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연천 고대산의 매력은 칼바위 암릉과 표범바위·폭포 그리고 철원평야와 북녘의 산하를 바라보는 정상 조망이지요

↑ 고대산 정상에서 바라본 철원평야 일대와 백마고지. 2018년 12월 촬영

 

by 김지지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코스와 거리 : 총 6㎞

     제2코스 들머리~말등바위~칼바위~대광봉~고대봉 정상~표범바위·폭포~날머리

☞ 산행 시간 : 4~5시간

 

경기 연천의 고대산을 처음 오른 것은 2018년 12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하지만 한겨울이어서 고대산의 진면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초록 산에 대한 궁금증으로 두 번째 고대산행이 기다려졌다. 그러던 중 아내와 뜻이 맞아 2021년 9월 11일 다녀왔다. 3년 사이 고대산은 많이 변해 있었다. 주로 고대산자연휴양림을 중심으로 일어난 변화인데 고대산을 특화하려는 연천군의 의지가 느껴졌다. 반면 고대산에는 지금도 손볼 곳이 많다. 그것은 이 글 아래에서 설명한다.

고대산 지도

 

■고대산은

고대산(832m)은 경기도 연천군 신선면과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경계에 있다. 하지만 정상(고대봉)이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땅이어서 연천의 산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등산로 역시 연천군에 발달해 있다. 연천군은 북으로는 민통선, 동으로는 강원도 철원군과 접해 있는 경기도의 최북단 땅이고, 고대산은 등산이 허용된 산 중 민통선에 가장 가까운 산이다.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 드넓은 철원평야와 6·25전쟁 격전지인 백마고지를 비롯, 날씨 좋은 날에는 아스라하지만 북녘의 산하까지 볼 수 있다. 그래서 고대산 등정의 백미는 시원하게 펼쳐진 정상 조망이다. 칼바위 능선에서 시작되는 암릉 걷기와 표범바위·폭포와의 만남도 산행 맛을 배가시켜 준다.

연천군에서 시작하는 주요 등산로는 세 곳이다. 거리는 고만고만하다. 비탈 역시 전반적으로 비슷하다. 제1코스는 2.72㎞, 제2코스는 2.65㎞, 제3코스는 3.03㎞다. 어느 코스로 올라도 2~3시간 정도는 잡아야 한다. 가장 인기있는 코스는 제2코스로 올라가 제3코스로 내려서는 경로다. 총 거리가 6㎞ 정도이므로 크게 부담도 없다. 가파른 오르막이 있어 다소 힘겹지만 중간 지점부터는 말등바위와 칼바위 등 조망처가 많아 산행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고대산 원경

 

■경원선과 신탄리역

고대산 가까이 경원선 신탄리역이 있다. 지금은 열차가 운행되지 않는 폐역이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동두천역에서 출발하는 통근열차의 종점역이어서 등산객들이 즐겨 이용한 역이다. 신탄리역에서 고대산 입구까지 거리는 1.3㎞에 시간은 20분 정도 걸린다. 하지만 이용객 급감과 동두천~연천 구간의 전철화 공사로 2019년 4월 철도는 중단되고, 대체수단으로 동두천에서 신탄리역까지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따라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산객은 1호선 전철로 동두천까지 갔다가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경원선은 1913년 개통 후 서울과 원산을 오가며 사람과 물자를 실어나르던 철도였으나 남북 분단 후 끊어졌다. 남쪽 구간의 마지막 역은 월정리역이지만 군사분계선 안에 있어 경원선은 신탄리역까지만 운행되었다. 지하철 1호선이 동두천까지 연결된 후에는 신탄리역 다음 역으로 2012년 백마고지역을 신설했으나 백마고지역도 경원선 중단과 함께 폐역이 되었다. 월정리역에는 북한군이 기관차만 떼어서 몰고 가고 버린 객차 15량 중 1량이 전시되어 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도 그곳에 서 있다.

