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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국립공원] 순백의 눈세상 太白山(태백산)에서 그들은 마음 속으로 외쳤다. “금우디!”

↑눈에 쌓인 주목이 예술이다.

 

by 김지지

 

산행지는 눈꽃 산행의 국내 최고 명소로 꼽히는 태백산이다. 인원은 25명. 19명은 고교 산악모임인 금동산악회 회원이고 6명은 회원들의 동수씨다. 동수가 무슨 뜻인지는 후술한다. 출발지는 각기 다르다. 대부분 서울·경기에서 출발했지만 강원도 원주, 경북 문경과 구미에서도 참가했다. 내 개인으로는 태백산행이 10여 년만이다.

태백산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뻗은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있다. 이곳에서 흘러내린 물은 낙동강 줄기를 따라 남쪽으로 1300리를 흐른다. 북쪽 검룡소에서는 한강이 발원해 서해까지 흘러간다. 태백산은 이름부터 제천의식과 밀접하다. 하늘에 제를 올리는 산을 ‘밝은산’(白山)이라고 하니 태백산(太白山)은 ‘크고 밝은 산’이란 뜻이다. 태백산은 1989년 5월 강원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총면적은 17.44㎢ 규모였으니 그리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2016년 5월 2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규모가 4배 이상 커졌다. 강원 태백시, 영월군, 정선군과 경북 봉화군에 걸친 곳을 모두 합하면 총면적이 70.1㎢에 이른다.

태백산 등정 길은 크게 세 곳이다. 유일사매표소, 당골광장, 백단사매표소다. 하산길 역시 세 곳 중 한 곳으로 내려온다. 어느 코스로 올라가든 왕복 4~5시간 정도 걸린다. 천제단이 있는 영봉에서 바로 하산하지 않고 부쇠봉과 문수봉을 거쳐 내려가면 1~2시간 더 걸린다. 우리는 유일사매표소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곳 고도가 950m이니 정상인 1567m까지는 600여m만 오르면 된다. 코스는 유일사매표소 → 유일사쉼터 → 장군봉 → 영봉(천제단) → 반재 → 당골광장으로 이어진다.

한발한발 눈길을 걷고 있는 대원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유일사쉼터가 나온다. 가장 앞쪽이 현상호 사무총장

 

태백산은 눈꽃 산행의 최고 명소

서울 거주 대원들을 태우고 서부역을 출발한 관광버스가 경기도 능내에서 일부 대원들을 태운 뒤 등산 기점인 유일사주차장에 다다른 시간은 2019년 2월 16일 오전 11시 무렵이었다. 예년 겨울같으면 전국에서 몰려온 관광버스들로 주차전쟁이 벌어졌을 곳에 관광버스가 몇 대밖에 없어 썰렁하다. 태백산에 눈이 제대로 쌓였다는 소식이 없어 눈이 쌓인 주목과 상고대를 감상할 수 없다고 지레 판단한 등산객들이 태백산행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날 내렸다는 약간의 눈을 기대하며 산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초입부터 눈이 쌓여 있지 않아 만발한 설화 대신 늦가을의 정취가 느껴지는 낙엽송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중턱에 위치한 유일사 쉼터까지는 비포장 임도처럼 산길이 잘 나있어 산행이 어렵지 않다. 그대신 겨울 아닌 다른 계절에는 길의 단조로움과 흙먼지로 짜증날 때가 있다. 그러나 겨울엔 무릎 넘게 쌓인 흰 눈으로 축복받은 길이 된다. 올해는 그 축복을 받지 못한 것 같아 출발부터 아쉬움이 밀려온다. 유일사 산행길은 경사가 꽤 급한 편이다. 계속 오르막이어서 금세 숨이 턱까지 찬다. 이번 산행에서도 박영민의 친구 사랑이 변함없이 펼쳐졌다. 영민은 당 섭취 전도사다. 산에 갈 때마다 일행이 적든 많든 “당이 떨어지면 안된다”며 사탕, 초콜릿, 견과류 등 온갖 먹을 것을 가져와 권하는데 거의 강권 수준이다. 오늘은 아예 사탕 비닐까지 벗겨 주며 입에 넣어준다. 산행 때마다 이런 영민을 보는 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산행길은 계속 오르막이어서 금세 숨이 턱까지 찬다

