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4월 14일, 세계최대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가 22노트의 빠른 속도로 북대서양 유빙 사이를 헤치며 미국 뉴욕을 향해 항진하고 있었다. 배 건조 후 첫 출항이었고, 영국 사우샘프턴을 출항한지 4일째였다.
타이타닉호는 봄에는 빙산과 충돌할 위험이 있어 주로 여름에 이용되는 거리가 짧은 코스를 선택했다. 타이타닉호가 4월의 봄인데도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여름코스를 고집한 것은 함께 대서양을 운행하는 경쟁사 ‘큐나드 라인사(社)’가 세계 최고속 신형 여객선 ‘루시타니아호’를 건조하고 있어 그 배가 건조되면 받을 가능성이 높은 ‘블루 리본상’ 즉 최단시간으로 대서양을 횡단한 배에 주어지는 상을 먼저 타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타이타익호는 4만6329t에 배 길이만 272m나 되었다, 곧추 세우면 지상의 어느 빌딩보다도 높았고 시설도 초일류 호텔급으로 꾸며 ‘떠있는 궁전’으로 불렸다. 건조비로도 어마어마한 돈이 투입됐다.
여느 때처럼 안개가 심했던 이날 밤 11시 45분경, 배가 뉴펀들랜드 동남쪽 640㎞ 해상에 이르렀을 즈음, 북대서양을 떠나니는 거대한 빙산이 오른쪽 뱃전을 들이 박았다. 충돌 당시의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는지 대부분의 승객들은 여전히 곤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럼에도 배는 오른쪽 앞부분 흘수선 아래로부터 찢어지기 시작하더니 곧 90m 크기의 구멍이 뚫려 3시간 만에 3950m의 해저 속으로 가라앉았다. 구명보트는 승객수의 절반 밖에 없었다. SOS를 수신한 인근의 여객선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4시, 부랴부랴 771명을 구조했지만 1513명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