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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거문도 가이드 2-①] 불탄봉~거문도등대 산행… 2~3월 붉은 동백은 소문과 달리 살짝 아쉽지만 해안절벽 위 능선길과 바다 조망은 최고

↑ 신선바위 위 쉼터바위에서 바라보이는 수월산과 거문도등대

 

☞ [여수 거문도 가이드 2-②] 녹산등대 초원길, 영국군 묘지, 회양봉 둘레길이 궁금하면 클릭!!

 

by 김지지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11~22㎞에 3~5시간

☞ 서도 덕촌~불탄봉~기와집몰랑~보로봉~목넘어(갯바위지대)~동백숲길~거문도등대

 

1년 전 2월, “해마다 2~3월이면 거문도의 동백꽃과 자생 수선화가 그렇게 멋질 수 없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거문도행을 야심차게 준비했다. 하지만 예정된 출발 당일 일기불순으로 배가 뜨지 않아 포기했더니 두고두고 아쉬웠다. 아내와 함께 다시 거문도행에 나선 것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22년 2월 25일이다.

거문도 지도

 

■거문도는

거문도는 전남 여수·고흥과 제주도 중간쯤에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손죽도·초도 등과 함께 112개 유·무인도로 이뤄진 여수시 삼산면에 속한다. 거문도는 서도, 동도, 고도 3개 섬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거문대교(서도~동도)와 삼호교(고도~서도)로 서로 이어져 있어 사실상 하나의 섬이다. 거문대교는 560m의 사장교이고 삼호교는 100m 정도 길이의 1차선 아치형 다리다. 동도와 서도는 농구공을 쥔 두 손처럼 마주 보고 있고 고도는 두 손바닥 사이에 있는 작은 섬 모양새다. 3개 섬 안쪽 바다는 사방이 섬과 방파제로 막혀 있어 호수처럼 잔잔하다. 고유 명칭은 도내해(島內海)다. 고도는 3개 섬 중 가장 작아도 거문도의 중심이다. 선착장, 면사무소, 파출소는 물론 숙소와 식당이 죄다 이곳에 밀집되어 있다. 여객선터미널도 고도에 있다.

거문도에서 호텔은 거문도섬호텔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모텔이나 민박이다. 육지의 모텔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거문도섬호텔은 비용(2인 기준 1박당 10만원)이 적당하고 쾌적한 것이 장점이지만 섬의 중심인 고도와는 도보로 20~30분 정도 떨어져 있어 불편한게 단점이다. 가장 유명한 민박은 숙소 일부를 일제 때 다다미방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고도민박이다. 숙소 내부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예약을 하려 했더니 코로나 때문에 임시 휴업이란다. 외관이 비교적 크고 깔끔한 곳으로는 패밀리호텔이 눈에 띈다. 우리는 시랜드모텔에 머물렀다. 식당(1층)을 겸해 편리할 것 같아 예약했는데 숙소 내부는 20~30년 전 여관 수준이다. 다른 곳도 별반 차이는 없어 보인다. 거문도에는 마을버스도 있다. 고도를 출발해 서도를 거쳐 동도까지 갔다가 다시 역순으로 되돌아오는 마을버스는 하루 6차례 운행한다. 왕복시간은 40분 정도다.

불탄봉 오르다가 바라본 고도(왼쪽)와 서도 덕촌(오른쪽). 저 멀리 봉우리는 수월산이다.

 

거문도는 다도해 여러 섬 중에서 비교적 남쪽에 있어 일찍부터 왜구들의 침략에 시달렸다. 이 거문도가 ‘Port Hamilton(포트 해밀턴)’ 이름으로 세계사에 등장한 것은 1885년 영국 함대의 무단 점령 때였다. 당시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한다는 핑계로 거문도를 점령했다. 이른바 ‘거문도 사건’이다. 영국은 무단 점령 40년 전인 1845년(헌종 11년) 거문도를 처음 발견한 후, 자국 지도에 영국 해군성 차관의 이름을 따 ‘포트 해밀턴’으로 등재했다.

