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강원도 계방산은 겨울 눈꽃 산행이 매력적인 곳… 전망데크~정상 능선은 하얀 수묵화

↑ 정상에서 바라본 능선들

 

by 김지지

 

1월 어느날 저녁, 고교 동창인 상호 선근 정형 창화 넷이서 만나 회포를 풀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아 얼큰하게 달아올랐을 무렵 내가 계방산행을 제안했다. 계방산은 강원도 선자령·태백산과 함께 겨울 설산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도 선자령과 태백산만 가보고 계방산은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 겨울이 가기 전에 올라갈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계방산이 떠오른 것이다. 친구들도 계방산은 초행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계방산행은 술자리에서 정해졌고 1월 31일 아침 일찍 계방산행 차에 몸을 실었다.

산행지도

 

■계방산은

계방산의 해발고도는 1577m다. 남한에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다음으로 높다. 그렇다고 계방산보다 높은 곳이 전국에 네 곳밖에 없다는 뜻은 아니다. 여러 봉우리를 아우르는 거대 산들의 최고봉 높이를 비교해 그렇다는 것이지 계방산보다 높은 봉우리는 전국에 흔하다. 이를테면 반야봉은 지리산의 한 봉우리로 1732m다.

계방산의 높이가 1577m라고 해서 겁낼 필요는 없다. 산행 기점인 운두령의 해발고도가 1089m나 되어 488m만 고도를 높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운두령은 31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어서 접근성도 좋다. 운두령에서 정상까지는 가파른 오르막이 부분적으로 있긴 하나 전반적으로 산세가 순해 주말 등산객 수준이라면 누구나 오를 수 있다. 코스도 단순해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어떤 코스로 가든 5~6시간이면 산행을 끝낼 수 있다.

산림청과 블랙야크가 지정한 100대 명산 답게 사시사철 좋은 곳이지만 특히 좋은 계절은 눈꽃 산행이 매력인 겨울철이다. 설화나 상고대가 필 때가 많아 많은 등산객들이 한겨울에 이곳을 찾는다. 해서 2011년 계방산을 편입한 오대산국립공원 측은 폭설이 내리면 우선적으로 이 일대 도로부터 제설작업을 한다. 다만 운두령 고갯길이 얼거나 차량이 많아서 고갯마루까지 차가 올라갈 수 없는 경우는 31번 국도의 아랫삼거리에서 운두령이든 자동차야영장을 경유하든 걸어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오대산국립공원 지도. 왼쪽 아래 지점이 계방산이다.

 

■산행

▲들머리는 운두령

계방산 들머리는 운두령과 계방산주차장 두 곳이다. 이중 등산객 대부분이 이용하는 들머리는 운두령이다. 우리도 산 아래 계방산주차장에 주차하고 택시를 타고 올라간 운두령을 들머리로 삼았다. 그후 정상을 지나 산행 종착지인 자동차야영장으로 하산한 뒤 계방산주차장까지 걸어내려가 귀경했다. 택시 이용법은 이 글 아래서 소개한다.

운두령

 

운두령(雲頭嶺)은 강원도 홍천군 내면과 평창군 용평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다. 해발고도는 1089m이다. 운무가 자주 넘나든다고 해서 ‘운두령’이다. 한때는 남한에서 차로 넘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였으나 지금은 만항재(1330m), 두문동재(1268m), 정령치(1172m), 성삼재(1102m) 다음으로 밀렸다.

오대산국립공원 지도에 따르면 우리의 산행 거리는 총 8.9㎞다. 구체적으로는 운두령 →(2.2㎞)← 쉼터 →(0.9㎞)← 전망데크 →(1.0㎞)← 정상 →(0.4㎞)← 주목군락지 →(1.1㎞)← 옹달샘 →(0.9㎞)← 노동계곡 →(2.4㎞)← 자동차야영장 순이다. 우리는 자동차야영장에서 계방산주차장까지 아스팔트길을 30분 정도 걸었기 때문에 거리는 더 늘어났다.

 

▲운두령에서 정상까지

운두령에 올라가니 넓지 않은 고갯마루 주차장은 물론 도로변에도 차가 빽빽이 들어차있다. 코로나 때문에 이 정도이지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북새통이었을 것이다. 운두령에서 급경사 나무데크 위로 올랐을 때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하늘로 솟아있는 거대한 풍력발전기다. 마치 운두령의 랜드마크처럼 느껴진다. 나뭇가지 사이로는 저 멀리 전망데크~정상 사이 능선이 아스라이 펼쳐있다.

