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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 국립공원] ③ 도락산(道樂山)은 거대 절벽바위와 바위 틈새마다 뿌리내린 소나무가 일품인 진경산수화

↑ 도락산 신선대

 

by 김지지

 

1월 마지막날 강원도 계방산에서 겨울 설산을 만끽했던 고교 동창들이 그날의 팀워크와 산행의 즐거움을 잊지 못해 4월 봄날 다시 뭉쳤다. 남수 상호 선근 정형 네 사람이 2021년 4월 10일 떠난 봄 산행지는 충북 단양의 도락산이다.

 

■도락산 개요

도락산(道樂山․964m)은 월악산 국립공원의 동쪽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바위산이다. 행정상으로는 충북 단양군 대강면에 속한다. ‘도락(道樂)’의 뜻이 ‘도를 깨달아 스스로 즐기는 일’이니 산 이름부터가 속세에 초연한 느낌을 준다. 조선 후기 학자 송시열이 애제자인 권상하를 만나러 단양에 들렀다 산세에 감탄해 ‘깨달음을 얻는 데는 그 나름대로 길이 있어야 하고, 또한 즐거움이 함께해야 한다’는 뜻에서 산 이름을 ‘도락산’이라 지었다고 한다. 산림청과 블랙야크 지정 ‘100대 명산’이라는 것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올라가도 좋다는 보증서나 다름없다.

이곳을 다녀간 등산객이라면 암릉과 암봉, 소나무, 고사목을 도락산의 3가지 멋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거대 바위들은 길게 이어져 산 정상을 향해 줄달음치는 형세다. 암릉은 제봉·형봉·신선봉·채운봉·검봉이라는 저마다 다른 모습의 암봉을 빚어낸다. 소나무는 산을 덮고 있는 바위 사이에 홀로 또는 군락으로 서식하고 있는데 단단한 바위틈에 뿌리 내리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비틀어져 분재 같은 모습이다. 온갖 악조건을 이겨내고 성장한 소나무는 균형 잡힌 황금비율의 청년 소나무를 거쳐 낙락장송이 되어 도락산의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고사목들은 수명이 끝났는데도 바위나 땅에 뿌리를 박은 채 고고한 형태를 온전히 유지하고 있다. 잘 어울리는 이 세 가지 멋을 한곳에 모아 그림을 그리면 그 자체로 진경산수화가 된다. 그렇다면 도락산 산행은 그림 속 진경산수화를 현실에서 만나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도락산 바위틈에서 자라는 분재 같은 어린 소나무

 

■산행 코스

도락산은 들머리와 날머리 모두 상선암주차장이다. 산행 거리는 6.8㎞이고 산행 시간은 일반 등산객 기준 5~6시간 정도다. 산행 기점인 상선암주차장이 해발 300m 쯤이니 높여야 할 고도는 650m 정도다.

상선암주차장에서 정상까지 올라가는 코스는 2가지뿐이다. 들머리에서 왼쪽의 제봉과 형봉을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는 3.3㎞이고 오른쪽의 검봉과 채운봉 코스는 정상까지 3.5㎞다. 채운봉 코스가 제봉 코스보다 경사가 심하고 오르내리막이 많아 제봉 코스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이런 걸 감안하면 도락산 첫 등정 시에는 제봉 능선으로, 두 번째 등정 시에는 채운봉 능선으로 오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상선암주차장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0.2㎞ 지점에서 Y자 형태로 갈린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가든 오른쪽으로 가든 정상 방향이다. 두 코스는 정상 0.6㎞ 전, 도락산삼거리에서 만나 신선대~정상까지는 외길로 이어진다. 따라서 정상을 찍고 하산할 때도 정상~신선대~도락산삼거리는 피할 수 없다. 산행 도중 계곡이나 물을 만날 수 없으니 식수를 충분히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도락산 지도

 

■우리 산행

 

기암마다 낙락장송 품고 있어 그 자체로 한 폭의 산수화

Y자 분기점에서 왼쪽의 제봉 코스로 방향을 잡은 시간은 10시 45분이다. 초반에는 울창한 숲길과 가파른 바위지대를 지난다. 조망은 없다. 그렇게 40분 정도 올라가니 바위틈에서 씩씩하게 자라는 명품 소나무가 비로소 우리를 맞는다. 연초록에 균형 잡힌 이 청년 소나무는 고사목이 될 때까지 계곡 건너편 중턱에 자리 잡은 산골 마을과 그 위 용두산 능선을 바위 위에서 홀로 지켜볼 것이다.