 

■거문도 배편

섬 여행에서 언제나 중요한 것은 배편이다. 거문도처럼 3시간이나 걸리는 먼 섬은 더욱 그렇다. 거문도행 여객선 출발지는 전남 여수와 고흥이다. 그동안 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한 곳은 여수항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여수항이 불편해졌다. 여객선이 여수에서는 오후 2시 30분에 출항하고 거문도에서는 오전 8시에 출항하기 때문이다. 이렇게되면 거문도에서 1박을 한다 해도 거문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당일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다. 결국 거문도를 즐길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2박을 해야 한다. 선박시간표를 왜 이렇게 짰는지 궁금해 여수에서 출항하는 여객선 회사(061-662-0773)에 전화로 물어봤더니 “여수 출항 여객선은 지자체 지원을 받아 인근 도서민 위주로 운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흥의 녹동항에서 출항하는 거문도행 여객선은 하루 2편이다. 여수와는 달리 승용차도 가져갈 수 있다. 2022년 2월 현재 녹동항 출항 여객선 시간은 오전 8시(일반 여객선)와 8시 30분(쾌속선)이다. 거문도에서 출항하는 여객선 시간은 오후 1시(일반 여객선)와 오후 4시(쾌속선)다. 쾌속선은 거문도로 직행하지만 일반 여객선은 거문도 북쪽 손죽도와 초도를 경유한다. 소요 시간은 3시간(일반 여객선)과 1시간 30분(쾌속선)이다. 요금 차이가 수천원에 불과해 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여객선은 쾌속선이다.

위에서 안내한 출항 시간은 주중 시간이므로 주말 시간은 녹동항에서 떠나는 거문도 여객선 운영회사인 삼도해운(061-832-3434)에 따로 물어봐야 한다. 기상 등의 이유로 운항이 취소·연기되거나 출항 시간도 변경이 잦으므로 귀찮을 정도로 물어보는 것이 좋다. 섬 여행은 이래서 불편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그만큼 소중하다. 고흥 녹동항 주차장은 널찍하다. 여수항과 달리 주차비도 받지 않는다. 삼도해운 여객선은 녹동항여객선터미널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우리는 녹동항에서 8시 30분 출항하는 쾌속선을 타고 10시쯤 거문도에 도착, 1박 후 오후 4시에 거문도를 떠났다.

고도 선착장에 정박 중인 쾌속선(퍼스트퀸호)

 

■불탄봉~기와집몰랑~거문도등대 능선길

 

▲코스 개괄

거문도 산행은 서도의 불탄봉~기와집몰랑~거문도등대 코스가 사실상 유일하다. 그런데도 육지의 어느 산행지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 코스를 정리하면, 고도~삼호교~서도 덕촌~불탄봉~촛대바위~기와집몰랑~신선바위~보로봉~목넘어(갯바위지대)~동백숲길~거문도등대로 이어진 능선길로 갔다가 목넘어로 되돌아 내려와서는 콘크리트 포장도로(목넘어~유림해수욕장~삼호교)를 따라 원점회귀한다. 전체 거리는 11~12㎞나 되지만 길이 편하고 순해 3시간~5시간 정도면 가능하다.

이 코스의 매력은 바다를 내려다보며 걷는 능선길과 빼어난 바다 조망이다. 2~3월이면 새빨간 꽃이 눈길을 끄는 동백숲 터널이 장관이다. 능선 높이는 전체적으로 비슷하지만 굳이 높이를 따지면 불탄봉(195m)이 최고봉이다. 고도에서 산행지인 불탄봉 능선을 바라보면 동네 뒷산처럼 평범하다.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무명산의 변두리 산자락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산 속으로 들어가면 예상을 뛰어넘는 환상적인 절경이 기다리니 실망은 잠시 뿐이다.