능선을 따라 1㎞ 정도 완만한 길을 따라 걸어가니 물푸레나무 군락지다. 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물이 푸르게 변한다고 해서 물푸레나무다. 식별은 간단하다. 갈색 나무껍질에 드문드문 희거나 누런 빛깔의 무늬가 불규칙하게 얼룩져 있다. 마치 내눈엔 아프리카 하이에나처럼 보인다.

운두령 급경사 나무데크 계단(왼쪽)과 초입 능선길

 

운두령에서 2.2㎞ 지난 곳에 쉼터가 있다. 다소 경사진 곳을 올라와 숨이 가빠진 등산객들이 숨을 고르는 곳이다. 시간은 1시간 10분이 경과했음을 알려준다. 그동안 비교적 완만한 평지와 적당한 오르내리막이 이어져 크게 힘들지는 않다. 어제 내린 눈이 10-20㎝나 쌓여 있어 발바닥이 피곤하지 않다. 아이젠만 있으면 미끄럽지 않으니 겨울 설산이 오히려 산행에는 편하다.

오늘은 기온도 적당하다. 매섭기로 유명한 계방산 바람도 조용하다. 막역한 고교 동창들과 함께 하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나뭇가지 사이로 정상의 능선이 펼쳐있다. 쉼터에서 전망데크(1492m)까지는 비탈길이다. 0.9㎞를 올라가는데 1시간이 걸릴 정도로 급경사다. 어떤 등산기를 보면 전망데크 주변이 야광나무 군락지여서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고 하는데 우리는 야광나무를 알지 못하고 겨울이서 실감할 수 없다.

전망데크(1492m)

 

이중섭의 소 그림에 등장하는 강렬하고 선명한 등뼈 보는 듯

전망데크에 올라서니 비로소 광활한 첩첩산중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전문 산악인 눈에는 남쪽으로는 가리왕산과 청옥산이, 북쪽으로는 오대산의 비로봉이, 그 너머 멀리 왼쪽에는 설악산의 대청봉이 보이겠지만 우리는 사전 지식이 없는데다 워낙에 멀리 보여 산이름까지는 언감생심이다. 생선가시처럼 사방으로 뻗어있는 능선을 보고 “벗은 사람의 근육 같다”고 선근이 한마디 한다. 내 눈에는 이중섭의 소 그림에 등장하는 강렬하고 선명한 등뼈를 보는 듯 하다.

정상은 전망데크에서 동쪽으로 1㎞ 떨어진 곳에 있다.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하얀 수묵화다. 신기하게도 고도가 높아질수록 쌓인 눈의 양도 높아진다. 계곡에서 능선으로 세차게 몰아치는 칼바람에 휩쓸려 올라왔을 것이다. 길 옆으로 들어가면 발이 푹푹 빠진다. 눈을 보고 눈이 호강한다. 순백의 눈과 청명하고 파란 하늘이 어우러져 멋진 앙상블을 이룬다. 전망데크에서 정상까지 1㎞를 걷는데 35분 걸렸다.

정상의 사방도 막힘없는 파노라마다. 정상에는 돌무더기 탑이 있고 그 옆에 정상표지석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등산객들이 길게 줄지어 있다. 겨울에는 바람이 심해 오래 머물기 어렵다는데 오늘은 바람 없이 고요하다.

정상에서 찰칵

 

▲정상에서 하산

하산길은 세 갈래다. 한 갈래는 운두령으로 되돌아내려가는 것이고 다른 두 갈래는 노동계곡~자동차야영장(편의상 A코스)과 권대감바위~계방산야영장(B코스)으로 이어진다. A코스도 자동차야영장을 지나 30분 정도 걸어가면 계방산주차장에서 B코스와 만나게 된다. 우리는 노동계곡의 A코스로 내려간다. B코스는 정상에서 바로 하산하지만 A코스는 소백산 비로봉(동북쪽) 방향으로 0.5㎞ 정도 가다가 안부에서 우측의 주목군락지로 하산한다.

