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충북 괴산 희양산] 정상 주변의 환상적 바윗길과 조망은 급경사 암벽 구간을 힘들게 오른 산꾼들을 위한 보상이지요

↑ 조망처에서 희양산 암봉을 바라보는 종훈 선근 남근(왼쪽부터)

 

by 김지지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12㎞에 5~6시간

☞ 은티마을 → 호리골재 → 구왕봉 → 지름티재 → 희양산 → 희양산성 → 은티마을(원점회귀)

■등산에 앞서

경북 문경의 봉암사는 직접 가보진 못했지만 이름은 익숙하다. 1947년 성철 스님을 비롯 몇몇 젊은 스님이 현대 한국불교의 기틀을 마련한 이른바 ‘봉암사 결사’의 탄생지가 봉암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봉암사 뒤에 희양산이라는 거대 암봉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몇 년 전이다. 게다가 산림청과 블랙야크 지정 ‘100대 명산’이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희양산이 더욱 궁금해졌다.

그런데 다녀왔다는 사람이 주위에 없고, 봉암사 스님이 희양산 아래 지름티재에서 등산객의 산행을 가로막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러던중 문경에 사는 초중고 동창 남근과 통화하다가 희양산행 발동이 걸렸다. 남근은 과거 지름티재에서 스님한테 가로막힌 경험 때문에 지금도 그런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블로그를 찾아보니 스님이 가로막고 있다는 글이 보이지 않는다. 해서 남근과 다른 고교 친구 몇몇에게 의사를 타진하니 모두 “OK!”다. 그리하여 남근 선근 정형 종훈 태훈이 희양산으로 떠난 것은 2022년 6월 11일이었다.

희양산(999m)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가은읍의 경계에 있는 거대 암산(巖山)이다. 따라서 두 지역의 경계는 능선이다. 다만 능선에서 400m 남쪽에 있는 희양산 정상은 문경에 속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산 전체가 하나의 바위처럼 보이는데 그 거대 암봉이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난다고 해서 ‘햇빛 희(曦)’자에 ‘태양 양(陽)’자를 써 희양산이다. 다만 산행은 문경 쪽에서는 봉암사에 가로막혀 할 수 없고 괴산에서만 오를 수 있다. 대신 통바위로 된 암릉 정상 부근은 괴산 방향에서는 보이지 않고 문경 쪽에서만 보인다.

희양산 지도

 

■산행

우리 산행은 괴산 은티마을 주차장에서 출발해 오른쪽 호리골재를 지나 왼쪽 구왕봉와 희양산을 넘어 은티마을로 원점회귀한다. 코스와 거리를 살펴보면 은티마을 →(3.8㎞)← 호리골재 →(2.4㎞)← 구왕봉 →(0.5㎞)← 지름티재 →(1.0㎞)← 능선삼거리 고개 →(0.4㎞)← 희양산 정상 →(0.4㎞)← 능선삼거리 고개 →(1.0㎞)← 희양산성 →(3.2㎞)← 은티마을 순이다. 전체 거리는 12㎞ 남짓이고 쉬는 시간 포함해 6~7시간 걸린다. 코스 중 호리골재~구왕봉~희양산 구간은 백두대간 25~26 구간(22㎞)의 일부 구간과 중복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희양산 암봉. 왼쪽이 구왕봉이다. (출처 괴산군청)

 

▲들머리(은티마을)~구왕봉

은티마을 주차장은 넓고 깨끗하다. 마을에서 관리하는데 승용차 1대당 4000원을 받는다. 산행 들머리는 주차장에서 아스팔트길을 따라 1㎞ 정도 올라간 곳에 있다. 우리는 1㎞의 아스팔트길을 걷지 않으려고 들머리에서 200~300m 아래쪽 공터에 주차했다. 이 때문에 초입의 은티마을을 살펴보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들머리에서 왼쪽은 지름티재나 희양산 정상으로 바로 올라가는 코스이고, 오른쪽은 호리골재를 지나 구왕봉~지름티재를 넘어 희양산으로 가는 길이다. 들머리 해발고도가 400m이고 구왕봉은 898m, 희양산은 999m이므로 높여야 할 고도는 600m다.