거문도 동백꽃. 그나마 상태가 좋은 게 이 정도다.

 

▲덕촌(출발지)~불탄봉

불탄봉 산행 들머리는 고도에서 삼호교를 건너 우측에 있는 서도의 덕촌이다. 버스로는 5분, 걸어서는 20분 정도 거리다. 덕촌 앞 도로를 지나다 보면 안내표시가 있다. 불탄봉 1.1㎞, 목넘어 4.4㎞, 거문도등대 5.9㎞다. 능선을 향해 올라가면 고도와 동도 그리고 도내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덕촌에서 능선을 향해 10~20분(0.5㎞) 올라가면 덕촌삼거리 안내판이 있다. 직진하면 서도 북쪽 음달산(237m)까지 이어진 서도 종주길이다. 다만 그쪽 길은 안내표시가 없다. 사실 나는 불탄봉 코스를 다녀와 다음날 음달산까지 능선 종주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숙소에 돌아와 주인과 얘기하는 과정에서 음달산 코스가 별로라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숙소 주인은 불탄봉 코스와 달리 능선 정비가 안되어 있어 길을 잃을 수 있다며 만류했다. 그런데도 여수시 제작 거문도 안내지도에는 음달산 코스를 추천하고 있다. 타지 사람이 음달산 능선길을 걸어도 좋은지 여수시는 다시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삼거리에서 불탄봉으로 가려면 왼쪽 급경사 흙길을 타야 한다. 급경사길은 하늘이 안보일 정도로 빽빽한 동백숲이다. 그런데 동백꽃이 드문드문 피었을 뿐 기대했던 꽃 군락이 아니다. 동백꽃 무리를 보기 위해 일부러 2월 말에 찾아온 나로서는 맥이 빠진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여수시 제작 거문도 안내도에도 2월 중순부터 3월 초순이 동백꽃 절정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거문도를 소개한 지인도 같은 얘기를 했다. 반면 숙소 주인은 거문도 동백은 12월~1월이 절정이란다. 누구 말이 맞는것일까.

덕촌삼거리와 불탄봉 사이 동백나무숲

 

동백꽃은 반질반질 윤이 나는 진초록 이파리와 새빨간 꽃이 매력이다. 군락으로 피어야 동백꽃의 멋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텐데 띄엄띄엄 피니 아쉽다 못해 안타깝다. 동백나무숲은 울창한데 동백꽃은 간간이 보이니 풍요 속의 빈곤이다. 거문도는 동백의 섬이다. 섬 전체가 동백나무 천지다. 그렇다면 동백섬으로 불려도 좋으련만 어쩌다 부산과 여수한테 동백섬 이름을 빼앗겼을까.

불탄봉(195m)에 도착했다. 들머리 덕촌에서 1.1㎞ 거리다. 앞으로 가야할 신선바위까지는 2.2㎞, 보로봉까지는 2.5㎞, 목넘어까지는 3.3㎞다. 불탄봉은 불이 자주 나는 산이라는 뜻이다. 해발고도가 높지 않은 야트막한 야산이지만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망대 같은 봉우리다. 사방을 조망하기 쉽게 나무데크로 만든 전망대가 널찍하다. 벤치도 있다. 전망대 바로 아래에 일제가 만든 진지와 지하 벙커 흔적이 남아있다. 보로봉과 수월산까지 능선이 길게 이어져 있다.

불탄봉 전망데크

 

▲불탄봉~촛대바위~기와집몰랑

불탄봉에서 내려와 다시 능선을 따라가니 억새초원길이다. 봄날 햇살을 맞으며 발걸음을 뗄 때 마다 억새가 길 양옆에서 춤을 추며 반긴다. 능선길 오른쪽은 쪽빛 바다다. 하늘도 쪽빛이다. 문득 수년 전 가을 걸었던 여수 금오도 비렁길이 떠오른다.