안부에서 직진하면 멀리 비로봉인데 막아놓았다. 안부에서 하산길을 정하자마자 주목군락지다. 열매가 빨간 앵두 같고 껍질이 홍갈색이어서 주목(朱木)으로 불린다. 생장이 느린 반면 수명이 길어 ‘살아 천년 죽어 천년’으로 불린다. 군대 장교 출신인 창화가 “군대 장군들의 지휘봉은 주목으로 만드는데 단단하고 가볍고 무늬가 없기 때문”이라고 알려준다.

궁금한 것은 계방산의 뜻이 ‘계수나무(桂) 향기(芳)가 나는 산’인데 왜 계방산에 계수나무가 없느냐는 것이다. 향토사학자 정원대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고지도나 옛 문헌에 계방산이란 이름은 없고 ‘제비 연(燕)’을 써서 ‘연방산(燕方山)’으로 되어 있다. 계방산이란 이름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에서 제작한 지도에서 처음 발견된다”며 “계방이란 이름이 일제의 잔재”라는 것이다. 일제식 지명이 어디 이곳뿐이랴.

 

급경사 구간(주목군락지~노동계곡) 지나면 둘레길 수준

주목군락지에서 옹달샘 지나 노동계곡까지는 급경사 2㎞ 거리다. 옹달샘 있다는데 쌓인 눈 때문에 모르고 지나쳤다. 계방산에서 가장 경사가 급한 곳은 주목군락지~노동계곡, 쉼터~전망데크 두 구간이다. 노동계곡 상류부터는 하산길이 서서히 완만해지다가 막판에는 둘레길 수준으로 편해진다. 계곡 위 목교도 서너개 건너는데 전반적으로 길이 아기자기하고 순하다. 이렇게 걷다보면 윗삼거리에서 산행이 끝난다. 그곳에서 평지길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이승복 생가터이고 더 내려가면 자동차야영장이다.

주목군락지(왼쪽)와 하산길

 

이승복 생가는 1968년 사건 후 몇 년간 빈집이었다가 1970년대 초 정부에서 화전민이 살던 빈 가옥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헐려버리고 돌담과 집터만이 남았다. 2000년 이승복 일대기 기록영화를 촬영하면서 당시 주민·생존자의 증언과 사진 판독 등 고증을 거쳐 지금의 생가로 복원했다. 생가터 안내문에 ‘생존자’를 ‘생족자’로 잘못 써놓고도 고치지 않는 무성의를 지적하고 싶다. 이승복의 죽음에 대해서는 이 글 아래에서 소개한다.

자동차야영장 끝 지점에서 시작되는 아스팔트길은 31번 국도로 연결된다. 그 길을 걷는데 30분이나 걸렸다. 사전 지식이 있었다면 자동차야영장 주변에 차를 주차한 뒤 택시를 타고 운두령까지 이동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경험이 나중 다른 사람의 산행에 도움이 되리라 기대해본다. 야영장에서 아랫삼거리 계방산주차장까지 길은 두 갈래인데 설사 왼쪽의 아스팔트길을 따라 걷는다해도 어차피 만나게 되니 신경쓸 일은 아니다.

이승복 생가터

 

■계방산 송어

계방산 일대에는 송어집이 많다. 다만 계방산 아래는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송어양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인근의 다른 지역 양식장에서 들여온다고 한다. 이 지역의 송어가 유명한 것은 물이 차가워 일주일 동안 수조에 넣어두면 살이 단단해지면서 쫄깃해지기 때문이라는데 내 입맛이 그 정도로까지 발달하지는 않았으니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다만 붉은빛이어서 구미에 당기고 기름이 많아 고소한 것은 분명하다. 바다 생선보다 굵게 썰어 씹는맛도 좋다.

하산 후 송어집을 찾는데 일요일에 저녁이라 그런지 대부분 문을 닫았다. 우연히 한 집이 문을 열어 들어갔더니 유명가수 어머니가 운영하는 송어집이란다. 그 연예인이 누구인지는 거명하지 않겠다. 아들 덕에 홍보가 잘 되는 집이니 굳이 나까지 소개할 필요가 없어서다. 다른 집이 문을 열었으면 그리로 갔을 것이다.

