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가야산 국립공원] 기암괴석과 울창한 수림이 어우러져 수려한 산세 드러내… 18세기 ‘택리지’ 저자 이중환은 “돌로 만든 불꽃같은 산”이라고 감탄

↑ 칠불봉에서 상왕봉(우측)으로 가는 바위길

 

by 김지지

 

☞ 코스 : 백운동탐방지원센터 ~ 용기골 ~ 서성재 ~ 상왕봉(정상) ~ 서성재 ~ 만물상 ~ 백운동탐방지원센터(원점회귀)

☞ 거리와 시간 : 8.4㎞에 7시간

 

■가야산으로 간다

 

▲출발에 앞서

오늘의 산행지는 경남 합천과 경북 성주 경계에 있는 가야산이다. 2020년 10월 30일, 고교 동창인 기림 남수 순호 영석 정형 5명이 함께 했다. 그런데 출발 한달 전부터 기림이가 자신에게는 힘든 코스라며 자신 없어 한다. 해서 세미코스와 풀코스로 편의상 구분해 당일 기림이 상태를 보고 상왕봉 정상까지 오를것인지 말것인지 결정하기로 했다. 풀코스란 <백운동탐방지원센터 → 용기골 → 서성재 → 상왕봉(정상) → 서성재 → 만물상 → 원점회귀>이고 세미코스란 위 구간에서 <서성재 → 상왕봉(정상)> 구간을 생략하는 것이다.

사실 가야산 최고 코스는 <백운동탐방지원센터 → 만물상 → 서성재 → 상왕봉 → 해인사>이거나 역순이다. 그러나 이 코스는 가야산 현지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는 등산객이라면 모를까 늦은 가을이나 겨울, 서울에서 출발해 당일 산에 오르는 보통 등산객에게는 무리다. 해가 짧아 금방 어두워지고 만물상 코스가 꽤나 힘들기 때문이다.

여름이라고 해서 방심해서도 안된다. 6년 전인 2014년 여름이 그랬다. 대학 친구들과 서울에서 일찍 출발해 백운동~만물상~상왕봉~해인사 코스를 당일 올랐는데 무더위에 체력 소모가 커 결국 깜깜해서야 해인사에 도착했다. 평소 산을 잘 타는 친구도 그날은 힘들어한 것으로 보아 난이도가 높은 코스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만물상을 포기하고 용기골로 올라가 해인사로 내려오는 건 앙꼬 없는 찐빵을 먹는 것이니 이 또한 내키지 않는다. 물론 서성재~상왕봉 구간의 조망이 뛰어나 앙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백운동탐방지원센터 ~ 용기골 ~ 상왕봉(정상) ~ 만물상  코스 지도

 

▲가야산은 

가야산은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는 명산이다. 산림청과 블랙야크 모두 100대 명산으로 지정했다. 주봉인 상왕봉(1430m)을 중심으로 해발 1000m가 넘는 톱날같은 고봉들이 마치 병풍을 친 듯 이어져 있다. 합천 쪽으로 드리운 서남쪽 산자락은 부드러운 육산이고 오른쪽 성주군 방향은 가파르고 험하다. 가야산이라는 이름 유래는 두 설이 유력하다. 하나는 옛날 가야국이 있던 이 지역에서 가장 높고 거친 산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야의 산’이라는 뜻으로 불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도의 불교 성지인 부다가야 부근 가야산에서 따왔다는 것이다.

가야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전국 산 중에서 탐방코스가 가장 단출하다.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에서 해인사를 거쳐 토신골을 타고 상왕봉 정상으로 오르거나 성주군 수륜면 백운지구에서 용기골(혹은 만물상)을 타고 서성재까지 올라선 다음 정상으로 오르는 양방향 뿐이다. 등산객이 백운지구를 들머리로 삼는 이유 중에는 해인사와 달리 백운지구 쪽에서는 문화재관람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공짜 심리도 있다.

18세기 이중환이 저술한 ‘택리지’에서는 가야산을 이렇게 묘사한다. “경상도에는 석화성(石火星)이 없다. 합천 가야산에만 불꽃처럼 뾰족한 바위가 연달아 얽혀있고 허공에 높이 솟아서 지극히 높고 빼어나다” “가야산 서북쪽에는 가야산 상봉이 솟아 있다. 사면을 날카롭게 깎아낸 듯한 형상이라 사람이 타고 오를 수 없다. 바위 위에는 평탄한 곳이 있는 듯하나 사람이 알아낼 방법이 없다. 자욱한 안개가 끼면 산 위에서 가끔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고 사찰의 승려가 전해주었다” ‘석화성’은 돌로 만든 불꽃이란 뜻이다.

