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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름 가봐수까 ⑭] 송악산 오름도 조망 멋지나 이곳이 각광받는 주요 이유는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쉬엄쉬엄 산책하는 바다둘레길 덕분

↑ 하늘에서 내려다본 송악산과 바다둘레길 (출처 Visit Jeju)

 

by 김지지

 

■송악산은

송악산(104m)은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위치한 제주도 최남단 땅이다. 해안절벽 남쪽 바다를 향해 돌출해 있다. 화산 폭발로 마그마가 바닷 쪽으로 흘러내려 쌓였기 때문이다. 제주도 동쪽 성산읍의 섭지코지를 떠올리면 된다. 분화구 형태는 먼저 폭발한 분화구에서 시차를 두고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나 또다시 작은 분화구가 생겨난 이중화산체다. 오름 아랫자락은 완만한 초원이다. 그곳에 낮고 평평한 기생화산(알오름)이 많아 한때는 ‘99봉’으로 불리기도 했다.

송악산에서 북동쪽을 바라본다. 사계해안과 산방산이 보이고 그 너머 멀리 한라산이 아스라하다. 송악산의 옛 이름은 절울이오름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소나무(松)가 많은 산(岳)이라는 뜻의 송악산으로 불리고 있다. 실제로 송악산 서쪽에는 해송이 멋진 군락을 이루고 있다. 송악산이 입소문을 타고 명소가 된 것은 해안절벽 위에 조성한 바다둘레길 덕분이다. 오름에 오르지 않고 둘레길만 걸어도 송악산의 매력을 한껏 누릴 수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찾는다. 그러나 송악산에는 흉터가 깊이 패어있다. 일제의 군사시설이 곳곳에 자리 하고 해방 공간부터 6·25 전생 사이에 겪은 민족상잔의 쓰린 역사를 제 몸에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송악산 지도

 

송악산의 매력은 정상부에서 바라보는 멋진 조망과 3~4㎞ 거리의 바다둘레길 산책이다. 정상부는 높이가 104m에 불과하지만 탁 트인 남쪽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최고 전망대다. 그런데 2015년 8월 자연훼손을 막는다며 자연휴식년제를 적용, 정상부엔 올라가지 못하고 바다둘레길만 걸어야 해서 아쉬움이 컸다. 물론 해안절벽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만 걸어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 것은 정상 탐방로 중 1~2코스를 개방한다고 발표한 2021년 8월이다. 덕분에 조망권이 더욱 넓어져 송악산을 찾아가야 하는 이유가 더 확실해졌다. 개방된 능선은 전체 길이 중 3분의 1 정도이다. 둘레 400m, 깊이 69m의 거대한 분화구도 내려다 볼 수 있다. 압권은 정상부에서 바라보는 사방의 조망이다. 산방산과 형제섬은 물론 용머리해안, 사계해안이 길게 이어져 있다. 정상부가 또 언제 폐쇄될지 모르니 만사 제쳐두고 오르고 볼 일이다.

송악산 분화구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걸어보고 살펴본 바다둘레길

 

▲들머리

바다둘레길 산책은 해안절벽 위 길을 따라 송악산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진행된다. 거리는 약 3㎞이고 소요시간은 1시간 40분 정도다. 주차장은 크고 깔끔하다. 주변에 식당과 카페 등도 많다. 바다둘레길 초반은 완만한 경사의 아스팔트 포장도로다. 2021년 8월 개방한 정상부 1코스는 이 부근에서 올라간다.

산책을 시작하기 전, 해변으로 내려가면 해안절벽 아래에 일제가 만든 동굴진지 15개가 바다와 맞닿아 있다. 어뢰정을 숨겨놓기 위해 일본군이 제주인을 강제동원해 판 인공동굴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역사를 알지 못한 채 오랫동안 관광지로 여겨왔다. 신혼부부들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 기념사진을 찍고, 드라마와 영화에도 숱하게 등장했다. 과거 인기 드라마 ‘대장금’도 이 동굴에서 촬영했다. 하지만 해안절벽이 풍화·침식작용 등에 따라 지속적으로 허물어져 지금은 해안 어귀부터 통제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산책길 입구에는 ‘대장금 촬영지’ 간판이 서 있다. 드라마가 끝난지도 꽤 오래되고 동굴 접근도 통제하고 있으니 이제는 간판을 없애거나 조그맣게 다시 만들어 구석에 세워두면 좋을 것 같다. 동굴진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글 아래에 다시 소개한다.

