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남아공 소웨토 봉기

1976년 6월 16일 오전, 남아공 소웨토의 흑인 학생들이 수 백명씩 무리지어 어디론가 몰려갔다. 손에는 ‘지배자의 언어를 거부한다’고 적힌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고 흑인 찬가를 부르는 학생도 있었다. 흑인학교에서 영어 대신 ‘아프리칸스’(네덜란드어계의 현지 공용어)를 가르치도록 한 백인정부에 분노하는 집회였지만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백인 학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무료수업을 받아온 것과 달리 자신들은 낡고 과밀한 교실에서 질낮은 수업을 받아와 분노가 이미 쌓일대로 쌓인 터였다.

오전 10시쯤, 시내 광장은 사방에서 몰려든 1만 명의 학생들로 넘쳐났다. 수 백명의 백인경찰들이 이들을 막아서면서 곧 격렬한 투석전이 전개됐다. 전진하는 시위대와 막아선 경찰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을 때, 갑자기 한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남아공의 흑인저항사에서 가장 처참한 사건으로 기록된 ‘소웨토 봉기’의 신호탄이었다. 연이은 경찰의 일제사격으로 선봉에 선 시위대가 픽픽 쓰려져 시위현장에서만 최소 6명이 죽고 14명이 부상했다. 1960년의 ‘샤프빌 학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 전개됐음에도 백인정부는 곧 잠잠해질 것으로 낙관했다. 그러나 그들의 판단은 하룻만에 빗나갔다. 전 세계 신문에 실린 한 장의 사진때문이었다. 현장에서 피살된 12세 소년 헥터와 그 옆에서 오열하는 누나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다.

이튿날부터 성난 흑인들은 백인들을 습격하고 경찰서와 자동차를 불태웠다. 시위가 전국의 흑인 도시로 퍼져나가면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6월25일까지 176명이 죽었고 1000명 이상이 다쳤다. 백인정부는 9개월간에 걸친 연속 봉기로 575명이 살해된 것으로 공식발표했지만 소문은 훨씬 웃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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