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로가 로마의 황제가 된 것은 전적으로 그의 어머니 소(小) 아그리피나가 꿈꿔온 야망의 산물이었다. 황제의 아내와 황제의 어머니가 되는 것, 이것이 그녀의 꿈이었다. 아그리파는 주위의 눈총도 아랑곳하지 않고 삼촌인 황제 클라우디우스와 재혼한 후 이미 후계자로 내정된 황제의 친아들 브리타니쿠스를 제치고 자신의 아들 네로를 후계자로 내세웠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증손녀인 자신의 피를 생각하면 크게 꿀릴 것도 없었지만 네로를 황제의 친딸 옥타비아와 결혼시켜 로마의 적통을 잇게 하는 세심함도 잊지 않았다.
54년 황제가 죽고 네로가 17세로 5대 황제에 즉위함으로써 아그리피나의 꿈도 사실상 실현되는 듯 했다. 집권 초기 네로는 철학자 세네카의 도움으로 다소의 실수는 있었지만 악정은 펼치지 않았다. 그러나 네로의 몸에는 아그리피나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원래 후계자였던 의붓동생 브리타니쿠스를 독살하고, 자신에게 사사건건 간섭하는 어머니, 심지어는 새 여자를 맞기위해 아내마저 살해했다. 주색에 빠져 밤거리에서 난동을 부려 ‘폭군’으로 불릴 때 로마의 절반을 태운 대화재(64년)가 발생한다.
네로는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별장에 있어 알리바이가 성립됐지만 네로의 소행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불똥은 엉뚱하게도 기독교인들에게 튀었다. 기독교인들이 범인으로 몰려 박해를 당했기 때문이다. 네로의 야만성이 또 한번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다. 68년 6월 9일, 스페인 총독이 반란을 일으키고 원로원마저 등을 돌리자 네로는 31세로 자살을 선택한다. “이로써 한 예술가가 죽는구나.” 자신을 뛰어난 예술가로 착각했던 네로의 마지막 변(辯)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