다시 20분 정도 치고 올라가면 정상을 향해 뻗어 있는 주능선이다. 이정표를 보니 주차장에서 1.1㎞ 올라왔고 정상까지는 2.2㎞ 남았다. 1.1㎞를 1시간이나 걸렸으니 그만큼 경사가 심하다는 얘기다. 호흡이 가빠도 그 지점이 반가운 것은 그때부터 도락산의 진경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능선 왼쪽으로는 지능선 중턱에 자리 잡은 거대 바위들이 저마다 근육질 몸을 자랑하고 있고 바위 사이로는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곧이어 가지가 휘휘 늘어진 중년의 낙락장송(落落長松)과 그 옆 바위가 길을 가로막는다. 바위를 우회하니 오르내리막의 연속이다. 골이 깊지는 않아 크게 힘들지 않다. 오늘도 기운이 뻗치는 남수가 경주마처럼 치고 올라간다. 그러나 나는 주변 경치를 두루 구경하고 사진 찍으며 쉬엄쉬엄 올라가는 스타일이다. 결국 앞서가던 남수가 결단을 내려 나와 보조를 맞춘다. 능선을 걷다보면 바위틈에 뿌리 내린 어린 소나무들을 자주 보게 된다. 다 자란 청장년 소나무들과 달리 연초록을 하고 있어 눈이 부실 정도다.

도락산 낙락장송

 

능선에는 온갖 형상의 기암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지만 기암마다 낙락장송을 품고 있어 그 자체로 한 폭의 산수화다. 도락산 소나무는 흙 한줌 찾기 어려운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는 강인한 생명력과, 끝내 바위를 쪼개고 나와 성장하는 끈기가 특징이다. 바위틈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이리 뒤틀고 저리 뒤틀다보니 소나무 자신에게는 고된 몸부림이겠지만 인간의 눈에는 경이 그 자체다. 소나무로서는 자신의 비틀어짐을 명품 소나무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는 인간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낙락장송은 이런 고난의 세월을 살아온 도락산의 산 증인이다.

도락산은 바위산인데도 이런 소나무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는 소나무가 다른 산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도락산에서는 일상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많은 소나무들이 바위산에 뿌리를 내려 소나무 천국을 만들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청년 소나무들

 

사실 도락산은 4월 봄날의 연초록을 기대하고 찾아간 산이다. 그런데 능선에는 아직 연초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위안을 삼자면 덕분에 소나무들이 더욱 돋보인다는 점이다. 다른 나무들이 아직은 겨울의 황량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연초록빛이 능선에까지 올라오지 않은 상태에서 도락산에 널려있는 소나무마다 연초록을 띠고 있으니 소나무가 주변의 쓸쓸한 색과 대비되어 그야말로 독야청청이다. 철이 이른지 들꽃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진달래가 생생하고 자유롭게 피어 있다. 노랫말처럼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는 듯 했다.

도락산 진달래

 

주요 봉우리에 이름 표시 없는 것은 국립공원의 직무유기

제봉(817m)에 도착하니 12시 25분이다. Y자 들머리에서 1시간 50분 걸렸다. 주차장에서는 1.9㎞ 올라왔고 정상까지는 1.4㎞ 남았다. 제봉은 봉우리가 아니라 둔덕 같은 곳이다. 거리 표지판이 제봉이라고 알려주지 않아 누군가 손 글씨로 제봉이라고 써놓았다. 도락산의 주요 기점인데도 표시를 하지 않은 것은 월악산 국립공원의 직무유기다.

제봉에서 15분 정도 지나니 비로소 오른쪽 건너편 능선으로 검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10분을 더 가니 검봉에 이어 채운봉까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쌍봉낙타를 보는 듯하다. 형봉을 향해 바위로 뒤덮이고 숲이 무성한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사방이 탁 트인 멋진 조망바위가 나타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서쪽(뒤쪽)으로는 산골 마을을 가슴에 품고 있는 용두산의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고, 동북쪽으로는 소백산의 연화봉 천문대와 암릉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소백산의 연화봉 천문대와 암릉이 아스라이 펼쳐있다.

 

그곳에서 사방을 한참 동안 감상한 후 다시 갈길을 가는데 채운봉이 직선으로 바라보이는 이쪽 절벽 옆으로 어린 고사목이 바위틈에서 고고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죽어서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이어서 살았을 때 모습이 어땠을까를 상상해본다. 고사목은 이후에도 계속 나타난다. 도락산 고사목의 특징은 태백산처럼 크고 굵진 않으나 아담한 모습에 살았을 때 형태를 온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절벽 위 바위틈에서 고고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 고사목

 

조금 더 직진하면 멀리서 봤을 때 삐죽 솟은 거대한 암봉이 나타나지만 이곳 역시 안내표시가 없어 형봉(915m)인지 모르고 지나치게 된다. 그 사이 오른쪽으로는 채운봉과 검봉 능선이 계속 이어진다. 우리 능선에는 분재 형태의 소나무들이 어김없이 나타나 피곤함을 덜어준다.