초입 길

 

한동안은 임도로 사용되는 완만한 평지 흙길이다. 길 양쪽으로는 키가 크고 늘씬한 소나무가 도열해 있다. 들머리에서 호리골재까지 35분 걸렸다. 호리골재 오른쪽은 주치봉(689m)이고, 왼쪽은 구왕봉(898m)이다. 호리골재에서 은티마을까지는 3.8㎞이고 구왕봉까지는 2.4㎞다. 구왕봉 가는 길은 한동안 흙길이다가 경사가 조금씩 높아진다. 나무는 우람하지 않으나 숲이 우거져 해를 가려준다. 6월 중순인데도 연초록이어서 시각적으로도 편안하다. 앞서가는 남근이 전지가위로 나뭇가지를 치며 올라간다. 앞사람 때문에 퉁겨진 나뭇가지가 뒷사람의 얼굴을 때리거나 눈찌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남근은 산에 갈 때마다 이처럼 전지가위를 갖고 다니며 가지치기를 한다. 종훈이 재미있다며 따라한다.

전지 작업을 하는 남근과 종훈

 

남근은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을 했다. 서울에서 대기업 다니다가 30여년 전 문경에 정착한 후 지금은 문경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치원을 운영하며 원장 겸 운전기사로 어린이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 외동딸은 미국에서 피아노 박사학위를 받은 재원이다. 남근의 집사람 얘기를 들어보면 결혼 후 30년 이상 화를 낸 적이 없다고 한다. 수양의 결과일까 타고난 천성일까. 호리골재에서 45분을 오르면 은티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첫 조망터다. 그곳에서 15분 정도 더 올라가면 구왕봉이다. 잠시 숨을 고른 후 한참을 내려갔다가 그 이상 올라가야 하는 본격 산행에 대비한다.

 

▲구왕봉~지름티재

구왕봉에서 희양산으로 가려면 안부(鞍部)인 지름티재로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 거리는 500m이지만 고도는 잠깐 사이에 350m 정도 낮춰야 하는 급경사 구간이어서 곳곳에 설치한 로프를 잡고 바위 사이를 타고 내려간다. 이곳 로프는 다른 지역의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냥 늘어진 모습이 아니라 주변의 세 곳과 단단하게 연결해 안정감 있다. 그렇게 20분 정도 내려가면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 암봉으로 형성된 희양산이 바라보이는 첫 조망처다. 협곡 너머로 희양산 암봉이 거대하고 웅장하다. 오른쪽 협곡에 자리잡은 봉암사도 내려다 보인다. 암봉은 북한산의 백운대나 인수봉처럼 높이 솟은 모습은 아니고 북한산 원효봉처럼 펑퍼짐하면서 우람하다. 제주도 백록담 남벽처럼 솥뚜껑을 엎어놓은 모습이다. 희양산 조망처는 아래에 두 곳 더 있다.

희양산 암릉구간에서 바라본 구왕봉

 

조망처에서 희양산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고 급경사 바윗길을 조심조심 내려가니 짧은 거리인데도 50분이나 걸린다. 지름티재는 지명에서 짐작되듯 괴산 연풍과 문경 봉암사를 연결하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봉암사 산문이 막힌 지금은 한적한 산 속 삼거리일 뿐이다. 그곳에 봉암사에서 세운 등산인 감시초소와 울타리가 있다. 봉암사 일대 사찰림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임을 알려주는 안내판도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지름티재는 오랫동안 등산객의 원성이 자자했던 곳이다. 스님들이 길을 막은 이유는 등산객이 시도 때도 없이 정상에서 “야호” 소리를 질러 수행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란다. 요즘 세상에 누가 “야호!” 하나 생각하지만 막상 희양산 정상에 오르면 나도 모르게 그런 충동이 생기니 봉암사의 고충도 이해가 된다.