다른 산행기를 볼 때마다 이중환의 ‘택리지’가 자주 언급되어 이번에 가야산에 다녀오고 ‘택리지’를 구입해 읽었는데 18세기에 나온 지리인문서로는 최고 명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놀랍고 무서운 것은 한자로 된 ‘택리지’를 우리가 한글로 번역하기 전에 일본이 먼저 일본어로 번역했다는 것이다.

소나무 뒤로 가야산 만물상이 길게 뻗어있다.

 

 

■급경사 8.4㎞ 길

 

▲코스 개요

내비게이션에서 <가야산 백운동탐방지원센터>를 입력하면 내비가 알아서 안내한다. 백운동탐방지원센터는 주차장에서 수백미터 올라간 곳에 있다. 중간에 가야산야생화식물원을 지난다. 나무와 꽃 등 1300여 종의 식물이 자란다고 하는데 요즘 야생화에 필이 꽂혀있는 나로서는 꼭 들러보고 싶은 곳이다.

백운동탐방지원센터의 해발고도는 500m이다. 상왕봉 정상이 1430m이므로 고도를 930m 올려야 한다. 입구에서 직진하면 용기골이고 왼쪽 산으로 올라가면 만물상이다. 우리의 풀코스 거리는 이렇다. 백운동탐방지원센터 →(2.6㎞)→ 서성재 →(1.2㎞)→ 칠불봉 →(0.2㎞)→ 상왕봉 →(1.4㎞)→ 서성재 →(3.0㎞, 만물상 경유)→ 백운동탐방지원센터(원점회귀)다. 센터에서 용기골 거쳐 상왕봉까지는 4.0㎞이고 상왕봉에서 만물상을 거쳐 원점회귀하는데 4.4㎞해서 총 8.4㎞다.

가야산 국립공원 지도에는 이 코스를 오르고 내리는데 5시간 30분으로 잡는다. 정상까지는 2시간 30분이다. 그러나 체력 좋은 등산객이라면 1시간 30~40분이면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우리 일행 중 영석도 그렇다. 보통은 하산보다 등산 시간이 더 걸리는데 가야산의 이 코스는 등산이나 하산이나 시간이 얼추 비슷하다. 만물상의 급경사 코스가 오르기도 힘들지만 내려갈 때도 힘들기 때문이다.

 

▲초입에서 서성재까지

이제 가야산 탐방을 시작한다. 서성재 고개까지는 만물상과 동성봉 능선 사이의 용기골을 지난다. 용기골은 ‘용이 일어난 골짜기’라는 뜻이지만 이름과 달리 완경사에 순하다. 가을이라 계곡에 물도 없다. 험산이니 불쑥불쑥 삐죽삐죽 튀어나온 바위가 등산길에 있을 법도 한데 바위가 납작하게 잘 깔려 있어 걷는데 무리가 없다. 거친 길에는 데크가, 계곡 위에는 다리가 놓여 있어 편하게 고도만 올리면 된다. 괜히 국립공원이 아니다.

가을단풍은 왔다 갔는지, 아직 오지 않았는지 힌트를 주지 않는다. 간혹 보이는 단풍도 생기가 없다. 단풍색깔도 선명하지 않다. 조숙한 단풍나무는 이미 시들어버려 잎들이 배배꼬여 있다. 영석이 치고 올라가고 남수가 뒤쫓는다. 순호와 정형이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유유자적하며 걷고 기림이는 가다 쉬다를 반복한다.

초입에서 서성재까지 오르는 용기골 등산로

 

해발고도 1000m 쯤부터 조릿대 군락이 시작된다. 전국 고산에 조릿대가 많아 골칫덩어리라는데 가끔은 조릿대 군락이 정겨울 때가 있다. 조릿대 하면 한라산 윗세오름에 널리 깔려 있는 조릿대가 먼저 떠오른다. 워낙에 밀집 군락형이어서 장관이다. 가야산 지도상으로는 조릿대 군락지부터 서성재까지 급경사로 표시되어 있으나 데크 덕분인지 급경사가 느껴지지 않고 힘들지도 않다. 거리도 짧다.

서성재(西城岾)는 경북 성주군 수륜면과 경남 합천군 가야면을 이어주는 고개다. 해발고도는 1110m다. 이름은 과거 가야산성의 서문이 위치해 있던 곳에서 유래한다. 가야산성은 삼국시대 때 용기골을 중심으로 좌우로 펼쳐져 있는 상아덤, 동성봉 능선을 이용해 축조한 성이다. 길이가 4.5㎞나 될 정도로 규모가 크나 서문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서성재에서 왼쪽은 만물상 방향이고, 오른쪽은 칠불봉·상왕봉으로 이어진다. 당초 계획은 이곳에서 기림이 상태를 살펴보고 정상에 오를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심 걱정했던 기림이가 씩씩하게 정상 길을 선택한다. 다만 하산 후에는 나에게 “배신당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서성재~정상 구간은 물론이고 하산시 만물상 구간이 힘들었다면서. 살펴본 바로는 기림이 체력에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산을 꺼려하는 것은 왜 힘들게 산에 오르는지 뇌에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즉 친구들이 좋아서 산행에 따라나섰을 뿐 산에 올라야 하는 동기부여가 뒷받침 되지 않으니 산행 자체가 고역인 것이다.

