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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 청량산] 축융봉에 올라 청량산을 조망하지 않고서는 청량산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지요

↑ 축융봉 전망대에 올라 청량산을 배경으로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나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5㎞ 거리에 3시간 정도

☞ 산성입구 →(0.6㎞)← 밀성대 →(1.4㎞)← 축융봉 정상 →(1.3㎞)← 공릉왕당 →(1.6㎞)← 산성입구(원점회귀)

by 김지지

 

2020년 11월 청량산 주요 봉우리에 모두 올랐는데도 궁금한 곳이 남아 있다. 청량사 건너편 축융봉에서 바라보는 청량산 전체 모습이었다. 축융봉에서 바라본 청량산 사진을 봉화군 홈페이지에서 처음 봤을 때 느낌은 “어떻게 이런 산이 우리나라에 있지”하는 감탄이었다. 그런데도 2020년 청량산 산행 때 축융봉에 오르지 못한 것은 해가 짧은 늦가을에 청량산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후 기회를 보다가 마침내 축융봉에 오른 것은 1년이 지난 2021년 10월 3일이었다. 동행자는 고교 동창인 동정 부부와 우리 부부였다.

청량산에서 바라본 축융봉

 

청량산 최고 조망터는 축융봉

청량산도립공원에서 축융봉(845m) 조망은 단연 최고다. 청량산 12개 봉우리 중 스스로를 제외한 나머지 11봉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망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축융봉에 올라서야 청량산이 왜 대한민국 명승 제23호로 지정되었는지 이유를 알게 된다. 청량산 소개 책자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청량산 사진들이 이곳에서 촬영됐다고 보면 틀림없다.

그런데도 청량산을 찾는 등산객 대부분은 자소봉, 하늘다리, 장인봉, 청량사 등 청량산의 명소들만 살피고 발길을 돌린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축융봉이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아니라 청량산을 멀리서 조망하기 위한 반사체라는 점, 일반 등산객이 하루에 청량산의 주요 봉우리를 탐승하고 축융봉까지 오르는 것은 다소 무리라는 점, 전체적으로 토산(土山)이어서 암산(巖山)인 다른 봉우리들에 비해 평범해 보인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축융봉에서 바라본 청량산 주요 봉우리들

 

축융봉 들머리는 두 곳이다. 한 곳은 도립공원 초입의 탐방안내소 옆이고 다른 한 곳은 청량계곡 상류 입석에서 아스팔트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있는 산성입구다. 탐방안내소에서 축융봉까지 거리는 2.9㎞이고 산성입구에서 정상까지 거리는 2.0㎞다. 두 코스 중 등산객들이 선호하는 들머리는 산성입구~축융봉 코스다. 탐방안내소 코스에 밀성대와 공민왕당 처럼 딱히 둘러볼 만한 곳이 없는 것도 산성입구를 찾는 이유다. 물론 계곡 최상류에 위치한 오마도터널 위에도 등정 코스가 있으나 다른 코스에 비해 거리(4㎞)가 길고 길의 특색이 없어 일반 등산객은 찾지 않는다.

우리 계획은 산성입구로 올라가 축융봉 정상을 지나 초입의 탐방안내소로 하산하는 것이다. 지도상 거리는 6㎞ 정도이고 시간은 3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그런데 서울에서 청량산까지 교통시간이 당초 예상보다 길어지고 해가 짧은 가을이고 하산 후 탐방안내소에서 주차 장소인 산성입구까지 걸어 올라가는데 50대 후반인 두 내자(內子)가 힘들어 할 것 같아 계획을 산성입구 원점회귀로 바꾸었다. 다행인 것은 산성입구에서 정상으로 올라가 다시 산성입구로 내려오는 길이 두 갈래여서 다르다는 점이었다.

 

산성입구에서 축융봉 정상까지 거리는 2.0~2.9㎞

우리는 밀성대~전망대를 거쳐 축융봉 정상에 올라갔다가 고려말 공민왕을 모시는 공민왕당을 거쳐 산성입구로 하산한다. 산성입구에서 밀성대까지는 0.6㎞, 공민왕당까지는 1.6㎞다. 밀성대를 향해 산성입구에 들어서니 곧바로 산성(山城)이 길게 이어진다. 산성은 경북 봉화군이 고려말 산성 흔적을 바탕으로 축조한 성이다. 그런데 이곳 산성은 내가 가본 우리나라 모든 산성 중 가장 반듯하고 완벽하고 잘 정돈된 모습이었다. 과장하면 중국 만리장성의 축소판 느낌이었다.

