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말 학생운동의 쇠퇴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적응을 거부한 소수의 급진 좌파들이 ‘독일 적군파(RAF)’를 결성했다. 창설의 주역 안드레아스 바더와 울리케 마인호프는 베트남 반전운동, 이란 팔레비왕의 독일방문 반대 등의 시위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마인호프는 함부르크 좌익계 잡지에서 활약했던 여성 저널리스트였고 바더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직업운동가였다.
마인호프는 바더가 1968년 프랑크푸르트 백화점 방화로 교도소에 수감되자 면회를 가장, 바더를 탈출시킴으로써 더욱 유명해졌다. 그래서 1970년 5월 14일에 일어난 이 날을 독일 적군파의 탄생일로 삼는 사람들도 있다. 두 사람은 1976년에 검거되어 마인호프는 그해 5월 감옥에서 목을 매 자살했고, 바더는 루프트한자 여객기 피랍이 실패로 돌아간 1977년 10월 18일 감옥에서 권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두 사람의 이름을 따 ‘바더․마인호프 그룹’으로도 불린 ‘독일 적군파’는 반국가․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를 표방하며 폭탄테러, 요인암살, 독일 내 미군기지 폭파 등 각종 범행을 저지르며 테러단체로 악명을 떨쳤다. 특히 이들은 1977년을 테러리즘의 피로 물들게 했다. 검찰총장 암살(4월 7일)을 시작으로 드레스너 폰트 은행장을 사살(7월 30일)하고 슐라이어 독일경영자연맹 회장을 납치(9월 5일)했다. 슐라이어는 나중에 프랑스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루프트한자 사건 후 적군파는 잠시 숨을 죽이는 듯했으나 1989년 독일 지멘스사 경영자의 승용차를 폭파해 죽게 하고 1991년 4월에는 동독 산업민영화 책임자 로베더를 암살함으로써 건재를 과시했다. 로베더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군파의 마지막 테러 희생자였다. 1998년 4월 20일 독일 본의 로이터통신에 한통의 성명이 날아들었다. “적군파의 과업을 오늘로 종료한다.” 시대의 탕아 독일 적군파가 해산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