만물상(우측)과 용기골(가운데)

 

▲서성재에서 상왕봉(정상)까지

서성재에서 칠불봉·상왕봉을 향해 오른다. 이 구간은 만물상 코스와 함께 탄성을 자아내는 대표 구간이다. 서성재(1110m)에서 상왕봉(1430m)까지 급경사 320m를 치고 올라가야하므로 다소 힘이 들기는 하지만 빼어난 조망 덕분에 피곤함을 잊는다. 난코스엔 어김없이 데크가 깔려있어 험난하지도 않다. 서성재에서 정상까지 길도 한동안은 조릿대 군락이다. 경사가 점차 높아지면서 조릿대는 보이지 않고 이런저런 참나무들이 자리를 채운다. 드문드문 수려한 소나무가 바위 틈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며 다양한 포즈를 취한다. 급경사 바위지대에는 위험 구간마다 철계단이 놓여 있다. 워낙에 급경사여서 철계단도 힘들다 싶을 때 뒤를 돌아보면 어김없이 저멀리 아래에서 만물상이 반겨맞는다. 따사로운 가을햇살, 허물없는 친구들, 적당한 운동 모든게 완벽하다.

오후 1시 50분, 칠불봉이 바로 올려다보이는 전망대 바위에 섰다. 그곳에서 상왕봉은 0.5㎞, 칠불봉은 0.3㎞ 거리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언급했던 불꽃 같은 바위와 벼랑의 소나무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철계단이 포함된 급경사를 20분 정도 오르니 칠불봉과 상왕봉 갈림길이다. 초입에서부터 2시간 30분 걸렸다. 두 봉 사이의 봉우리에 평평한 데크가 놓여 있어 쉼터 역할을 한다.

그곳에서 양쪽으로 바라보이는 칠불봉과 상왕봉이 지척이다. 칠불봉은 50m, 상왕봉은 200m 거리다. 먼저 가까운 칠불봉에 들렀다가 상왕봉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다. 갈림길 데크 아래에도 소나무 몇 그루가 바위틈에서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저멀리 만물상의 능선이 길게 펼쳐있다. 칠불봉과 상왕봉은 온전한 바위산 형태를 하고 있다. 보통 화강암은 누런색인데 이곳의 화강암은 흰색 계열이다.

가야산 칠불봉. 먼저 올라간 친구들이 손짓하고 있다.

 

▲칠불봉과 상왕봉

칠불봉 높이는 1433m다. 누구나 최고봉으로 알고 있는 상왕봉보다 3m 높다. 이런 사실이 밝혀진 것은 20여년 전이다. 그후 칠불봉이 속해 있는 성주군에서 칠불봉을 주봉이라 적어 놓았다. 하지만 가야산국립공원 측은 상왕봉을 여전히 가야산의 주봉으로 삼는다. 과학적인 계측 결과는 칠불봉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켜켜이 쌓인 역사와 전설까지는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넓이에서도 칠불봉은 상왕봉에 비할 바 못 된다. 그렇더라도 칠불봉보다 더 높은 곳은 사방에 없다.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는 지리산, 덕유산, 소백산에 이어 4번째 높이다.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성재 부근이 온통 조릿대 바다다. 동·서·남쪽으로 병풍을 두른 듯 기암괴석과 울창한 수림이 어우러져 수려한 산세를 드러낸다. 남동쪽으로는 상아덤(1220m)을 기점으로 공룡의 등지느러미처럼 톱날 형태를 이루고 있는 만물상 능선이 길게 뻗어있다. 북동쪽으로는 성주군 평야지대가 시원하게 펼쳐있다.

칠불봉에서 찰칵

 

나는 가야산행이 세 번째다. 한번은 겨울, 한번은 여름이다. 여름은 멤버가 기억나는데 겨울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남수가 칠불봉에서 “언젠가 기림이를 꼬드겨 가야산 겨울에 온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나도 그 겨울 산행에 동참한 것 같다”고 했더니 기억력 좋다는 남수도 기림이도 자신하지 못한다. 그러더니 남수가 나중에 집에서 찾은 사진 파일을 보내주었다. 8년 전인 2012년 2월 16일로 기록된 사진에 남수와 기림과 내가 있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칠불봉에서 암봉들을 우회해서 안부에 내려서면 멀지 않은 곳에 거대한 바위 덩어리인 상왕봉의 우람한 모습이 드러난다. 다가가니 정상에서 100미터 아래에 쉼터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해인사까지 3.9㎞다. 다시 철계단을 올라야 상왕봉 정상이다. 상왕봉에 올라가니 오후 2시 30분을 가리킨다. 초입에서부터 3시간 10분 정도 걸렸다. 정상석에 ‘伽倻山 牛頭峰(가야산 우두봉)’이라고 크게 쓰여 있다. 봉우리가 소머리를 닮아 우두봉이다. 칠불봉은 성주군, 상왕봉은 합천군 땅이다.

