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장흥 천관산]은 호남의 5대 명산… 다도해를 배경으로 펼쳐진 부드러운 능선과 곳곳에 삐죽삐죽 솟아있는 암봉이 매력적인 곳

↑ 환희대에서 바라본 구정봉

 

by 김지지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코스와 거리 : 총 7.8㎞

    관리사무소(주차장) → 금강굴 → 환희대 → 연대봉(정상) → 양근암 → 주차장(원점회귀)

☞ 산행 시간(휴식 포함) : 5시간

 

2021년 5월 29일, 순호 영석 영일 정형이 전남 장흥 땅의 천관산에 올랐다. 천관산은 산림청, 블랙야크, 월간산이 정한 100대 명산인데도 넷 다 처음이다. 장흥 땅도 처음이다. “장흥에서 글자랑하지 마라”는 말이 있다. 송기숙·이청준·한승원·이승우 등 현대소설에서 일가를 이룬 유명 작가들이 장흥 땅에 태를 묻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흔적을 쫓는 건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천관산에만 집중한다.

 

■천관산은

 

천관산(天冠山·723m)은 지리산, 내장산, 월출산, 능가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이다. 누가 정했을까. 조선 성종 때 문인 성임이다. 그는 내장산을 방문하고 남긴 기록 ‘정혜루기’에 ‘남원 지리산, 영암 월출산, 장흥 천관산, 부안 능가산이 있다. 정읍 내장산도 그중의 하나다’라고 기록했다. 이를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그대로 인용하면서 이후 호남의 5대 명산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능가산은 변산의 다른 이름이다.

천관산을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한 것은 가을 능선의 억새밭과 기암괴석의 암봉이다. 우리는 5월 말에 갔으니 억새가 있을리 없다. 억새가 어느 정도인가 궁금해 관련 글을 찾아봤더니 이런 글이 있다. “억새군락이 다른 억새 명소만큼 압도적이거나 거대하지 않다” “억새군락은 성글다. 한쪽 능선을 다 뒤덮은 이름난 억새 명소에다 대면 ‘하품 나는’ 수준이다.” 결론은 소문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글 말미에 “그럼에도 가을 천관산 얘기를 억새부터 시작하게 되는 건, 대단찮은 규모임에도 능선의 억새가 주변의 경관과 기막히게 어우러지기 때문”이라고 한 대목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 주변의 경관이란 환희대~연대봉의 부드러운 능선과 다도해 그리고 가을의 쾌청한 날씨를 말한다.

환희대에서 연대봉 사이 능선. 가을이면 억새밭으로 변한다.(출처 장흥군청)

 

실제로 멀리 다도해를 배경으로 펼쳐진 부드러운 능선과 곳곳에 삐죽삐죽 솟아있는 암봉은 천관산의 최고 매력이다. 그 모습이 천자(天子)의 면류관(冕旒冠) 같다고 해서 천관산(天冠山)이다. 중생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이타행의 수행을 겸하는 천관보살에서 왔다는 등 다른 유래도 있다. 기암괴석 덕분에 천관산 일대는 2020년 9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명승 전체로는 119번째이고 산으로는 32번째다. 참고로 명승 제1호는 1970년 지정된 오대산 소금강이다.

 

■주요 등산 코스는 세 곳

 

천관산의 주요 들머리는 세 곳이다. 천관산도립공원 주차장, 천관산자연휴양림, 천관산문학공원이다. 어디서 출발하든 1시간 30분~2시간이면 정상에 해당하는 환희대~연대봉 능선(1㎞)에 닿는다. 등산로는 환희대~연대봉 능선을 빼대로 삼아 여러 가닥의 지능선들이 사방으로 뻗어내려간다.

천관산도립공원에서 출발하는 코스도 세 곳이다. 공원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부터 금강굴, 금수굴, 양근암 코스다. 세 코스 모두 4~4.5㎞ 거리에 2시간 정도 걸린다. 이중 가장 많이 이용하는 등산로는 금강굴~양근암 코스다. 코스마다 모양과 높이가 각기 다른 기암괴석들이 저마다 개성을 드러낸다.

