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사이공 철수

↑ 베트남 사이공(현재 호찌민) 미국대사관 인근 호텔에서 사이공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헬기를 타려고 사다리를 오르는 모습. (1975년 4월 29일)

 

1975년 3월 월맹군이 베트남에 대해 총공세를 감행하자 티우 대통령이 하야(4월 21일)하고 베트남 전역이 무법천지로 돌변했다. 철수 준비를 해온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은 4월 26일 한국에서 파견한 2척의 LST함에 교민들을 실려 보내 큰 고비는 넘겼지만 상황이 급박해지자 전원 철수를 결정했다. 4월 28일, 국기를 내리고 통신기기와 비밀서류를 소각했다. 100여 명의 교민들이 탄손누트 공항을 통해 빠져나간 뒤 곧 공항이 폐쇄되면서 의지할 것이라곤 미군 헬기 뿐이었다.

4월 29일, 남아있는 교민들이 미 대사관 후문 헬기장으로 몰려갔으나 미 대사관은 이미 몰려든 3000여 명의 각국 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다행히 미군 헬기가 오후 4시부터 난민들을 부지런히 실어날랐다. 교민 탈출을 위해 미국 측과 만반의 준비를 다 갖췄다고 판단한 김영관 대사 일행은 오후 6시쯤, 헬기를 타고 미 대사관을 떠났다.

마침내 다가온 운명의 날, 4월 30일의 날이 밝았다. 새벽 무렵, 밤샘한 일부 교민이 헬기로 미 대사관을 벗어나고 마지막 남은 9명의 공관원과 165명의 교민들이 가슴을 조아리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륙하는 헬기만 보일 뿐 착륙하는 헬기는 보이지 않았다. 유일한 생명선이 끊긴 것이다. 사이공에 내버려진 교민들은 1년 안에 모두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이들의 철수를 도왔던 이대용 공사와 서병호·안희완 영사 세 사람은 현지 감옥에서 5년 동안 지옥같은 날들을 보내야했다. 그들은 1980년 4월 12일에야 그리던 조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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