능선에 펼쳐진 억새초원길

 

억새밭이 끝나면 하늘을 가린 동백숲이 다시 나타나고 그곳을 빠져나오면 불탄봉 코스의 하이라이트인 해안절벽길이다. 그 길을 가다보면 2m 높이의 촛대바위다. 자연바위가 아니라 주민이 세웠다는 촛대바위 옆은 아찔한 해안절벽이다. 촛대바위를 지나면 막힘없는 시야와 절경의 연속이다. 멀리 수월산까지 능선이 길게 이어져 있다. 촛대바위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유림삼거리가 있다. 불탄봉에서 1.7㎞ 지나왔고 신선바위는 0.5㎞, 목넘어는 1.6㎞ 남았다고 안내판이 알려준다. 바닷가 유림해수욕장까지는 0.7㎞다.

유림삼거리를 지나면 바위능선인데 거문도 최고 절경을 자랑하는 기와집몰랑이다. ‘몰랑’이 산마루란 뜻의 전라도 방언이니 기와집 형상의 산마루란 뜻이다. 능선에서 보면 단순한 해안절벽이지만, 섬 바깥 바다에서 보면 장대한 기와지붕처럼 보인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란다. 기와집몰랑 길을 걸어가면 아찔한 기암절벽 아래로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고 목넘어와 수월산까지 능선길이 길게 이어져 있다.

기와집몰랑 구간. 저 멀리 끝이 우리가 가야할 수월산이다.

 

바닷가쪽으로는 목책을 드문드문 쳐놓고 바닥에는 평평한 돌을 깔아놓아 국립공원 측의 노고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사방을 조망하며 느릿느릿 걷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산행이 끝날 때까지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아 온통 우리 부부만의 세상이다. 이런 호사가 없다. 아쉬운 것은 그곳이 기와집몰랑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없어 그냥 멋진 길이라고 감탄하며 걸었다가 나중에서야 그곳이 기와집몰랑이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현지에서 알았다면 느낌이 배가되었을텐데 아쉽다. 기와집몰랑 구간 중 바닷가쪽에 돌들을 높게 쌓아만든 4기의 돌탑이 있다. 고기잡이를 떠난 남편을 기다리며 안녕을 기원하던 섬 아낙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고 해서 이름이 소망탑이다.

소망탑

 

▲신선바위

기와집몰랑을 걸어가다보면 신선바위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데크가 나타난다. 덕촌에서 3.3㎞, 불탄봉에서 2.2㎞ 지점이다.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게 있다. 능선길을 걸을 때는 수시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기와집몰랑의 멋진 모습을 다른 시야에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모든 산행 때마다 수시로 뒤를 돌아본다. 반대 방향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궁금해서다.

신선바위는 신선들이 평평하게 생긴 바위 꼭대기에서 바둑을 두며 노닐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당시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신선바위 꼭대기에도 오를 수 있다. 물론 알았어도 아내가 오르기에는 살짝 힘에 부쳤을 것이다. 어쨌거나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니 꼭대기는 여러 사람이 앉아 쉴 수 있을 만큼 널찍하다.

신선바위는 바닷가에서 솟아오른 수십미터 높이의 암봉이어서 해안절벽 절경을 바라볼 수 있는 이를테면 맞춤형 조망대다. 일출과 일몰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특히 거문도등대 쪽으로 들쭉날쭉 내키는 대로 선을 그으며 이어진 해안가 풍광은 언제 보아도 으뜸이란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지나치지 말고 반드시 올라갈 것을 권한다. 나 역시 언젠가 거문도를 다시 찾을 때 필히 올라가볼 것이다. 이렇듯 산행은 때로는 놓치는 절경이 있지만 다시 오라는 산신령의 뜻이니 크게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다만 전망데크 부근 보다는 도보로 10분 정도 앞 쉼터바위 부근에서 올라가는 게 쉬워보인다. 쉼터바위에 서면 거문도등대가 비교적 크고 뚜렷하게 보인다. 거문도등대를 품고 있는 수월산(128m)도 비로소 정상부 모습을 보여준다.

