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맹인 사회사업가 헬렌 켈러 사망

1904년 6월 28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래드클리프대 졸업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이 예년과 사뭇 달랐다. 생후 19개월 만에 뇌척수막염을 앓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면서 이 학교를 졸업하는 헬렌 켈러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또 다른 곳에 모아졌다. 헬렌을 세상 속으로 이끌어내고 50여 년간 2인3각으로 헬렌의 눈과 귀가 되어준 가정교사 애니 설리번이었다.

애니가 헬렌의 가정교사가 된 것은 헬렌의 나이 7세 때였다. 애니는 20세에 불과한 어린 나이였지만 그 자신 한때 실명의 위기를 겪었던 경험을 살려 헬렌에 적합한 교육법을 고안해냈다. 인형을 건네줄 때는 헬렌의 작은 손에 손가락으로 천천히 ‘d-o-l-l’이라고 써주었고, 물을 만지게 하고는 손에 ‘w-a-t-e-r’를 적어 모든 사물에는 고유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헬렌 스스로 느끼도록 했다. 애니는 자신의 후두에 헬렌의 손가락을 대어 진동을 느끼도록 함으로써 말하는 법도 익히도록 했다. 대학 입학 때도 졸업 후에도 헬렌의 곁에는 한결같이 ‘기적을 일으킨 여인’이라고 불린 애니가 있었다.

대학졸업 후 헬렌은 삼중고에 시달리면서도 일생을 농아와 맹인을 돕는데 바쳤고 세계 각지를 돌며 장애자를 위한 교육에 힘썼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그녀가 성녀이기를 원했고, 자신들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기를 기대했다. 때문에 헬렌은 자신의 개인적 소망을 미뤄둔 채 고통받는 사람과 소외된 사람을 위해 살아야 했지만 그의 마음 속은 언제나 결혼하고 아이낳는 평범한 여성의 소망으로 꿈틀거렸다.

그러나 애니는 헬렌을 독점한 채 놓아두려 하지 않았다. 헬렌이 자기 없이 살아가기를 희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헬렌이 자기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어려서 빈민보호실에서 자랐던 애니에게 헬렌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헬렌과의 첫 인연도 박애심 만으로 맺어진 게 아니었다. 앞길이 막막했던 그녀에게 가정교사 보수 25달러는 당시로서는 큰 유혹이었다. 헬렌은 자기 시대의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레닌·에디슨·채플린을 꼽을만큼, 그리고 미 정부가 그를 11번이나 용공혐의자로 언급할만큼 용공성이 짙었던 여성이기도 했다. 그러나 장애자라는 조건은 그를 매카시 광풍으로부터 비껴가도록 했다. 1968년 6월 1일, 88세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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