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신익희 민주당 대통령 후보 급서

1956년 5월 5일, 제3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신익희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호남지방으로 유세를 가던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급서했다. 연일 강행군한 강연과 유세 등이 원인이었다. 신익희는 3·1운동 때 만세시위를 주도한 뒤 중국으로 망명해 1945년 광복 때까지 일관되게 임시정부를 지킨 독립운동가였다.

1945년 12월 임정요인의 2차 환국 때 귀국, 초기에는 김구와 함께 반탁운동을 선도했으나 곧 이승만 쪽으로 기울었다. 현실적으로 남북을 아우른 하나의 정부가 무망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임정 세력은 ‘단정 불가피론’을 인정하지 않고 5·10총선을 거부했으나 단정불가피론을 받아들인 신익희는 그 때부터 이승만과 제휴, 대한민국 건국에 힘을 쏟았다. 남조선과도입법의원 2대 의장에 오르면서 임정계가 주축을 이룬 한국독립당 동지들과는 더욱 멀어졌다. 1948년 제헌의원선거 때는 경기 광주에서 무투표 당선됐고 이승만의 후임으로 국회의장에 선출돼 대통령 이승만과 호흡을 맞춰나갔다. 그러나 정부수립 후에는 이승만과도 거리를 두었다. 원래 야성이 강했던 그였기에 다시 야당의 길을 걸었다.

대통령후보로 나선 그는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로 선풍적인 호응을 얻었다. 한강백사장 연설에는 30만 명이 운집하는 등 신익희는 이승만 독재정권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의 희망이었다. 국민들은 그에게도 185만8200표를 던져 그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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