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김기수 우리나라 최초로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등극

1라운드가 끝나고 발표된 점수는 1대1. 마지막 주심의 채점을 발표하는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가 이어졌다. “벤베누티 68…”. 그 순간 장충체육관을 가득메운 8000여 명의 관중석에서 환호가 쏟아졌다. “이겼다”는 표정이었다. “김기수 칠시입…” 하는 발표가 다시 이어지자 장내는 함성의 도가니가 되었다. ‘74점’의 뒷 숫자 ‘4’는 환호성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고 들을 필요도 없었다.

1966년 6월 25일 밤 10시20분,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이 탄생했다. 함남 북청에서 월남한 가난한 소년 김기수 선수가 숙적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를 2대1 판정승으로 이기고 WBA 주니어미들급 세계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찬 것이다. 6년 전 로마올림픽 준준결승전에서 김기수를 무릎꿇려 아마전적 88전 중 유일하게 1패를 안겨준 벤베노티에 대한 멋진 설욕이었다.

승리를 확인한 김기수는 귀빈석에 앉아있던 박정희 대통령으로 달려갔고 대통령은 땀에 젖은 그를 얼싸안고 챔피언 벨트를 손수 채워주었다. 1만 가구당 1대꼴로 TV 보급률이 극히 낮았던 시절, 이집저집에 모여 TV로 이 순간을 지켜보던 국민들도 함성을 터뜨렸다. 2002년 6월에 홍명보 선수가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시켜 우리나라가 월드컵 4강에 진입하던 때 들렸던 그 함성이었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 5만 5000달러나 되는 개런티를 주면서까지 일궈낸 김기수의 승리는 국민들에게 꿈과 자신감을 심어준 ‘일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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