 

■우리 산행은

 

▲들머리~칼바위 전망대

우리 산행은 2코스로 올라가 3코스로 내려온다. 2018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다. 이번에는 다른 코스로 올라갈까 했는데 등산객 대부분이 여전히 2코스를 선호해 그대로 따랐는데 결과적으로 잘했다는 생각이다. 1코스와 2코스의 시작점은 같다. 경사진 아스팔트길을 10분 정도 걸어올라가 고래산 자연휴양림에서 갈라진다.

고대산 제2코스 입구

 

출발에 앞서 화장실에 가려는데 등산로 입구에는 없고 반대방향 공원 쪽으로 100m 이상 떨어진 곳에 있다. 주차장 옆 화장실은 휴양림 이용객들만 들어갈 수 있게 비밀번호가 있다. 대책이 필요하다. 갈림길에서 2코스는 왼쪽 지능선을 타고 오른다. 처음엔 완경사로 이어지다가 데크계단부터는 급경사 돌길이다. 그렇게 20~30분을 올라가니 비로소 조망이 터진다. 조망이라야 앞산 정도가 보이는 수준인데 그곳에 쉼터 겸 조망터를 만들려는지 나무를 자르고 땅을 고르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그보다 더 급한 게 있다. 그것은 이 글 뒤에서 소개한다.

초입에서 50분 정도 올라간 곳에 노송과 조화를 이룬 말등바위가 있다. 말등바위에 오르니 저 멀리 정상이 보이고 계곡 건너편에서 제3코스의 거대한 표범바위가 고개를 삐죽 내밀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그런데 바위만 보고는 왜 말등바위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금방 와 닿지 않는다. 말등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어야 하는데 이리저리 살펴봐도 도무지 찾을 수 없다. 나중에 다른 블로그를 찾아보니 바위 한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것을 보고 말등바위라고 지었다고 한다. 말등바위를 지나니 산길이 더욱 가팔라진다. 중간중간 길게 이어진 통나무계단을 사진으로 찍어보니 그럴싸 하다.

말등바위에서 30분 정도 오르니 ‘칼바위 아래’ 안내판이 있다. 곧 칼바위 능선이 시작되나 보다 생각하고 오르는데 도무지 칼바위가 나타나지 않는다. 10분 정도 지나서야 칼바위 전망대가 나타나고 다시 5분 정도 올라야 칼바위 능선이 시작된다. 성급하게 일찍 안내했다는 생각이 든다.

말등바위(왼쪽)와 칼바위 능선

 

칼바위 전망대에 서니 비로소 사방이 훤하다. 정상은 더욱 가깝게 보이고 표범바위 뒤 철원평야도 시야에 들어온다. 살짝 아쉬운 것은 전망대에서조차 칼바위 전모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전망대 구석에서 고개를 쭉 내밀고 봐야 겨우 일부가 보인다. 칼바위 전체를 볼 수 있도록 전망대 데크를 앞쪽으로 좀더 길게 만들었다면 칼바위를 조금 더 자세하게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칼바위는 양쪽이 수십 길 절벽이라는데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고대산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제2코스의 칼바위 전망대에 변화를 주거나 제3코스에 칼바위 전망대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

오늘 살펴보니 고대산 등산객이 의외로 많다. 유명 음식점이 그러하듯 한번 왔던 사람이 또 찾아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등산시에나 하산시에나 계속 추월당했다. 쉬엄쉬엄 즐기면서 올라가기 때문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정상에 빨리 오르는 것을 자랑했으나 지금은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고 사진을 찍느라 늦어진다. 산은 아무리 급경사라 해도 쉬엄쉬엄 올라가면 힘들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는 중이다.