출발지에서 2.3㎞ 정도 오르니 해발 1280m 고지에 위치한 유일사 쉼터다. 그 옆에 유일사와 연결하는 삭도가 있다. 삭도는 공중에 로프를 가설하고 여기에 운반 기구를 걸어 동력이나 운반 기구의 자체 무게를 이용해 운전하는 것을 말한다. 유일사는 유일사 쉼터에서 100m 정도 우측으로 내려간 곳에 있다. 태백산 자락에서 유일한 비구니 사찰이다. 등산객 대부분은 유일사를 들르지 않고 1.7㎞를 올라가야 닿는 천제단 정상 쪽으로 방향을 정한다. 태백산에서 코스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길이 단순한 데다 안내판이 곳곳마다 워낙 잘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원이 25명이나 되고 산행 속도도 각기 다르다 보니 속도를 후미에 맞추라는 창민 대장의 기계음 소리가 무전기에서 수시로 흘러나온다. 그럴 때면 쉴곳을 정해 그곳에서 후미를 기다린다.

산악대장 창민. 폼생폼사를 추구한다.

 

금동산악회 회원수는 53명이다. 대원들이 산행 때마다 모두 참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600명의 고교동기생 중에서 53명은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창민 산악대장과 상호 사무총장의 리더십에 대원들의 자발적인 협조와 배려심이 더해져 금동산악회의 모토인 ‘금우디’ 소리가 전국 산에 메아리치는 것이다. ‘금우디’는 ‘금동산악회 우정은 디질 때까지’다. 이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작년 입회한 남근의 예를 들어보자. 혹 이 산행기를 읽는 대원들이 있다면 이번 글에서는 남근을 띄워주기로 작정한 것이니 이해바란다. 이번 산행에서 남근은 산행 중 힘들어 하는 다른 대원의 배낭까지 메고 산에 올랐다. 사무총장이 먼저 그리했다는 것을 빼놓으면 총장이 섭섭해할 것 같아 기록으로 남긴다. 남근은 평소 잘 단련된 탄탄한 몸에 체력까지 발군이다. 피부는 40대라고 해도 믿을 만큼 팽팽하고 표정은 편하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어쨌든 탐나는 외모다. 사실 남근이라고 왜 힘들지 않겠나. 그래도 그는 언제나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꺼이 대원들의 짐을 덜어준다.

전적으로 내 자의적 판단에 따라 이번 산행기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남근은 나와는 초·중·고 동창이다. 초·중 때는 짝도 해서 친하게 지낸 편이나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서로의 행동반경이 달라 함께 어울리진 않았다. 그래도 고교 때 찍은 남근의 얼굴 사진이 내 앨범에 꽂혀있는 것으로 미루어 우리가 친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남근을 고교 졸업 후 39년 만에 산악회에서 만났으니 나도 참 무심한 사람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남근과의 일화가 지금도 내 기억에 선명하나 남근 얘기만 하는 것 같아 이하 생략이다.

당 섭취 전도사인 영민(왼쪽)가 늘 편안하고 선한 얼굴의 남근

 

금동산악회 힘은 산악대장·사무총장의 리더십과 대원들의 자발성

유일사쉼터까지는 밋밋한 길의 연속이었으나 쉼터를 지나 능선으로 접어들면 아늑한 숲길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산 중턱에서는 순백의 눈 세상이 우리를 맞는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소담스럽다. 초입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다소 실망스러웠으나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쌓여있는 눈을 보게 되니 참으로 운이 좋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하루 전에 약간의 눈이 내려준 데다 기온이 영하 10도인데도 바람이 없어 춥지 않고 공기는 청량하다. 과거 태백산에 올라갔을 때는 거센 칼바람에 추위가 매서웠던 기억이 새롭다.

