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서울대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1964년 5월 20일 오후1시, 2000여 명의 서울대생과 1000여 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동숭동 문리대 교정에서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이 열렸다. ‘민족적 민주주의’는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이 제창한 ‘교도(敎導) 민주주의’를 모방해 이론화한 5·16혁명 세력의 정치 철학이었다. ‘교도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지적수준이 낮은 후진국에는 서구 의회민주주의가 적합치 않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서도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교도해나가야 한다는 다분히 권위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인 이론이었다.

오후 2시, “시체여! 너는 오래 전에 이미 죽었다. 죽어서 썩어가고 있었다… 네 주검의 악취는 ‘사꾸라’의 향기가 되어…”로 시작되는 김지하의 조사 ‘시체여’가 대회장에 울려퍼졌다. 따라서 이날의 장례식은 곧 5·16 세력에 대한 부정이었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부고(訃告)였다. 관을 앞세우고 교문을 나온 장례 행렬과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찰이 충돌했다. 65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185명이 연행됐다.

문제가 된 것은 다음날 새벽이었다. 카빈과 권총을 휴대한 무장군인 13명이 법원에 난입하고 전날 밤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한 양헌 영장담당 판사 집에 몰려가 “수류탄을 터뜨리겠다”며 영장발부를 강요한 것이다. 대법원장은 “사법부 독립을 위협하는 중대 문제”라며 항의했지만 육군 참모총장은 “군인들의 우국충정”이라며 둘러댔다. 결국 군인들은 여론에 밀려 근무 이탈죄로 구속됐으나 사법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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