 

▲칼바위 암릉~대광봉

칼바위 전망대를 지나니 곧바로 칼바위 능선이다. 100m 정도 되는 칼바위 암릉은 고대산에서 가장 위험한 구간이지만 절벽 양쪽에 굵은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실제로는 위험하지 않다. 칼바위 암릉은 전국의 다른 명산에 비하면 다소 싱거워 보일 수도 있으나 그래도 고대산에서는 드물게 보이는 암릉 구간이다. 칼바위 암릉에서 10분 정도 오르면 ‘休(휴)’라는 이름의 쉼터가 있다. 허리 높이의 반듯한 자연석 바깥에 낮은 키의 돌담을 쌓고 그 사이에 5개의 통나무 의자를 세웠는데 아담하다. 쉼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은데 중년의 두 여성이 통나무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진을 치고 있어 찍을 수 없다. 결국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생각 없는 이 여성들은 좀처럼 쉼터를 떠날 생각이 없다.

쉼터를 지나 20분 정도 오르면 주능선인 대광봉(810m)이다. 드디어 주능선의 광활한 경치가 드러난다. 0.5㎞ 떨어진 고대산 정상이 한걸음이면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진다. 남쪽 산그리메도 멀리서 다가오는 파도처럼 첩첩이다. 등산객 중 일부는 대광봉에 세워놓은 정자 고대정에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사방을 조망한다. 대광봉을 뒤로 하고 평탄한 능선을 따라 20분 정도 걸어가면 삼각봉(815m)을 지나 널찍한 고대산 정상인 고대봉(832m)이다. 대광봉~고대봉 능선길 왼쪽으로는 철원평야가, 오른쪽으로는 빽빽한 산줄기들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고대산 정상에서 바라본 대광봉 고대정. 수년 전 후배가 촬영했다.

 

▲고대산 정상

정상은 50평은 됨직한 울퉁불퉁한 너른 공간을 다져 나무데크를 깔고 그 위에 폐타이어를 덧붙혀 유사시 군 헬기장으로 사용된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그야말로 일망무제다. 사실 이 맛에 고대산에 오른다는 등산객이 대부분이다. 남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고대산보다 높은 철원의 금학산(947m)이 우뚝하다. 북동쪽 철원평야 너머로는 김일성고지와 피의능선이 시야에 들어온다는데 지형을 알지 못하는 내 눈엔 보이지 않는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남쪽으로 60㎞ 거리의 도봉산과 북한산도 보이고 그 북쪽으로 휴전선 너머인 개성 송악산도 보인다는데 아는 게 없어 식별 못하기는 매한가지다. 정상은 사방으로 뚫려 있어 해넘이는 물론 해돋이 공간으로도 유명하다.

고대산 정상

 

북쪽으로는 6·25전쟁 격전지였던 백마고지와 철원평야, 그 너머로 멀리 북녘땅이 펼쳐진다는데 오늘은 날씨가 쾌청하지 않아 북녘 땅은 시야에 없다. 6·25전쟁 당시, 강원도 철원군, 김화군, 평강군은 북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교통의 요충지여서 양측은 이른바 ‘철의 삼각지’로 불리는 이곳에서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 그 중 가장 치열하고 큰 전투가 벌어진 곳이 고대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철원의 백마고지(395m)다.

백마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1952년 10월 6일~15일까지 10일 동안 국군 9사단과 유엔군이 중공군과 고지 점령과 탈환을 되풀이하는 혈전을 12차례나 벌인 끝에 우리 군이 승리했다. 덕분에 철원군은 남쪽 수중에 떨어졌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은 1만여 명, 국군은 350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백마고지 이름은 미군 전투기 조종사가 공중에서 내려다봤을 때 “포격으로 산 정상의 나무와 풀이 모두 사라져 백마가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 붙여졌다.