쌓인 눈 위로 태백산의 대표적 수종이자 태백시의 시목인 주목의 국내 최대 군락지가 펼쳐진다. 주목은 심산표고 1000m 이상의 능선에서 자생하는 음지나무다. 태백산 주목은 약 3000주로 대부분 수령 500년 이상의 고목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주목 군락지가 태백산에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태백산의 설경을 빛나게 해주는 주목을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문구는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다. 문구처럼 살아서는 자태를 뽐내고 죽어서는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주목 군락지의 상고대다. 덕분에 눈이 호사를 누렸다. 상고대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공기 중에 떠돌던 미세한 물방울이 나뭇가지에 달라붙어 만들어지는 일종의 ‘나무서리’다. 아쉽게도 해가 뜨면 금방 녹아 없어진다. 주목과 상고대가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고 사진을 찍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게 한다. 짙푸른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자란 다른 나무들도 가지 끄트머리에서 눈꽃이 반짝였다. 이런 경관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초입 때 등산로가 밋밋하다고 했으니 태백산에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상고대. 순백의 눈꽃과 청명한 하늘이 어우러져 눈이 부시다.

 

선두를 맡아 앞서 가는데 “뒤에서 홀로 올라오는 동수씨를 챙기라”며 친구들이 성화다. 우리집 가훈은 ‘각자도생’이라고 농담을 하긴 했으나 마음에 걸려 이내 선두 역할을 포기하고 집사람과 노닥거리며 올라갔다. ‘동수(同嫂)’라 함은 보통 친구끼리 대화할 때 친구A가 친구B의 아내를 “제수씨”라고 호칭하면 친구B가 “제수가 뭐냐”며 “형수라고 부르라”는 농담이 오가므로 아예 동격 호칭인 “동수”라고 부르자는 데서 유래한다. 누가 처음 제안했는지는 몰라도 그 기발함이 놀랍다.

나무에 핀 설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주목 군락지 상고대에 눈 호사 누려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오르다 보니 어느새 오름길 산행의 끝 장소인 장군봉이다. ‘태백산 최고봉 장군봉 1567m’ 정상 비석이 늠름하다. 이곳은 매년 새해 아침이면 일출을 보기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산행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장군봉 정상에서 먼저 눈에 띠는 것은 장군단이다. 그곳에서 산마루를 사이에 두고 400m 정도 떨어진 곳에 영봉(1562m)의 천제단(정확히 말하면 천왕단)이 있다. 천제단은 조상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돌로 켜켜이 반듯하게 쌓은 돌무더기 제단이다. 1965년 경북 봉화군 주민들이 복원한 뒤 국가중요민속자료 제 228호로 지정되었다.

태백산 천제단은 영봉의 천왕단을 중심으로 장군봉의 장군단, 동쪽 문수봉 가는 길에 있는 하단의 통칭이다. 천왕단은 하늘에, 장군단은 사람(장군)에, 하단은 땅(자연)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중심 제단은 천왕단이다. 사각형 기단 위에 하늘이 뚫린 타원형으로 자연석을 쌓아 만들었다. 둘레 27.5m, 높이 2.4m, 좌우 폭 7.35m, 앞뒤 폭 8.26m로, 산 정상에 있는 제단 중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장군봉에서 영봉 천제단으로 가는 길. 천왕단이 보인다.