계방산을 다녀오고 며칠 후 상호가 “자꾸 송어가 생각난다”며 “주말에 또 산에 갈 수 없느냐”고 묻는다. 선약이 있어 응하진 못했다. 사실 나도 작년 충주댐 부근 산에 오른 뒤 귀경길에 제천의 유명 송어집에 들렀다가 송어에 반했었다. 봄이 되면 상호를 모시고 송어양식을 하는 강원도나 충주댐 부근 산에 한번 다녀와야 곘다.

계방산 송어

 

■운두령행 택시 이용법

위에서 소개했지만 계방산의 주요 들머리는 운두령이다. 올라갔던 길로 내려올 게 아니라면 계방산주차장 방향으로 하산해야 한다. 들머리와 날머리가 다르면 택시로 이동해야 한다. 이럴 경우 차를 어디에 두고 올라갈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우리는 하산지점인 계방산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뒤 택시를 불러 운두령까지 올라갔다. 꼬불꼬불한 31번 국도를 타고 운두령까지 올라가는데 10분이면 족하다.

택시는 계방산주차장에 도착하기 전 미리 택시회사에 전화를 걸어 주차장에서 만나도 되고, 주차장에 도착한 후 현장에서 무작위 등산객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를 이용하거나 택시가 없으면 그때 전화로 택시를 불러도 15분이면 도착한다. 택시비를 조금이라도 절감하려면 후자 방식이 좋다. 전화로 미리 택시를 부르면 운두령까지 3만원 이상을 내야 하고 현장에서 만난 택시를 이용하면 2만원이면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택시회사 전화번호를 소개한다. ☞장평개인택시 033-332-4379, 장평택시 033-332-442, 진부택시 010-9270-7375, 033-335-1050, 334-8488, 335-0088, 336-7271 등이다.

 

■이승복 일가 참살

1968년 12월 9일, 강원도 평창군 계방산 중턱 초가집에서 일어난 이승복 일가 참살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이승복의 아홉번째 생일이었던 그날 밤, 승복은 아랫방에서 숙제를 하는 중이었다. 형 학관은 옥수수 알을 까고 있었고 두 동생 승수와 승자는 옆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승복의 어머니만 혼자 윗방에서 메주를 쑤고 있을 때 갑자기 윗방, 아랫방으로 5명의 공비가 들이닥쳤다. 당시 전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이른바 ‘울진·삼척 무장공비’ 120명 중 일부였다.

이날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학관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한 공비가 “너는 북한이 좋니? 남한이 좋니?”라고 물었을 때 승복은 학교에서 배운 대로 “북한은 싫어요. 공산당은 싫어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남북 간 체제경쟁이 치열할 때 어린 승복이 학교에서 배운 건 “북한 공산당은 뿔 달린 시뻘건 괴물”이었다. 승복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비 한 명이 승복의 멱살을 잡아 번쩍 들어올리자 다른 공비가 발버둥치는 승복이 입 속에 칼을 쑤셔넣었다.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승복의 볼에서 선혈이 낭자했다. 입에서 귀까지 찢겨 이가 드러났다.

윗방의 어머니도 날이 시퍼렇게 선 대검에 가슴이 찔렸고, 잠자다 깨어나 울부짖던 두 동생들도 벽에 패대기쳐졌다. 어머니와 동생들은 이내 조용해졌다. 숨진 것이다. 학관도 36번이나 칼에 찔렸으나 다행히 목숨은 붙어 있었다. 아랫마을에서 집으로 돌아오다 마당에서 공비들과 마주친 아버지는 격투 끝에 오른쪽 대퇴부에 상처를 입고 다행히 도망칠 수 있었다.

아버지를 놓친 공비들이 서둘러 집을 빠져나간 후 정신을 차린 학관은 1㎞ 남짓 산을 내려가 숙모 뻘되는 집에서 간호를 받다 사흘 뒤 깨어났다. 공비들의 만행으로 승복의 가족 7명 중 살아 남은 사람은 아버지와 학관 그리고 이웃집에 있다가 목숨을 건진 할머니 이렇게 3명뿐이었다.

승복은 죽었으나 ‘반공의 횃불’이라는 칭호를 얻어 반공국가 대한민국에서 영웅이 되었다. 공산당이 무엇인지도 모른 상태에서 학교에서 배운 대로 공산당이 싫다고 대답했다가 죽임을 당하고, 죽어서는 반공교육의 표본이 된 것이다. 동상과 기념관이 전국 곳곳에 세워졌고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도 실려 반공의 소재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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