 TV와 호외로 이 사실을 접한 국민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노 대표는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통령후보 등 모든 공직에서 물러날 것이라며 국립묘지와 현충사를 참배하는 것으로 비장한 결의를 극적으로 부각시켰다. 국민들은 선언이 전대통령의 주도 하에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리 없었고, 오직 노 대표 혼자의 고독한 결정으로 생각했다. 완벽한 역전극이었고 한국정치사상 최대 도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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