천관산도립공원 코스

 

천관산문학공원 코스 역시 지능선이 세 곳이다. 첫째는 왼쪽으로 올라가는 구룡봉~환희대~연대봉이고 둘째는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불영봉~연대봉~환희대이다. 셋째는 불영봉에서 왼쪽의 탑산사를 지나 구룡봉으로 올라가거나 환희대~연대봉 능선 중간 지점으로 올라간다. 탑산사에는 주차장이 있어 차를 갖고 올라갈 수도 있다. 다만 탑산사 주차장까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상당히 좁다는 건 단점이다. 천관산문학공원 코스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코스는 탑산사를 거쳐 구룡봉~환희대로 올라가 연대봉~불영봉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다. 7.4㎞ 거리에 4시간 정도 걸린다.

천관산자연휴양림 코스는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지능선을 타고 올라가 반대방향으로 원점회귀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암봉은 진죽봉이다. 휴양림 코스는 다른 즐거움도 있다. 큰길에서 휴양림으로 들어가는 약 6.5㎞의 비포장 진입로가 차로 지나가기엔 아까운 ‘하늘 숲길’이라는 점이다. 산 중턱으로 나 있는 임도는 전망이 좋고 자연스러운 옛길의 모습이어서 가는 내내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하이라이트는 천관사까지 이어져 있는 임도다. 고즈넉한 숲길을 따라 절까지 길이 나 있는데, 가는 내내 천관산 능선의 그림같이 멋진 기암들을 보면서 걸을 수 있다.

천관사(출처 장흥군청)

 

장흥군 홈페이지에 따르면 연대봉까지 각 코스의 거리와 시간은 이렇다. △양근암 코스 : 2.5km, 1시간 30분 △금수굴 코스 : 2.4km, 1시간 50분 △금강굴 코스 : 4.5km, 2시간 10분 △천관산문학공원(탑산사~구룡봉~환희대~연대봉) 코스 : 4.2km, 2시간 △천관산자연휴양림 코스 : 2.8km, 1시간 30분

 

■우리 산행은 금강굴 코스

 

우리는 금강굴 코스로 올라가 양근암 코스로 하산한다. 즉 천관산도립공원 주차장~금강굴~구정봉~환희대~연대봉~양근암(봉황봉 능선)~주차장이다. 총 거리는 8㎞에 4시간 정도 예상된다.

 

▲천관산도립공원 주차장~환희대

등산로 초입에 ‘호남제일 지제영산(支提靈山)’이라고 쓰여 있는 대형 바위가 천관산의 옛 이름이 지제산(支提山)이었음을 알려준다. ‘지제’는 ‘천관보살이 머무는 곳’이란 뜻의 불교 용어다. 금강굴 금수굴 양근암 세 코스는 조금씩 올라가면서 갈라진다. 금강굴과 금수굴 코스는 장천재(장흥 위씨 문중의 재실)와 풀밭 좋은 체육공원을 지나 제 갈길을 간다.

천관산도립공원 코스 초입. 바위에 ‘支提靈山(지제영산)’이라고 쓰여있다.

 

오름길 초반은 경사가 심하지 않은 편안한 숲길이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오르면 천관읍이 내려다보이는 첫 조망처가 나온다. 왼쪽의 금수굴과 양근암 능선이 환희대~연대봉 능선을 향해 길게 뻗어있고 오름길에는 첫 암봉인 선인봉이 우뚝 솟아있다.

조망처를 지나면 기암괴석들이 연이어 나타나고 20분 정도 지나면 종봉 아래 금강굴이다. 선인봉이든 종봉이든 안내판이 없어 암봉 이름을 알지 못한 채 지나간다. 환희대까지 이런식이다. 명색이 도립공원인데도 안내가 부실하다. 금강굴을 지나 데크계단으로 오르니 또 다른 기암괴석이 하늘을 향해 삐죽 솟아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대세봉이다. 영석이 먼저 올라가 우리를 맞는다. 그곳 안내판 끝에 ‘산동인(山東人)이 문장봉이라고도 부른다’는 문구가 있는데 산동인이 뭘 말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기암기석의 암봉들

 

