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 25년 만에 동독 총리와 회담

1969년 10월 빌리 브란트가 총리 취임 일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독일에는 2개의 국가가 존재하며 둘은 서로 외국이 아니라 특수한 관계에 있을 뿐이다.” 이는 “동독과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와는 외교단절도 불사한다”는 기존의 외교원칙 즉 ‘할슈타인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 발표였고 이후 브란트가 추진해 나갈 ‘동방정책’의 확실한 다짐이었다. 야당은 반통일노선, 분단 고착화, 매국행위라며 즉각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브란트의 연설에 귀가 솔깃한 동독이 ‘동독 인정’을 12월에 요구하고 이듬해 1월 직접 만나 현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하면서 양측은 역사적인 대면의 계기를 마련했다. 회담 장소로 결정된 곳은 동독 국경의 소도시 에어푸르트였다.

1970년 3월 19일 오전 7시45분, 브란트 일행을 태운 열차가 서독 본을 떠나 11시간 45분만에 국경에 위치한 게어스퉁겐 역에 도착했다. 기관차는 이곳에서 동독 기관차로 교체되었다. 서독의 객차를 동독의 기관차가 끄는 ‘물리적 결합’이 분단 25년 만에 처음 이뤄진 것이다. 오전 9시30분, 에어푸르트역에는 수 천명의 동독 국민들이 “빌리!”를 연호하며 종전 이후 25년 만에 이뤄진 서독 총리의 역사적인 동독방문을 환영했다. 공교롭게도 양독 총리 모두 이름이 ‘빌리’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회담장 밖의 뜨거운 열기는 회담장 안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입장 차이가 워낙 커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양측은 5월 21일 2차회담을 서독에서 갖는다는 내용의 공동성명만 발표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이견을 좁히려는 양측의 노력은 계속되었고 70여 차례나 실무접촉을 한 뒤에야 1972년 12월 21일 서로를 ‘사실상의 국가’로 인정한다는 기본조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1973년 9월 유엔 동시가입, 1974년 3월 상주대표부 개설로 이어진 양측의 거리좁히기는 결국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와 1990년 독일 통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였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