송악산 해안절벽 위에 조성한 바다둘레길

 

▲본격 산책… 형제섬과 제주 올레길 10코스

바다둘레길이 시작되는 해안절벽 위에 서면 동북쪽으로 산방산(395m)이 펼쳐 있다. 산방산 방향 바다 한 가운데엔 무인도인 형제섬이 외롭게 서 있고 그 너머로 멀리 한라산이 구름에 가려있다. 형제섬 중 길고 큰 섬인 본섬에는 작은 모래사장이 있고 작은 섬인 옷섬에는 주상절리층이 일품이다. 섬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이 장관이란다. 그런데 산방산 굴에서 내려다보면 두 섬 사이에 또 하나 작은 섬이 있다. 그렇다면 형제섬이 아니라 가족섬으로 바꿔 부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본격적인 산책은 초입에서 시작한 시멘트 포장길이 평평하게 깎아 만든 돌길로 바뀌면서 시작된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골프장 코스처럼 휘어 돌아가는 U자 모양이다. 길이 편하고 거리가 적당하다. 걷는데 부담이 없다. 왼쪽 바다와 오른쪽 오름을 두루 감상하면서 걸어본다. 가족과 연인의 산책 코스로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설사 오름 정상에 오르지 않더라도 바다둘레길 산책만으로 송악산은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다. 중간중간 벤치가 있어 바다를 바라보며 멍 때려도 좋다.

둘레길 대부분은 제주 올레길 10코스와 겹친다. 올레길 10코스는 산방산 동쪽 아래 화순금모래해수욕장에서 출발해 서쪽의 사계포구와 송악산주차장을 지나 송악산 산책길을 한 바퀴 돌아 하모해수욕장을 지나 모슬포항(하모해수욕장)에서 끝나는 17㎞ 코스다. 이중 산책길과 겹치는 구간이 송악산주차장~해송길이다. 오름 아래 초지에서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그곳에서 정상부로 올라가는 길이 최근 개방한 2코스다.

바다둘레길에서 바라본 산방산(왼쪽)과 형제섬(오른쪽)

 

▲절울이 오름과 가파도·마라도

시원스럽게 탁 트인 바다에 가파도와 마라도가 납작 엎드려 있다. 마라도는 한반도의 남쪽 끝 섬이고 가파도는 서귀포 모슬포항과 마라도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1653년 가파도에 표류한 네덜란드 핸드릭 하멜은 고국으로 돌아가 저술한 ‘하멜표류기’에서 ‘케파트’로 소개했다. 가파도에서 바라보면 송악산이 우뚝 서 있는 거대 성처럼 보인다.

가파도에서 바라본 송악산과 산방산 그너머 한라산 모습

 

궁금한 것은 제주도 360여개 오름 대부분은 오름으로 불리는데 왜 송악산 한라산 영주산 산방산 고근산 단산 군산 대록산 등 일부 오름은 산(山)으로 불리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과거 한양에서 제주로 부임한 관리나 제주로 유배 온 선비들이 비교적 규모가 큰 오름들을 육지의 산처럼 여겨 이름에 산을 붙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제 강점기 때 한자로 지명을 표기하면서 오래전부터 불려온 오름을 산으로 바꿔 표기했다는 설명이다. 개인적으로는 후자 설명에 공감이 간다. 물론 근거는 없다.

