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미국 소설가 펄 벅 사망

1973년 3월 6일, ‘벽안(碧眼)의 동양인’으로 불린 소설가 펄 벅 여사가 81세로 미국에서 숨졌다. 미국에서 태어나 생후 3개월 만에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이주, 그곳에서 성장한 펄 벅에게 중국은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중국 옷을 입고 중국인 학교에 다녀 어린시절 자신을 중국인으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중국을 배경으로 쓴 ‘대지’는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주었고, 미국 펄벅재단 문에 장식되어 있던 ‘보진주(寶珍珠)’는 그의 중국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가 중국을 떠나고 또 그 곳이 공산화되면서 그와 중국 사이에는 간극이 생기기 시작했다. 작품은 판매금지되었고 그는 ‘인민의 적’으로 낙인찍혔다. 입국도 거부되었다.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치부되는 선교사의 딸인데다 작품도 공산 이데올로기와 상치됐기 때문이다. 자서전에서 마오쩌둥을 비난한 것도 화근이 되었다. 1972년 미국과 중국 간에 국교가 정상화되었어도 그의 입국 만큼은 언제나 ‘불가!’였다.

대한민국을 두 차례나 다녀가고, 한국을 소재로 한 소설 ‘살아있는 갈대’를 출간(1963년)할 만큼 펄 벅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었다. 뉴욕타임스는 서평에서 “펄 벅이 한국에 보내는 애정의 선물”이라며 ‘대지’ 이후 최고 걸작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1967년에는 경기도 소사에 혼혈고아 수용시설인 ‘소사희망원’을 설립, 이들이 겪었던 전쟁의 아픔을 감싸주었다. 유서에 “내가 가장 사랑한 나라는 미국에 이어 한국”이라며 죽는 날까지 깊은 애정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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