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승려·시인·독립운동가 한용운 입적

만해 한용운은 불교개혁을 부르짖은 승려였고 불굴의 투지와 용기를 지닌 독립운동가였으며 빼어난 서정시를 남긴 시인이었다. 한용운이 고향에서 10여 년간 한학을 익힌 뒤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간 것은 1896년 그의 나이 17세 때였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관심을 참지 못해 시베리아와 만주 등지를 방랑하다 26세 때인 1905년이 되어서야 설악산 백담사에서 완전히 출가했다. 오랜 정진 끝에 1913년 ‘조선불교유신론’을 발간, 부패가 만연했던 당시 불교계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고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방대한 고려대장경을 현대적으로 정리한 불교대전을 펴냈으며 불교잡지 ‘유심’(1918년)을 창간했다.

그 자신 33인 가운데 한사람으로 참여한 3․1운동 때는 민족대표들에게 1.변호사를 대지 말것 2.사식을 취하지 말것 3.보석을 요구하지 말것 등 3대 행동원칙을 제시했고, 거사 후 그와 함께 옥에 갇혀있는 대표들이 절망과 불안에 빠진 모습을 보일 때는 분뇨통을 던지며 그들의 나약함을 꾸짖었다. 1926년에는 근대 한국시의 기념비적인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 시인 한용운의 이름을 한국 문학사에 굵게 새겼다.

만해와 전 조선일보 사주였던 계초 방응모와의 교유 관계도 각별하게 전해온다. 만해의 형편이 어려운 것을 안 계초가 성북동 뒷산 자락에 심우장(尋牛莊)을 지어주자 만해는 보답으로 조선일보에 소설 ‘흑풍’(1935년)과 ‘삼국지’(1939년)를 연재하고, 1940년 8월 조선일보가 폐간됐을 때는 ‘신문이 폐간되다’라는 한시를 지어 비통함을 함께 달랬다. 1944년 6월 29일, 61세로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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