고대산 정상

 

고대산 주변에서도 큰 전투가 있었다. 고대사·보개산 전투인데 고대산 정상 앞에 세워진 ‘6·25전사자 유해발굴 기념지역’ 안내문에 따르면, 전쟁 당시 유엔군이 전초 기지로 활용할 전진 한계선을 확보하기 위해 국군과 유엔군이 1951년 5월 5일부터 11일까지 7일간 중공군에 맞서 싸워 923명을 사살했다. 국군은 전사 31명, 부상 127명이 피해를 당했다는데 양측 숫자에 차이가 커 통계가 약간은 의심스럽다. 고대산 일대는 이렇듯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정상에는 남쪽 보개봉까지 종주하는 코스 지도도 있다. 고대산정상~보개산(710봉)~보개산(희선봉)~보개봉(지장봉) 능선을 지나 보개산 입구로 내려가는 11.8㎞ 코스다. 언젠가 다녀오리라 생각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고대산 정상에서 바라본 보개산 종주 코스

 

▲하산길과 표범바위·표범폭포

제3코스 하산길은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군부대 왼쪽 옆길이다. 한동안 편안한 흙길이다가 군부대 옆길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급경사다. 한참을 내려가니 인부들이 통나무 계단을 설치하고 있다. 그들의 노고에 “고맙다”고 인사하니 인부가 “통나무를 헬기로 내려주기로 했는데 전방이어서 헬기를 띄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연천군청이 뒤늦게 알고 지금은 일일이 지게로 나르다보니 공사마감일인 8월 8일을 훌쩍 넘기고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한다. 최전방 공무원들이 헬기 수송이 안된다는 것을 모르고 공사를 시작했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통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한동안 너덜길이다. 더 내려가면 내리막이 이어진다. 정상에서 1시간 20분 정도 내려갔을 때 ‘마여울 아래’ 푯말이 보이는데 마여울은 부근의 계곡을 뜻한다. 하산길이 평범한데다 조망까지 없어 아내와 나는 “제3코스는 별로”라고 말하며 내려오는데 곧 표범바위와 표범폭포를 보고는 생각을 고쳐잡았다. 문제는 거대한 표범바위가 무성한 나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금 아래로 내려가니 표범폭포와 연결되는 갈림길이다. 제3코스 초입에서는 1.1㎞, 정상에서는 1.93㎞ 거리다. 표범폭포는 갈림길에서 100m 정도 계곡으로 내려간 곳에 있다. 길을 따라가면 거대한 표범바위 상단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곳에서도 표범바위 전모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내린 결론은 표범바위 전망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표범바위(왼쪽)와 표범폭포

 

고대산의 3대 매력을 꼽으라면 칼바위 암릉과 표범바위·폭포 그리고 철원평야와 북녘의 산하를 바라보는 정상 조망이다. 표범폭포 쪽에서 표범바위를 위로 쳐다보면 일부만 보이므로 표범바위를 정면에서 바라보거나 내려다 볼 수 있게 전망대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전망대가 없어도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엔 전모를 볼 수 있겠지만 수풀 무성할 때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요즘 전국 지자체마다 전망대 데크가 유행인 것을 연천군도 모르지 않을테니 연천군수의 분발을 기대해본다. 이 글 위에서 언급한 더 급한 곳이란 바로 이 표범바위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다.

제3코스 들머리에서부터 표범폭포까지 1㎞ 거리를 가벼운 복장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을 좀더 다듬는 것도 검토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하면 표범바위와 폭포가 고대산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고 더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을 것이다. 표범폭포는 20~30m 높이의 깎아지른 계곡 절벽에서 쏟아져 내리는데 웅장하기 보다는 가늘고 길다. 평소라면 절벽을 적시는 정도의 물길이겠지만 수 일 전 내린 비 덕분에 오늘은 운좋겠도 제법 그럴싸하다. 폭포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었더니 마치 폭포수와 벼락이 하늘에서 떨어지다가 내 머리 위에서 나를 피해 갈라져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인생샷 한 장 건졌다.

표범폭포 갈림길부터 하산길은 순해진다. 흙산에 경사도 완만하고 운치가 있다. 꼬불꼬불 산길을 걷는 맛이다. 그렇게 내려가다 보면 신탄리역으로 연결된 포장도로를 만난다. 오늘 산행에서 불과 6㎞ 정도를 걷는데 총 6시간이나 걸렸으니 많이 걸렸다. 그만큼 놀며쉬며 걸었다는 뜻인데 이게 요즘 내 산행 스타일이어서 오히려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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