대세봉 부근에 천관사 갈림길이 있다. 그곳 안내목에 따르면 아래 장천재(도립공원) 주차장까지는 3.1㎞, 천관사까지는 1.6㎞다. 위 환희대까지는 0.6㎞, 연대봉까지는 1.4㎞다. 대세봉에서 10분 정도 오르면 보현봉 지나 천주봉(天柱峰)이다. 보현봉도 안내가 없어 모르고 지나쳤다. 천주봉은 천주(天柱)를 깎아 기둥으로 만들어 구름 속으로 꽂아 세웠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암봉마다 꼭대기에 올라 폼을 잡고 싶지만 내 나이에 무리다. 그런데도 조망이 좋다 싶으면 암봉에 올라 폼을 잡아보라고 영석이 채근한다. 못이기는 척 암봉 중간 쯤에 올라 폼을 잡으니 그럴 듯 하다.

곧이어 구정봉 지나 환희대다. 구정봉의 존재도 안내판이 없어 그냥 지나쳤다가 환희대 옆에 세워놓은 안내판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구정봉(九情峯)은 당번봉(천주봉)과 비로봉 등 아홉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진 형상의 바위를 이르는 명칭이다. 구정봉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부드러운 능선에 어떻게 저런 모습의 암봉들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는지 신기할 뿐이다.

 

▲환희대

환희대는 대장봉(大臟峯) 정상의 평평한 석대다. 대장봉은 ‘책바위가 네모나게 깎아져 서로 겹쳐 있어 만권의 책이 쌓여진 것 같다’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에 ‘환희대는 올라가는 사람이 험한 길에 지친 몸을 여기에서 쉬게 되므로 기뻐하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요즘은 영화 ‘해적’(2014년)에서 옥새를 삼킨 고래를 잡으러 떠나기 전 산적들이 의기투합하는 장소로 등장하면서 유명해졌다. 천관산의 최고봉은 연대봉이지만 천관산의 사실상 중심은 환희대다. 모든 코스가 이곳으로 집중되고 기암괴석이 가장 밀집해 있는 곳이 환희대이기 때문이다.

환희대

 

환희대에서 도립공원 주차장까지는 3.7㎞, 금강굴까지는 0.8㎞, 천관사까지는 2.3㎞, 천관산자연휴양림까지는 1.9㎞, 연대봉까지는 1.0㎞, 탑산사까지는 1.9㎞, 구룡봉까지는 0.6㎞다. 우리 코스에는 구룡봉이 없지만 이왕 환희대까지 올라갔다면 남서쪽 0.6㎞ 지점의 구룡봉까지 갔다가 오는게 좋다고 한다. 그곳에 기묘한 바위들이 밀집해 있고 다른 능선의 기암괴석들까지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환희대에서 연대봉까지 1㎞는 부드러운 능선이다. 가을이면 그 능선에 억새밭이 넓게 펼쳐진다. 따라서 환희대~연대봉 능선은 사실상 천관산의 랜드마크다. 오른쪽으로는 보성만(득량만) 바다를 사이에 두고 고흥반도가 길게 이어져 있다.

환희대에서 연대봉 가는 능선

 

▲연대봉

연대봉(烟臺峰)은 옛날 봉수를 위해 연기를 피우던 석축을 1986년 재현한 것으로 천관산 정상이다. 알다시피 봉수(烽燧)는 고려·조선 시대에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를 올려 변방 지역에서 발생하는 병란이나 사변을 중앙에 알리던 통신 제도다.

연대봉에서 장천재까지는 3.2㎞, 탑산사까지는 1.6㎞, 불영봉까지는 1.5㎞ 거리다. 맑은 날 연대봉에 서면 남해안 다도해, 영암의 월출산, 장흥의 제암산, 광주의 무등산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5월 말의 시야는 뿌여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멋진 풍광을 보려면 모든 사물의 경계가 선명해지고 깨끗한 가을에 올라와야 한다.

연대봉

 

▲봉황봉(양근암)으로 하산

하산은 봉황봉 능선으로 내려간다. 중간에 남근석을 닯은 양근암이 있다고 해서 양근암 코스다. 지능선을 따라 내려갈 때는 관산읍의 너른 평지와 보성만(득량만) 바다를 내려다보며 걷는다. 전체적으로 경사가 완만하다. 중간쯤에 층층이 쌓여있는 바위가 서 있다. 대궐의 정원에나 있어야 할 바위라로 해서 이름이 정원석이다.