아래에서 축융봉까지 나 있는 공민왕성

 

산성을 따라 0.6㎞ 거리의 밀성대에 도착하니 25분이 지났다. 밀성대(密城臺)는 산성이 밀집되어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말 공민왕이 명령을 듣지 않는 군졸이나 백성들을 밀성대 절벽에서 떨어뜨려 처형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여기서 잠깐. 청량산과 공민왕의 관계를 알아본다. 공민왕은 1361년(공민앙 10년) 제2차 홍건적 난으로 수도였던 개경이 함락되기에 이르자 경북 안동 주변으로 몽진을 단행했다. 안동에 터를 잡은 후 최후의 보루로 삼을 수 있는 천혜의 지리적 요충지를 주변에서 물색하다가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새였던 청량산을 요새로 삼아 산성을 개축하고 군사를 훈련시켰다.

밀성대 정자에서 땀을 식힌 뒤 다시 오르는데 금탑봉, 자소봉 등 청량산 봉우리들이 발걸음을 따라 각도를 달리하며 파노라마처럼 흐른다. 밀성대에서 40분 정도 오르니 청량산 전체를 완벽하게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다. 이곳에 산성에 대한 설명이 지도와 함께 상세하게 적혀있다. 설명에 따르면, 청량산은 외부 침입을 막을 수 있는 천혜의 요소여서 삼국시대부터 신라와 고구려가 서로 영토를 빼앗기 위한 각축장이었다. 산성이 축조된 시기는 삼국시대로 보이는 일부 유물이 부근에서 수습되 것을 근거로 삼국시대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후 고려말 공민왕이 이곳으로 몽진했을 때 개축했다가 임진왜란 이후 다시 보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밀성대에 세워져 있는 정자. 뒤가 청량산이다.

 

산성은 밀성대 아래에서부터 축융봉을 거쳐 구축된 일명 ‘공민왕산성’과, 청량산의 경일봉에서 선학봉을 지나 청량사가 있는 계곡 옆으로 자연적이고 부정원형(不整圓形)인 포곡선(包谷線)을 그리며 형성된 일명 ‘청량산성’으로 구분한다. 축융봉과 경일봉을 잇는 일명 오마대로로 불리는 오마도산성이 공민왕산성과 청량산성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곳 산성은 석성(石城)과 토성(土城)으로도 구분된다.

전망대에서 10분 정도 오르면 밀성대 코스와 공민왕당 코스가 만나는 합류 지점이다. 정상 아래 0.2㎞ 지점에 있다. 합류지점에서 5분 정도 오르니 <안동 단천교까지 11.9㎞>라는 안내목이 비교적 너른 평지에 세워져있다. 단천교(다리)는 조선 중기의 대학자 퇴계 이황이 안동 도산면에서 출발해 축융봉을 지나 봉화 청량산에 올랐던 길을 되살려 오늘날 안동시가 조성한 퇴계예던길의 시작점이다.

 

고려말 공민왕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곳

마지막 급경사 철계단을 거쳐 마침내 축융봉 정상에 오른 것은 산성입구 출발로부터 2시간 10분이 지난 뒤였다. 밀성대에서 한참, 전망대에서 또 한참을 놀며 쉬면서 걸었더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축융봉 꼭대기는 여러 사람이 앉아 쉴 수 있는 평평한 바위다. 전설에 의하면 신선이 내려와 이곳에서 바둑을 두었다고 한다. 이곳 조망은 청량산 조망의 완결편이다. 안동으로 흐르는 낙동강 상류를 내려다 볼 수 있다는 것은 덤이다.

청량산 정상
축융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청량계곡과 낙동강. 오른쪽 가장 높은 봉우리가 장인봉이다. 그 오른쪽 선학봉과 자란봉 사이에 하늘다리가 걸려 있다.

 

사방의 멋진 조망을 눈 안에 꽉꽉채우고 공민왕당 방향으로 하산하는데 후회가 밀려온다. 부분부분 숲이 있어서 걸을 만은 했지만 하산길 전체가 사실상 임도여서 조망도 산행맛도 좀처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밀성대로 다리 내려가거나 축융봉을 지나 초입의 탐방안내소로 내려갔을 것이다. 투덜투덜대며 30분 정도를 내려가니 공민왕을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洞神)으로 모신 공민왕당(사당)이다. 지은지 얼마되지 않았고 관리를 잘해 깨끗하다는 것 말고는 특별히 인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다만 스토리는 있다. 공민왕이 청량산에 머물다 환도한 후 신하의 손에 비운의 죽음을 맞자 공민왕이 머물 때 감화를 입었던 산성마을 주민들이 공민왕당을 짓고 매년 제를 올렸다고 한다. 이후 공민왕당을 중심으로 공민왕부인당, 어머니당, 딸당 등 가족 단위의 사당이 인근 마을로 분화되어 청량산과 축융봉 일대는 공민왕 신앙의 중심지로 여겨지게 되었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고 그 심심한 길을 걸어 산성입구로 내려오는데 1시간 정도 걸렸다.

공민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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