채운봉(왼쪽)과 검봉

 

형봉에서 20~30m 정도 내려가면 도락산삼거리다. 그곳에서 직진해 올라가면 0.6㎞ 거리의 도락산 정상이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채운봉이다. 삼거리에서 정상까지는 약 20분 거리다. 짤막한 오르막을 두 번 올라서야 한다. 먼저 가파른 철계단을 올라서면 수십 명은 족히 앉아 쉴 만한 널찍하고 부드러운 너럭바위가 반긴다. 도락산에서 가장 전망이 뛰어나다는 신선대(혹은 신선봉)다. 사방으로 수많은 능선과 봉우리들이 산그리메를 그리며 시원하게 펼쳐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신선대 한 편에 직경 1m 정도의 웅덩이가 파여 있다. 믿거나말거나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신선대에서 정상까지는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계곡 위를 가로지르는 데크 다리를 건너고 절벽 위 전망바위를 지난다. 중간에 오른쪽 내궁기(1.4km)로 빠지는 삼거리가 나타나지만 우리는 곧바로 직진한다. 된비알을 한 번 더 지나니 마침내 도락산 정상이다. ‘해발 946m’라고 표시한 정상석과 나무 그루터기로 만든 의자 몇 개를 제외하고는 그럴듯한 바위도, 운치 있는 소나무도 없어 그저 평범하다. 무엇보다 사방이 나무에 가려 조망이 거의 없다.

도락산 정상

 

 

최고 경관은 삼거리~채운봉 구간에서 바라보는 형봉․신선대 아래 절벽지대

이제 채운봉~검봉 능선의 하산이다. 삼거리까지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간다. 삼거리에서 채운봉은 0.3㎞에 불과하나 길이 좁고 오르내림 길이어서 스릴이 있다. 이 길에도 기암기석이 있고 벼랑마다 소나무가 바위틈에서 모진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뒤를 돌아보면 형봉을 받치고 있는 거대 절벽바위가 우뚝하다. 절벽에도 크고 작은 소나무들이 봄기운을 맞으며 연초록을 뿜어낸다. 기암절벽은 낙락장송과 어우러져 더욱 장관이다.

내 기준으로 최고 경관은 삼거리에서 채운봉으로 갈 때 뒤로 바라보이는 형봉과 신선대를 떠받치고 있는 바로 이 절벽지대다. 1~2시간 전, 형봉~신선대 암릉지대를 지날 때는 발아래에 있어 볼 수 없었으나 이곳에서는 거대 성벽이 둘러쳐진 것처럼 보여 감탄사를 연발한다. 마치 대형 파노라마 영화를 보는 듯하다. 보이는 곳마다 장관이어서 카메라 셔터가 바쁘다.

도락산 형봉(왼쪽)과 신선봉 아래 절벽 지대

 

급경사 바위 계단을 오르니 채운봉(865m)이다. 이곳 역시 안내판이 없다. 삼거리~채운봉~검봉 능선은 오르내리막을 반복하므로 다소 힘이 든다. 하지만 도락산의 풍광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땀 흘린 만큼의 시각적 보상이 주어진다.

채운봉에서 눈앞에 보이는 검봉(劍峰)으로 가려면 급경사 데크를 한참 내려갔다가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곳곳에 철계단을 만들어놓아 위험하지 않고 크게 힘들지도 않다. 선근이 “채운봉 코스로 올라왔다면 제봉 코스보다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고 한마디 한다. 선근 말대로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무엇보다 헉헉대며 고개 숙여 올라가느라 주변 경관을 감상할 여유가 없다는 게 제일 큰 아쉬움일 것이다. 상호가 “힘들긴 하지만 계방산 겨울 설산에 이어 또다시 멋진 곳을 만나 행복하다”고 한마디 한다. 주말 축구에 빠져 상대적으로 산을 소홀히 하는 상호가 축구로 다져진 체력으로 산에 빠지면 우리를 많이 괴롭힐 것 같다.

칼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지어진 검봉에도 위치 표시가 없어 누군가 종이로 검봉(817m)이라고 써놓아 소나무에 걸어놓았다. 참으로 불친절한 월악산 국립공원이다. 검봉을 내려가면 그때부터는 완경사 길이다. 오른쪽 멀리 제봉 능선이 길게 이어진다.

도락산은 하산 길에도 또 다른 볼거리를 선물한다. 15m쯤 되는 거대하고 늘씬한 큰선바위가 숲속에서 홀로 우뚝한 모습이다. 선바위 옆에는 색깔 선명한 분홍빛 진달래가 바위와 어울려 멋진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조금 더 내려가니 5m 높이의 작은선바위다. 그곳에 주차장까지 1.0㎞ 남았음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다.

큰선바위(왼쪽)와 작은선바위

 

Y자 삼거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40분. 출발이 10시 45분이었으니 쉬엄쉬엄 걷다가 얼추 7시간 걸렸다. 그곳에서 만난 한 청년에게 물으니 오후 1시 50분에 올라갔다고 한다. 청년은 홀로 등산해 4시간 정도 걸린 것이다.

도락산은 수려하고 다이내믹한 산세와 더불어 산을 감싸 도는 계곡에도 비경을 숨겨놓고 있다. 단양팔경 중 삼경에 해당하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인암까지 치면 단양팔경 중 절반이 도락산 자락에 있는 셈이다. 상·중·하선암은 도락산을 끼고 흐르는 선암계곡을 따라 차례로 자리 잡고 있다. 청정계곡을 가득 채운 너럭바위들이 볼 만하다. 계곡을 따라 차를 몰고 가면 표지판이 크게 보여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계곡 옆 도로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다. 도락산에 다녀온 지 열흘이나 지났는데도 또다시 가고 싶어진다. 명품 산이란 이런 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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