정원석을 지나면 흔들바위가 있고 다시 5분 정도 내려가면 높이 15척 정도의 남성의 성기를 닮은 큰 돌이 나타나는데 여성의 성기를 닮은 금수굴과 마주 보고 서 있어 이름이 양근암 혹은 양근석이다. 양근암 바로 아래에 몇권의 책이 꽂혀 있는 듯한 바위가 나오는데 안내판이 없어 나홀로 ‘책바위’라고 지어봤다.

정원석(왼쪽)과 양근석

 

양근암 능선은 거의 다 내려갔다고 해서 편안한 길을 기대하면 오산이다. 마지막 구간에서 급경사 내리막길로 곤두박질치기 때문이다. 마지막 지점은 장안사다. 절의 앞뜰을 지나 하산하거나 절을 거치지 않고 직진해 내려가면 금강굴 금수굴 양근암 코스가 만나는 삼거리다. 소요 시간과 거리를 계산해보니 7.8㎞에 5시간 걸렸다.

오른쪽이 양근암 코스이고 왼쪽이 금수굴 코스다. 멀리 관산읍과 보성만(득량만)이 보인다.

 

산행 후 한달만에 만난 순호가 “자꾸 천관산이 떠오른다”며 “또 가고 싶다”고 한다. 작년 가을 허벅지에 큰 부상을 당해 한동안 산에 오르지 못했던 영일은 천관산을 다녀와 며칠간 무릎이 좋지 않았다고 했으나 근육은 더 발달했을 것이다. 다녀와 자료를 찾아보니 천관산문학공원과 천관산자연휴양림 코스가 궁금해졌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필히 다녀올 계획이다.

봉황봉 능선에서 만난 바위. 이름을 알지 못해 ‘책바위’라고 지어봤다.

 

■부실한 천관산도립공원의 안내판 설명

이번에 다녀온 금강굴 코스로 한정하면 천관산은 명색이 도립공원인데도 안내판이 영 부실하고 엉터리다. 문장의 구성이 무학자(無學者)가 쓴 것 같은 수준에다 읽어본들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대목도 많다. 그럴듯하게 꾸며놓은 홈페이지와는 영 딴판이다. 독자의 판단을 위해 관련 안내문을 그대로 옮겨싣는다.

 

▲석선 안내문

큰돌이 배같아 뱃전밖에 돌가닥이 있어 사람의 팔뚝 만한데 그 끝이 나누어져 다섯 손가락이 되었고 엄지 손가락은 길지만 가운데는 적고 차례로 펴지어 구부러져서 자세히 살펴보면 괴상스럽다. 불설(佛說)에 서축(西竺) 사공(沙工)이 돌아감을 고(告)하고 그 한팔을 잘라 관음보살(觀音菩薩)께 시주하고 후세(後世)의 신포로 삼겠다고 하니 관음보살이 뱃전에 붙여주라고 명하였다 한다.

 

▲구정봉 안내문

귀에는 초벽을 의지하여 바위에 기둥을 세웠으며 석천(石泉)이 기이하여 사산(四山)이 비단 병풍을 두른 것 같고 신령스런 기운이 사람에게 스며들어 자연히 정신이 맑아지며 생각이 안정된다. 암자 문밖의 돌틈에 자죽(紫竹)이 있는 데 여중이 이 암자에서 공부할 때에 심어놓으니 쓸쓸한 찬 잎새에 맑은 바람 띠었구나. 당년(當年)의 모진 고생 옮겨서 심은 뜻은 창앞을 향하여서 바람소리 듣고자 함이었네 라고 하였다.

 

▲대세봉 안내문

관음봉의 위쪽에 있으며 가장 높은 암봉이다. 큰 벽이 기둥처럼 서서 하늘을 찌르니 보기에 늠연(凜然)하여 가히 우러러 보지 못하며 나는 새도 능히 오르지 못한다. 산동인(山東人)이 문장봉이라고도 부른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