신선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신선바위(오른쪽)와 수월산으로 이어진 해안단애

 

▲보로봉~목넘어~동백터널

신선바위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내리막으로 이어진 능선을 타고 0.4㎞ 동진하면 보로봉(170m)이다. 정상은 평평하고 원만한 구릉이다. 쉬어 가라고 벤치도 여럿 있다. 거문도등대, 고도, 동도, 삼호교 등 거문도 일대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정상 가운데에는 영국군 포대 흔적이 바위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는데 의식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보로봉에서 목넘어까지는 0.6㎞, 거문도 등대는 2.4㎞ 거리다.

보로봉 정상

 

보로봉을 조금 지난 곳의 동백숲도 일품이다. 동백숲을 지나면 마지막 조망터가 있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수월산과 해안절벽 그리고 거문도등대의 전체 모습이 장관이다. 목넘어로 내려가려면 365계단을 거쳐야 한다. 돌계단인데도 보도블럭처럼 잘 깔려 있다. 계단과 계단 사이 폭이 낮아 지친 발걸음의 피로를 풀어주는 듯 하다. 과문하지만 이처럼 멋진 계단은 전국에서 365계단이 처음이다. 365계단을 다 내려가면 콘크리트 포장도로다. 왼쪽이 유림해수욕장을 거쳐 고도로 원점회귀하는 바닷길이고 오른쪽이 목넘어(무넹이)다. 보로봉과 수월산을 이어주는 목넘어는 300m 정도 길이의 갯바위지대다. 태풍이나 해일 때면 바닷물이 넘나든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바로 앞 수월산(水越山) 이름도 목넘어(무넹이)에서 비롯되었다.

365계단 위 조망터에서 바라본 수월산과 거문도등대

 

이제 목넘어를 지나 수월산(128m)으로 올라간다. 목넘어에서 수월산을 올려다볼 때는 저곳을 또 올라가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자연석 돌계단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나타나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평지길이 있어 걱정할 건 없다. 삼거리에서 왼쪽길로 가면 수월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거문도등대 방향 길은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잘 정비된 1㎞의 숲터널이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울창하고 아름다운 동백 숲길이다. 동백꽃 좋은 곳으로는 경남 거제의 학동과 지심도, 강진 백련사, 월악산 월남경포대 계곡, 완도와 보길도 등이 손꼽히자만 자연 상태의 군락으로는 이곳 동백터널이 으뜸이란다.

365계단(왼쪽)과 수월산 아래 동백숲터널

 

중간쯤 가다가 뒤돌아보면 목넘어가 내려다 보이고 쪽빛 바다 건너에 보로봉에서 불탄봉으로 이어진 능선길이 쭉 이어져 있다. 봄엔 바닥에 떨어진 동백꽃이 융단처럼 깔려 차마 발걸음을 떼기가 조심스럽다는데 오늘의 나와 동백꽃은 그다지 인연이 없다. 동백꽃이 없진 않으나 드문드문하거나 시들시들하다. 그런데 왜 거문도 블로그마다 2~3월의 동백터널에 감탄사를 보내는 것일까 궁금해 관련 블로그를 찾아보니 동백이 다발로 핀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발로 핀 동백을 보겠다고 한겨울에 거문도를 찾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거문도 동백이 내게 어려운 숙제를 남겼다.