 

남쪽에 마련된 돌계단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면 북쪽을 향해 둥그렇게 쌓은 단 위에 다시 사각형으로 쌓은 단이 있다. 단 위에는 붉은색 한글로 ‘한배검’이라고 새긴 비가 서 있다. 한배검은 대종교에서 단군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천왕단에서는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 천제(天祭)를 지낸다. 매년 1~3월에는 시산제를 올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장군단은 둘레 20m, 높이 2m 정도의 사각 모양 제단으로 천왕단보다 규모가 조금 작다. 역시 남쪽의 돌계단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하단은 천왕단에서 문수봉 방향으로 가파른 내리막길로 300m 정도를 가면 나타나는데 현재는 사실상 기능을 잃은 상태다.

태백산은 강화도 마니산, 황해도 구월산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천제 장소다. 세 곳 모두 정상에 서면 사방이 탁 트여 하늘을 우러르고 기도하기 좋다. 영봉에 올라가니 많은 사람들이 ‘태백산’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줄지어 있다.

천왕단(왼쪽)과 장군단

 

천왕단은 하늘에, 장군단은 사람에, 하단은 땅에 제사 지내던 곳

이번 산행부터 보이스 레코더로 녹음을 시작했다. 앞으로 펼쳐질 내 60~70대에는 가급적 많은 것을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한 사진촬영과 녹음의 삶이 전개될 것이다. 머지않아 회사를 은퇴하면 어쩔 수 없이 시작되는 홀로서기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내가 아날로그 세대인데다 기계치라는 것이다. 고민이 많다. 이번 산행에는 박건이 처음 동행했다. 그는 고교 때 잘 나가던 에이스 투수였다. 중앙대 야구감독까지 역임했으니 야구인으로 성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번 산행에서는 내가 선두로 가거나 집사람과 함께 해 얘기를 나누진 못했다. 다음 산행 때는 이런저런 많은 얘기를 나눠볼 것이다.

우리는 천왕단에서 당골광장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하산길로 잡았다.조금 더 욕심을 내면 부쇠봉과 문수봉을 거쳐 당골광장으로 하산할 수도 있으나 그만큼 시간이 지체되므로 짧은 코스를 선택했다. 천왕단에서 1.3㎞ 내려가면 망경사가 나타난다. 입구에 마르지 않는 물로 불리는 ‘용정(龍井)’이 있다. 예부터 이곳 물로 천제를 지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샘 중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1470m)에 자리잡고 있다. 용정 옆 설명문에는 ‘동해에서 떠오르는 아침햇살을 가장 먼저 받아 우리나라 100대 명수 중 으뜸에 속한다’고 쓰여 있다.

용정. 우리나라 샘 중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1470m)에 자리잡고 있다.

 

망경사에서 반재로 하산하는 700m길은 자연 눈썰매장이다. 경사가 급한 데다 걸리는 것이 없어 눈이 내린 날 포대자루를 타고 내려갈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 사실 10여 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오궁썰매라는 게 있었다. 일반 플라스틱 눈썰매와는 달리 옷처럼 끼어입는 썰매로 엉덩이에 붙이고 걷는 모습이 옆에서 보면 오리궁둥이를 닮았다고 해서 ‘오궁썰매’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당시 등산객들은 오궁썰매 대신 포대자루를 갖고 올라가 내려가 때 그것을 타곤 했다. 그때는 나 역시 그랬다. 당시 동행자는 기림이었다. 당시 신문을 보면 태백산과 오궁썰매가 한 묶음으로 자주 기사화되었는데 2007년 이후 기사에서 사라졌다.

친구들과 두런두런 얘기하다보니 어느새 천제단에서 4.4㎞ 거리의 당골 광장에 다다랐다. 안내판에 올라갈 때 4㎞, 내려갈 때 4.4㎞로 기록되어 있으니 총 8.4㎞를 산행한 셈이다. 당골은 태백산 중턱 용정에서 발원한 물과 여러 골짜기에서 나온 물들이 합쳐져 굵은 개울을 이루는 계곡이다. 과거 이 계곡을 따라 많은 당집이 있어 당골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태백산의 다른 계절 산행을 기대해본다. 봄에는 철쭉이 군락을 이뤄 장관이라는데…

반재에서 내려다가 보이는 망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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