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광혜원)’ 설립

↑ 제중원 전경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 건립하게 된 배경에는 갑신정변과 미국 선교사 호러스 알렌(1858~1932)이 자리하고 있다. 알렌은 1883년 10월부터 중국 상해에서 의료 선교사로 활동했으나 중국인이 “양귀(洋鬼)”라고 괴롭히고 경제적으로도 쪼들리자 갑신정변이 발발하기 3개월 전인 1884년 9월 20일 조선에서 활동할 의료선교사로 입국했다. 이로써 알렌은 조선 땅을 밟은 최초의 개신교 의료선교사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알렌은 1884년 12월 4일 일어난 갑신정변으로 중상을 입고 사지를 헤매던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을 치료했다. 민영익이 3개월간 치료를 받고 완쾌된 덕분에 알렌은 서양 의술의 우수성을 입증해 보였다. 그러자 갑신정변 때 부상한 조선인들과 청나라 병사들도 몰려들었다. 알렌은 고종과 민비도 치료해 서양인 최초의 ‘시의(侍醫)’로 임명되었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그에게 두터운 신임을 보내자 알렌은 서양식 병원 건립을 고종에게 건의했다. 당시 조선에 서양식 병원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일본 정부가 1877년 부산에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제생의원’을 비롯해 원산의 ‘생생의원’(1880), 서울과 인천 주재 일본공사관 부속병원(1883) 등 전국의 개항장마다 일본이 설립한 병원이 있었다.

알렌의 주도로 설립된 서양식 병원은 갑신정변의 주모자로 살해당한 홍영식의 재동 집(현 헌법재판소 자리)을 개조해 만들었다. 조선 정부가 1885년 4월 3일 새 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공표함에 따라 4월 10일 첫 환자가 치료를 받았다. 병원 이름은 한동안 은혜를 널리 펼친다’는 뜻의 광혜원(廣惠院)으로 불리다가 4월 26일 고종이 하사한 ‘대중을 널리 구한다’는 뜻의 제중원(濟衆院)으로 개칭되었다.

알렌은 조선 최초의 서양의학 교육기관인 의학교도 제중원 안에 설치했다. 교수진은 알렌, 헤론, 언더우드로 구성했다. 1886년 3월 29일 경쟁 시험을 통해 선발한 16명의 학생으로 개교하고 7월에는 12명이 본과생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학생 대부분이 중도에 포기하거나 졸업한 학생들도 관료로 빠져 전문의사를 배출하지는 못했다.

제중원은 환자가 많아지고 학생들을 가르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1886년 가을 지금의 을지로 입구인 구리개로 확장·이전했다. 이곳에서 다시 최초의 서양식 의학교육이 시작된 것은 1889년 제중원 의학교가 설립되면서였다. 10년이 지난 1908년 6월, 대한제국 정부가 의사면허 제1번부터 7번까지를 수여한 제1회 졸업생 7명이 배출됨으로써 서양식 의학교육이 이 땅에도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입학 때와 달리 세브란스의학교 졸업생 신분이었다. 제중원의 진료와 의학교육이 미 실업가 세브란스의 후원기금으로 1904년에 지어진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전됐기 때문이다.

세브란스병원 졸업생이 ‘의술 개업인허장’을 최초로 받았다고 해서 그들이 조선 최초의 의사는 아니었다. 대한제국 정부가 1899년 설립한 ‘관립의학교’에서 3년간 서양의학을 공부한 제1기생 19명이 1902년 7월 4일 졸업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다만 1기생은 부속병원이 없어 임상실험을 하지 못하다가 1902년 8월 겨우 병원이 완공되어 뒤늦게 임상실험을 한 뒤 1903년 1월 9일 졸업식을 치렀다.

세브란스 병원은 1902년 서울 남대문 밖 복숭아골(현재 서울역 앞)에서 착공돼 1904년 9월 3일 완공됐고 그 해 11월16일 낙성식을 가졌다. 한국의 서양의학이 광혜원·제중원 시대를 거쳐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병원인 세브란스 병원으로 바통을 넘겨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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