송악산 바다둘레길

 

송악산의 옛 이름은 절울이오름이다. 해안절벽 위에 서 있으면 멀리 남쪽 바다에서부터 달려온 파도가 바다와 맞닿은 해식동굴에 부딪히며 생기는 소리가 절(물결)이 우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제주말로 ‘물결(절)이 운다(울)’는 뜻의 절울인데 정말 그렇게 들리는지 귀를 열고 들어볼 일이다. 내 귀로는 그렇게 들리지 않는다.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쳐놓은 목책에서 페인트가 벗겨졌는데도 세월이 느껴져 오히려 반갑다.

둘레길 바닷 쪽으로 곡선으로 층을 이룬 기묘한 바위들도 있다. 산방산 아래 용머리해안이나 한경면 수월봉의 바위들과 비교하면 크기는 비교할 수 없이 작지만 형태는 비슷하다. 특히 ‘바람이 많이 부는 코지’라는 뜻의 부남코지 바위가 인상적이다. 코지는 곶(바다로 돌출한 육지)을 뜻하는 제주말이다. 송악산 노을이 그렇게 멋지다 하니 한번쯤 감상할 일이다.

 

▲전망대

길은 어느 순간 돌길에서 나무데크길로 바뀐다. 초입에서 1시간 정도 1.6㎞ 지점 바닷쪽으로 튀어나온 곳에 나무데크로 만든 제1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도착 전, 오른쪽으로 레이더기지가 있다. 1980년대 충남 보령의 한 섬에서 레이더기지에 근무한 나로서는 바닷가 레이더기지를 보면 언제나 반갑다. 봄가을 햇살 좋을 때 매트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 발가벗고 누웠던 기억이 새롭다.

송악산 제1전망대

 

제1전망대를 지나면 데크계단으로 오르내리는 길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제2, 제3 전망대를 지난다. 제1전망대와 송악산 오름 사이 움푹파인 곳에는 야자나무 100여 그루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바다둘레길 끝자락의 제3전망대에 이르니 검은모래로 유명한 하모해변이 서쪽으로 길게 펼쳐있다. 멀리서 바라본 해변은 사람이 없어 한적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하모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하모해변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하모해변에도 동굴진지 절벽이 있고 일부는 무너진 채 방치되고 있다.

하모해변

 

바다둘레길의 대미는 절울이오름에서 송악산으로 명칭을 바꾸게 한 소나무숲이다. 이른바 해송길은 너른 흙길에 분위기가 호젓하다. 중간중간 일제 동굴진지가 여지없이 패어 있다. 숲을 빠져나오면 송악산 오른쪽으로 돌아 들머리 방향으로 이어진다.

해송숲

 

■일본군 진지

일본군은 제주도를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삼았다. 7만 여명의 병력을 배치하는 ‘결7호’(決七號)라는 작전명으로 제주도 전 지역을 요새화했다. 그 일환으로 성산일출봉, 송악산, 서우봉, 삼매봉, 수월봉, 추자도 등 주요 해안 거점에 동굴진지를 구축했다. 송악산 해안절벽의 동굴진지는 일본군이 인간어뢰인 가이텐을 숨겨놓기 위해 제주인을 강제동원해 판 인공동굴이다. 가이텐은 사람이 어뢰에 탑승해 목표물까지 다가가 타격하는 자살 무기다. 가미카제가 자살 비행기면 가이텐은 자살 어뢰인 셈이다. 하지만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바람에 송악산 가이텐은 출정하지 못했다.

송악산 해안절벽 아래 일본군 동굴진지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 패망 직전 제주도에 구축한 동굴진지는 제주시 지역 75곳에 278개, 서귀포시 지역 45곳에 170개로 모두 합해 120곳에 448개나 된다. 동굴진지는 일본 해군 특공대의 소형 함정과 어뢰 등을 숨기기 위해 파 놓은 것이다. 제주도 동굴진지 중 가장 많은 수의 군사시설을 설치한 곳이 송악산 주변이다. 섯알오름 고사포 동굴진지, 알뜨르 비행장과 격납고, 해안동굴진지, 지하벙커 등도 있다. 현재 송악산 능선과 해안에서 발견된 진지동굴만 60개가 넘는다. 일본군이 알뜨르(아랫동산)에 건설한 격납고는 모두 38기였는데 현재는 19기가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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