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월7일, 베트남이 캄보디아 수도를 함락함으로써 인류사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남긴 폴 포트 정권이 막을 내렸다. 폴 포트는 태국 국경지대의 밀림으로 도주, 게릴라전을 펼치며 권토중래를 꿈꾸다 1998년 자살했다.
캄보디아 현대사는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휘둘리는 전형적인 약소국의 비애를 담고있다. 80여년동안 캄보디아를 지배하던 프랑스가 떠난 공백은 시아누크 국왕이 메웠다. 베트남전이 본격화되면서 인접한 캄보디아도 전쟁에 휘말렸다. 시아누크는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캄보디아를 경유해 남베트남으로 이어지는 북베트남 보급로 ‘호치민 루트’를 묵인함으로써 미국의 미움을 샀다.
미국은 1970년 론놀을 앞세워 시아누크를 전복하고 친미·반공정권인 론놀정권을 세웠지만, 북베트남군 토벌을 위해 캄보디아에 가한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반미의식이 고조되고 크메르 루즈 등 공산주의 세력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론놀 정권이 민심을 잃어 베트남전 종전(終戰)과 함께 론놀 정권도 붕괴됐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중국의 지원을 받은 급진 공산주의 세력 ‘크메르 루주’ 지도자 폴 포트였다. 모택동 사상에 심취한 폴 포트는 ‘유토피아적 농경 사회주의국가’ 실험을 강행, 수백만명의 도시민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론놀 정권에 협력한 군인과 공무원, 지식인들을 무차별로 처형하는 과정에서 200여만명을 살육했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폴 포트에게 쏟아졌으나 미국은 단지 반(反)베트남이라는 이유로 폴 포트를 지원함으로써 비난을 자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