봉암사가 수행에만 정진할 수 있도록 일대 사찰림의 일반인 출입을 금한 것은 1982년이다. 이후 봉암사는 일년에 딱 한 번 부처님 오신 날만 산문을 여는 ‘비밀 수도원’이 됐다. 2002년부터는 희양산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인 작업을 전개했다. 희양산 일대의 자연생태계를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에 이 지역을 산림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보호지구로 지정해 줄 것을 건의했다. 이에 산림청과 경상북도가 200만 평 이상의 땅을 산림법상의 산림유전자원보전림으로 지정해 봉암사는 국내의 대표적인 사찰 보전림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름티재

 

▲지름티재~희양산

희양산 등산에서 가장 힘든 길은 지름티재에서 희양산 정상으로 오르는 1.0㎞ 코스다. 초반은 완경사의 흙길이어서 비교적 편안하다. 지름티재에서 15분 정도 오른 곳에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있는 거대 소나무가 자신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쉬어가라고 손짓한다. 남근이 굵은 소나무 가지에 오르고 선근이 소나무 옆에서 폼을 잡는다. 소나무 지나면서 조금씩 경사가 높아지더니 급기야 암벽을 타고 오르는 난코스다. 그중에서도 희양산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삼거리 고개에 올라타기 전 200~300m 구간은 로프가 없으면 올라갈 수 없는 가장 험난한 바위구간이다.

특히 마지막 70~80m 구간은 70도 이상의 경사각이 벼랑처럼 이어진다. 로프가 있긴 하나 산행 초보자에게는 무리가 따른다. 로프를 잡아도 물집이 생길 수 있어 장갑이 필요하다. 남근 태훈 종훈은 앞서 올라갔으나 선근과 나는 중간중간 쉬어가며 올라 많이 늦었다. 특히 나는 상체 근육이 발달하지 않은 탓에 더욱 힘들었다. 등산에는 발힘 뿐만 아니라 팔힘도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암벽 구간

 

신기한 것은 태훈의 산행이다. 수년 전 무리한 산행으로 무릎 수술을 하고 그래서 산에 오를 때는 무릎이 아프다면서도 꾸준히 산에 오른다. 고교 동창 4인끼리 다니는 그룹 산행 때는 전국의 산을 주유하고 홀로 산행할 때는 충북과 경북의 산을 돌아다니니 참으로 미스터리다. 태훈의 희양산행은 이번이 두 번째다. 수년 전 처음 올라갔을 때는 하도 힘들어 앞으로 절대로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이번에 친구들이 가자고 하니까 기꺼이 동참하더니 그것도 가장 앞서 걷는다.

지름티재~희양산 구간은 거리는 짧으나 급경사 바위 구간이 많아 속도가 안난다. 해서 등산객이 많은 주말에는 로프 구간에서 정체현상이 발생한다. 땅에 코가 닿을 듯한 오르막이 계속 이어져 지름티재에서 능선삼거리 고개까지 1㎞를 오르는데 1시간 10분이나 걸렸다. 힘들게 능선삼거리 고개에 올랐을 때 문득 들었던 생각은 이처럼 힘든 코스에 왜 데크 계단이 없느냐는 것이다. 워낙에 명산이어서 데크를 설치하면 전국에서 많은 등산객이 몰려들 것이 분명한데 데크가 없으니 이상했다. 사실 요즘은 전국 어느 산에 가도 과다하다 싶을 정도로 데크계단이 많다. 그런데도 이곳에 데크계단이 없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봉암사의 반대가 먼저 떠오른다. 즉 괴산 쪽은 봉암사의 소유지가 아니어서 공사는 할 수 있겠으나 능선이 봉암사 땅과 접해 있고 공사를 하려면 장기간 공사 소음을 피할 수 없으니 봉암사가 공사를 반대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확실한 것은 아니어서 괴산군청 희양산 담당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괴산군 내 많은 산들에는 데크가 있는데 왜 괴산군 최고 명산인 희양산에만 없느냐”고. 공무원은 희양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지 납득할만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봉암사의 반대 때문이냐”고 직설적으로 물었는데 그건 아니란다. 결국 공무원은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진 못했다. 그렇다면 데크계단이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나는 꼭 그렇진 않다는 생각이다. 봉암사가 국내 유일의 수행 도량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데크를 설치하지 않음으로 해서 등산객 수를 줄이고 고행의 등산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희양산 정상~은티마을(원점회귀)

