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당선

1981년 5월 10일 프랑수아 미테랑이 사실상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된 그날 밤, 프랑스 바스티유 광장에는 열광하는 젊은이들로 넘쳐났고, 차로에는 자동차들의 크랙션 소리가 요란했다. 미테랑의 승리는 드골 이후 23년 동안 이어져온 보수정치사와의 결별이었다. 미테랑의 승리는 당시 프랑스가 겪고 있던 경제 침체와 1차 투표(4월 26일)에서 승리하지 못한 보수파의 내분이 작용했지만 3번째 도전 만에 승리를 일궈낸 미테랑의 집념을 빼놓고는 그 어떤 설명도 온전치 않다.

미테랑을 반대한 국민들은 1936년 인민전선 이래 처음 탄생한 좌익 정권의 출현을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프랑화는 급락했고 주식시장은 곤두박칠쳤다. 부유층은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출국을 준비하는 등 법석을 피웠다. 예상대로 미테랑은 취임 후 최저임금, 가족수당, 노령연금을 인상(6월)하고, 부유세를 신설(7월)했으며, 대기업과 은행을 국유화(9월)하는 등‘사회주의 실험’을 거침없이 밀고나갔다.

그러나 장밋빛 청사진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집권 1년만에 인플레율이 13.8%로 급상승했고 177만 명이던 실업자가 200만 명으로 늘어났다. 무역적자까지 커지자 미테랑 정부는 취임 1년 만에 독일 마르크화에 대해 프랑화를 10% 절하하고 물가를 동결했다. 변화를 시사하는 첫 정책전환이었다. 이듬해에는 초긴축정책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이후 미테랑 재임기간 사회주의적인 색채는 거의 자취를 감췄고 인플레 억제에 초점을 맞춘 긴축재정이 지속됐다. 그 덕에 미테랑은 프랑스 공화정 사상 14년이라는 최장수 대통령 자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1994년 5월, ‘프랑스 자본주의를 근대화시킨 인물’ ‘유럽 현대사의 거인’이라는 수식어를 뒤로한 채 스스로 엘리제궁을 걸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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