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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 가리산 ②] 연초록이 눈부시게 빛나던 어느 봄날, 정상 조망까지 막힘없이 펼쳐지니 속이 다 후련

↑ 3봉에서 바라본 2봉(왼쪽)과 1봉

 

by 김지지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10㎞에 4~5시간

☞ 가리산휴양림 주차장 → 합수곡 → 무쇠말재 → 정상(3개봉) → 가삽고개 → 등골산 능선 → 주차장(원점회귀)

 

3년 전 가을, 대학후배와 단 둘이서 강원도 홍천 가리산에 갔을 때,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렸다. 정상까지는 올라갔으나 운무(雲霧)에 가려 가리산의 자랑인 조망을 즐기지 못하고 체력 단련만 하고 돌아왔다. 하산 후 주차장에서 가리산 정상을 바라보며 “조만간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발길을 돌렸는데 그 약속을 지킨 것은 3년 후였다. 봄햇살 따사롭던 2022년 5월 14일, 이번에는 대학 선후배 사이인 희용, 상현, 원수, 나 이렇게 넷이 동행했다. 산행 취지는 상현의 위로였다. 상현은 서울시의원에 출마하기 위해 특정 정당에 공천을 신청한 후 한창 길거리에서 선거운동을 하던 중 다른 후보가 전략공천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뜻을 접어야 했다. 스펙이 너무 좋아 지역구 국회의원이 경계한 것 같은데 씁쓸한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가리산 소재지는 팔봉산, 공작산 등 명산을 품고 있는 강원도 홍천이다. 자연휴양림이 있고 입장료(2000원)와 주차비(4000원)를 받아서 그런지 입구부터 깔끔하고 잘 정돈된 모습이다.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멀리 능선에 2개 암봉이 우뚝 솟아있다. 장소에 따라 2개봉 혹은 3개봉으로 보이는데 노적가리처럼 고깔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이름이 가리산이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가리산 정상

 

■산행

 

▲코스

주차 후 한동안은 자연휴양림을 지나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그러다 곧 만나는 휴양림 관리사무소 앞에 등산 거리와 시간을 알려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오른쪽 관리사무소를 경유하는 코스는 10㎞에 4시간 30분(편의상 A코스) 걸린다. 관리사무소에서 급경사 길을 올라가면 등골산 능선과 만나 새득이봉(937m)을 거쳐 가삽고개로 이어진다. 그냥 직진해서 합수곡(合水谷)으로 올라가는 코스는 7.2㎞에 3시간 30분(B코스) 걸린다. 휴양림에서 1㎞ 정도 떨어진 합수곡 삼거리에서 무쇠말재(왼쪽)나 가삽고개(오른쪽)를 거쳐 정상으로 올라간다. 무쇠말재 쪽이 시간은 덜 걸리지만 조금 가파른 편이고, 가삽고개 쪽은 완만한 대신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그런데도 경사도가 찍힌 위성지도를 보면 좌우 양측 경사도가 데칼코마니처럼 비슷하다.

오늘 우리 코스는 B코스(하산 중 A코스로 변경)다. 3년 전에는 합수곡에서 오른쪽 고갯마루인 가삽고개(910m)로 올라가 정상을 지나 무쇠말재(860m)로 내려온 터라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정했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왼쪽으로 올라가 오른쪽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해발고도가 360m(주차장)에서 1051m(정상)로 높아지므로 표고차는 690m다. 그러나 실제로 올라가보면 그렇게까지 높아보이진 않는다.

가리산 코스 지도

 

▲들머리(주차장)~정상

주차장에서 합수곡까지는 완경사 아스팔트와 흙길이다. 1.2㎞에 20분 걸린다. 중간에 야영장과 야영숙소가 있고 강우레이다 관리동이 있다. 그곳에서 저 멀리 한 봉우리(994m) 위에 설치된 9층짜리 레이더동까지 2.3㎞의 모노레일이 깔려 있다. 직원들이 이용하는 레일이다. 레이더동에는 홍보관이 있고 망원경이 4대나 있어 주변을 조망할 수도 있다. 강우레이더 관측 장소는 이곳 말고도 전국적으로 몇 군데 더 있다. 경기 남양주 예봉산, 인천 강화 임진강, 충남 금산 서대산, 충북 단양 소백산, 전남 화순 모후산, 대구 달성 비슬산 등이다.

주차장에서 합수곡 방향 아스팔트길

 

합수곡에서 왼쪽 무쇠말재까지는 1.1㎞ 거리다. 경사가 그렇게 심하진 않으나 오늘도 나는 헉헉거린다. 내 산행 수준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결국 50분 걸렸다. 무쇠말재에서 왼쪽 강우레이더동까지는 1.2㎞이고 반대편 가리산 정상까지는 0.8㎞다. 정상 아래에 석간수(石間水, 샘물)가 있다. 정상에서 0.3㎞ 아래 능선에서 다시 0.3㎞를 숲 안쪽으로 들어가면 석간수가 나오는데 능선에 설치된 안내판이 살짝 헷갈린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석간수를 찾아오지 않으니 우리들만의 공간이다. 석간수는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늑하고 편한 쉼터 역할을 한다. 벤치 2개가 있어 쉴 수 있고 겨울철엔 추위도 막아준다.

석간수 쉼터

 

석간수는 대형바위 벽면 사이에서 사계절 끊이지 않고 흘러내린다. 우리가 찾아간 날은 가뭄인데도 석간(石間)에서 물이 쫄쫄쫄 나오는 게 기특하다. 석간수는 400리 홍천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면 ‘야시대천’의 발원지다. 야시대천은 굽이굽이 약 18㎞를 흘러 44번국도가 지나는 성산리에 이르러 홍천강과 합수되고 다시 흘러내려가 북한강의 지류인 소양강의 수원을 이룬다.