거문도
동백숲터널에서 바라본 목넘어(가운데)와 보로봉~불탄봉 능선

 

▲거문도등대와 관백정

동백숲길을 따라 20~30분쯤 걸어간 곳에 백색의 거문도등대와 관백정이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 거문도등대 입구는 잘 정돈된 정원 같다. 거문도등대는 1905년 4월 12일 점등한 후 100년 동안 남해안의 뱃길을 밝혀왔다. 인천 팔미도등대(1903.6.1)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점등이다. 물론 이 등대는 러일전쟁 중 군대와 물자를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해 일본군이 세운 것이니 어두운 역사의 산물이다. 프랑스에서 제작된 프리즘 렌즈는 적색과 백색 불빛을 15초 간격으로 교차 발산하는데 약 42㎞에서도 보였다고 한다. 다만 이 ‘원조’ 등대는 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하고 2006년 현대식으로 새로 지은 건물이 등대 기능을 하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거문도등대와 관백정

 

등대 옆에 관백정(觀白亭)이 서 있다. 39개의 무인도로 이뤄진 백도를 볼 수 있다고 해서 이름이 관백정이다. 3면 바다를 바라 볼 수 있고 일출과 일몰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2월부터 3월초까지 등대 뒤편 절벽에 수선화가 피어있고 그 수선화와 등대 모습을 한 컷에 담은 사진이 멋지다는데 나는 사전에 위치를 알지 못해 수선화를 만나지 못했다. 다행히 거문도등대 출입구 옆 잔디밭에서 잠시 잊고 있던 수선화가 무리지어 피어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거문도를 찾아온 이유가 동백꽃과 수선화였기 때문이다. 등대 뒤편 수선화는 자생(自生)이어서 가치를 인정받는데 등대 출입구 수선화는 누군가 심어놓은 것 같다. 그래도 자태가 단정하면서도 기품이 있어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거문도 수선화를 만나는 것은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로망 중 하나다. 초봄 육지 화단에서 만나는 수선화는 대부분 유럽에서 개량한 원예종이다. 꽃 전체가 노란색인 것이 많다. 거문도 수선화는 흰색 꽃잎에 컵 모양의 노란색 부화관(副花冠·덧꽃부리)이 조화를 이뤄 금잔옥대(金盞玉臺)나 금잔은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꽃의 모양이 옥이나 은으로 만든 잔대 위에 놓인 금 술잔 같다는 찬사다. 더구나 거문도 수선화는 오래전부터 야생 상태로 자라고 있다.

거문도등대 출입구 부근에서 자라는 수선화

 

▲원점회귀

고도 숙소로 돌아가려면 목넘어까지 되돌아갔다가 그곳에서 해안가 옆으로 난 콘크리트길을 걸어가면 된다. 목넘어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1.2㎞ 지점에 거문도섬호텔이 있고 그 앞에 유림해수욕장이 있다. 해수욕장에서 고도 여객선터미널까지는 다시 30분 정도 거리다. 우리는 걸어서 왔지만 몸이 지친 사람들은 택시를 타고 이동한다. 막상 걸어보니 별 무리가 없다. 유림해수욕장을 조금 지난 길가 언덕에 의병 지도자 임병찬(1851~1916)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이름이 다른 비에서는 볼 수 없는 ‘순지비(殉趾碑)’다. ‘殉(순)’이 ‘따라 죽다, 목숨을 바치다’는 뜻을 가진 한자어이고, ‘지(趾)’가 ‘발 또는 발자국’을 의미한다. 임병찬이 1916년 거문도에서 목숨을 다하자 후학이 그 발자취를 흠모하는 의미에서 ‘殉趾’란 단어를 비석명으로 새겨놓은 것이다. 임병찬은 전북 옥구 출신이지만 거문도와 인연이 깊다. 1889년 거문도진 설치 책임자로 임명되어 진을 설치하고, 최익현과 함께 유배된 대마도에서 1907년 풀려난 뒤 한동안 몸을 추스리고 있다가 1910년 조선의 패망 후 독립의군부 전라도 순무대장으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1914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거문도로 유배되었다가 1916년 5월 23일(음력) 거문도에서 순국했다.

거문도섬호텔과 유림해수욕장

 

서도와 고도를 잇는 삼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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