희양산 조망의 클라이맥스는 능선삼거리 고개에서 희양산까지 0.4㎞ 구간이다. 이 구간은 오른쪽으로 구왕봉과 주변 산들을 바라보며 걷는 암릉구간이다. 구왕봉 뒤로 저 멀리 대야산, 장성봉, 남군자산, 비학산, 군자산, 칠보산, 보배산이 보이고 봉암사도 내려다보인다. 첩첩산중인데도 조망이 탁 트여 시원하다. 암릉엔 청초한 색의 소나무 군락도 있고 멋드러진 낙랑장송도 있다. 천 길 낭떠러지 위를 걷는 길이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희양산 정상으로 가는 암릉구간

 

마침내 희양산(999m) 정상이다. 들머리에서 4시간 30분이 지났다.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을 연결시키는 장성봉과 악희봉·민주지산 등이 바라보인다. 동북쪽으로는 주흘산·이만봉·황학산·백화산·뇌정산 줄기가 막힘없이 조망된다. 물론 산의 지형에 대해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이니 초심자에게는 그저 첩첩산중으로만 보일 뿐이다.

정상에서 쉬고 있는데 중년 여성이 다가온다. 몸은 자그마한데 군살 없는 몸이 범상치 않다. 알고보니 그날이 2009년부터 시작한 백두대간 산행이 끝나는 날이라고 한다. 블랙야크 지정 100대 명산은 2월에 끝냈다고 한다. 여성 홀로 하는 산행이라 무서울텐데 대단하다. 축하하는 마음으로 무겁게 들고 올라간 맥주 1캔을 건넸더니 벌컥벌컥 마신다. 괜히 뿌듯하다.

희양산 정상석에서

 

다시 능선삼거리로 되돌아와 동쪽으로 난 하산 길로 내려서니 곧 희양산성(928m)이다. 삼국사기에 ‘경순왕 3년(929년) 후백제 견훤이 그의 고향 가은을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돌아갔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곳이 과거 후백제와 신라의 각축장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그곳에서 출발지인 은티마을까지는 3.2㎞다. 급경사 구간을 한참 내려가다보면 길게 이어진 계곡을 만난다. 다시 평평한 임도를 거쳐 삼거리로 원점회귀하니 점심과 휴식 시간 포함해 6시간 50분 걸렸다.

희양산 정상석의 앞뒤

 

■봉암사

봉암사는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골짜기 안에 자리잡고 있다. 신라 선문 9산의 하나인 희양산파의 정점인 사찰로, 신라 헌강왕 5년(879년)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지선 스님이 창건했다.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불교계에서는 참선과 정진의 대명사이고 조계종의 정신적 자존심이다. 지금도 선방 스님들에게는 때가 되면 거쳐 가는 정진의 언덕이다.

봉암사가 이런 위상을 확보한 것은 해방 직후인 1947년 성철·청담·자운·우봉 스님 네 분이 이곳에 모여 왜색화로 급속히 타락의 길로 들어선 불교계를 향해 일갈한 이른바 ‘봉암사 결사’를 결행한 후였다. 한국 불교사에 한 획을 긋는 ‘봉암사 결사’ 이후 20여 명의 스님이 결사에 동참했고 법도를 세워 수행의 근간을 확립했다.

봉암사는 문화재 보고이기도 하다. 경내에는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보물 137호)과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보물 138호),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보물 171호),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비(보물 172호), 봉암사 삼층석탑(보물 169호) 등 많은 보물을 비롯 함허당득통지탑, 환적당지경지탑, 상봉대선사비, 노주석, 백운대, 마애불좌상 등의 문화재도 많다. 특히 지증대사의 일대기와 봉암사의 유래를 새긴 지증대사적조탑비(보물 제138호)는 100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거의 모든 글자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온전하다.

봉암사와 희양산(오른쪽). 왼쪽은 구왕봉이다.(출처 문경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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