조금전 석간수 위 능선에서 정상까지는 급경사 암벽구간이다. 그런데 최근에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0.3㎞의 데크계단이 바위 위를 덮고 있다. 데크계단이 설치되기 전까지는 호치키스를 바위에 박아놓은 모양의 쇠발굽을 밟고 줄을 잡고 올라갔다. 데크계단이 길고 급경사여서 올라가는 데만 10분 이상 걸린다. 계단 마무리 작업을 하는 일꾼에게 물어보니 계단이 500개 이상이란다. 암벽 옆에 길게 설치한 파주 감악산의 데크계단과 닮았다. 급경사 데크를 다 올라가면 바로 정상이다. 무쇠말재에서 45분 걸렸다. 석간수에서 쉰 시간 포함이다.

가리산 정상에는 정상표지석과 함께 ‘해병대 가리산 전투비’가 세워져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국군과 유엔군이 총반격에 나섰을 때 해병대 제1연대가 7일간(1951.3.19~3.25) 전투를 벌여 가리산을 확보한 것을 기념한 전투비다. 당시 가리산은 홍천~춘천~인제를 잇는 삼각형의 중간에 위치한 1051고지로 이곳을 탈취하면 춘천과 인제를 감시할 수 있는 전술적 요충지였다. 당시 가리산 일대는 북한군 제6사단 1500여명이 방어하고 있었다. 이 전투에서 해병대 제1연대는 적 사살 121명, 포로 39명의 전과를 올렸으나 해병대도 전사 31명, 부상 91명, 실종 2명의 피해를 당했다.

가리산 정상(제1봉)

 

▲정상~날머리(원점회귀)

정상은 좁은 협곡을 사이에 둔 3개의 암봉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제1봉이 정상이고 협곡 건너에 제2봉과 제3봉이 있다. 정상 조망이 막힘없이 펼쳐져 속이 다 후련하다. 북쪽 멀리 소양호가 있으나 첩첩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옆 제2봉으로 올라가야 소양호 일부를 볼 수 있다. 동쪽 가까이에는 우리가 올라온 가리산 휴양림이 내려다보이고 그 왼쪽으로 등골산(900m) 능선이 길게 뻗어있다. 그 너머 멀리 방태산이 있으나 구분을 못하니 알아도 몰라도 그만이다. 남쪽으로는 강우레이더동이 고고한 자세로 사방을 내려다보고 있다.

2봉에서 바라본 1봉. 왼쪽 저멀리 강우레이다동이 보인다.

 

가리산의 매력은 ‘강원 영서 제1의 조망터’로 인정받는 정상 조망이다. 2봉으로 가려면 급사면을 내려갔다가 살짝 올라가야 한다. 2봉 위에 큰바위얼굴이 있다. 큰바위얼굴 하면 미국의 큰바위얼굴이 먼저 떠오르고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얼굴 크기가 100m도 더 되는 월출산이다. 이곳 큰바위얼굴 크기는 5m 쯤 되어 보인다. 이곳에도 호객용 전설따라 삼천리 얘기가 있으나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간다. 3봉은 2봉 바로 옆에 있다. 봉우리 아래는 수십 길 절벽이다. 하산은 한동안 급경사다. 쇠파이프(쇠난간), ㄷ자형 쇠말굽, 철제 받침대가 등·하산을 도와준다.

2봉에서 바라본 3봉. 저 멀리 소양호가 보인다.

 

정상 오르는 데크계단(왼쪽)과 정상에서 내려가는 급경사길

 

능선은 편안한 흙길이지만 길 양쪽이 숲에 가려 길만 보인다. 4월 말 연초록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들은 여전히 싱그럽고 5월이 왜 계절의 여왕인지를 세삼 알려준다. 암봉에서 내려와 편안한 숲길을 15분 정도 걸어가면 왼쪽으로 소양호 물노리선착장으로 연결되는 길이 나 있다. 은주사까지는 30~40분, 다시 물노리선착장까지는 1시간 정도 잡아야 한다. 다만 배편이 많지 않으니 시간을 미리 확인하고 내려가야 한다. 정상에서 30분 걸린 1.3㎞ 거리의 가삽고개는 비교적 너른 평지다. 가삽고개에서 합수곡으로 내려가려는데 다들 힘이 남아도는 눈치다. 그냥 내려가면 미련이 남을 것 같아 등골산 능선으로 따라 가다가 휴양림 관리사무소로 내려가기로 했다. 위에서 소개한 A코스다.

가삽고개

 

가삽고개에서 새득이봉까지 0.6㎞는 등골산 능선의 일부로 완경사 오름길이다. 새득이봉에서 다시 완경사 숲길로 내려가다가 등골산 능선과는 작별을 하고 오른쪽 관리사무소 방향으로 급경사 길을 걸어내려간다. 길은 계속 흙길이지만 급경사인데다 평범한 숲의 연장이어서 지루하다. 막바지 장소는 낙엽송 군락지이나 인상적이진 않다.  결국 A코스가 B코스보다 더 길게 걷는 거 말고 딱히 내세울 것 없는 코스이므로 굳이 A코스로 길게 잡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10㎞거리 산행에 4시간 40분 걸렸다.

가리산 가는 길에 들러야 할 맛집과 조망좋은 장소가 있어 소개한다. 조망 좋은 곳은 화양강휴게소이고 맛집은 가리산 막국수(033-435-2704)다. 서울양양고속도로 동홍천IC에서 나와 44번 국도를 타고가면 곧 화양강휴게소인데 그 안에서 바라보는 홍천강이 나름 멋지다. 지금의 홍천강은 1970년대까지는 화양강이었으나 화양강의 발음이 화냥년의 ‘화냥’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홍천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가리산막국수 집은 블로그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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