2단으로 된 상왕봉. 왼쪽은 정상석이고 오른쪽은 우비정이다.

 

칠불봉과 상왕봉은 모양새가 전혀 다르다. 칠불봉이 뾰족 솟구친 전형적인 암봉이라면 상왕봉은 밑동 길이가 500m가 넘는 긴 암괴의 중앙부에 솟아 있다. 상왕봉은 뾰족하지 않은 2단 구조의 큰 암릉이다. 아래는 넓고 넉넉해 수십명은 족히 수용할 수 있다. 위쪽 바위도 뾰족하거나 거칠지 않아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정상의 널찍한 암반에는 움푹파인 공간이 있다. 이름이 우비정(牛鼻井)이니 소 콧구멍 샘이다. 이곳에서도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한눈에 잡힌다는데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다.

 

▲상왕봉에서 상아덤까지

원점회귀 하산길은 다시 상왕봉과 칠불봉 갈림길을 거쳐야 한다. 하산하는데 저 아래 우뚝 솟은 바위에 두 여성이 겁도 없이 올라가 멋진 사진을 남기기 위해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빨간색 상의를 입고 있어 더욱 인상적이다. 요즘은 이처럼 아슬아슬한 곳에 올라 사진을 찍으려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려와 그들을 직접 만나보니 40대 후반의 여성들이었다.

우뚝 솟은 바위에 올라가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40대의 용감한 여성

 

서성재로 다시 내려오니 오후 3시 50분이다. 만물상 코스를 타기 위해 서성재를 지나 고갯길에 올라서면 만물상의 대미이자 백미라는 상아덤(서장대)이 나타난다. 상아덤은 작은 봉우리 꼭대기에 얼기설기 모여있는 그다지 크지 않은 입석들이다. 달에 사는 미인의 이름인 ‘상아(嫦娥)’와 바위를 지칭하는 ‘덤’이 합쳐진 단어다. 이곳에 대가야의 시조설화가 서려있다. 아득한 옛날, 가야산에 ‘정견모주’란 여신이 상아덤에 살고 있었다. 어느날 하늘신 ‘이비가지’가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상아덤으로 내려와 여신과 부부의 연을 맺고 두 아들을 낳았다. 형제는 자라서 형은 대가야(현재 고령)의 첫 임금인 이진아시왕이 되고 동생은 금관가야(현재 김해)의 첫 임금인 수로왕이 되었다.

가야산 만물상의 상아덤

 

상아덤은 산길 위에 있다. 옆에 위험하다는 안내판이 있어 위로 올라가보지는 못했으나 예전에는 그런 안내판이 없었는지 봉우리에 올라갔다는 산행기가 있다. 나중에 돌아와 그 글을 보고 있자니 상아덤에 오르지 않은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다음 산행 때는 꼭 올라가보리라. 상아덤에는 만물상 능선과 서쪽 심원골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그곳에서 올려다보는 칠불봉~동성봉 능선이 장관이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만물상 능선

만물상은 백운동지구 심원골과 용기골 사이에 솟아있는 능선이다. 3㎞ 구간에 자리잡은 각종 기암들이 서로 “내가 제일 잘 나가!” 하며 뽐내고 있다. 만물상 능선은 1972년 가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자연보호를 위해 폐쇄했다가 2011년 가을 39년 만에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만물상 길은 크고 작은 암봉과 암벽과 암릉의 연속이다. 다채롭고 기이하고 오묘하다. 만물상 탐험은 상아덤에서 급경사 데크길을 한참 내려갔다가 다시 한참 올라가면서 시작된다. 만물상의 기암기석들은 뾰족하다기 보다는 손으로 진흙을 빚은 듯 뭉툭하다. 시내와 계곡의 바위가 물에 깎여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듯 이곳의 바위도 그렇다. 사찰의 석탑처럼 여러개 바위가 층층이 쌓여있는 중첩 바위도 많다. 어떤 바위는 진흙을 빚다 포기한 것처럼 쭈글주글하다. 바위들은 수직으로 치솟기도, 옆으로 퍼지기도 하면서 등산로를 묘하게 틀어준다.

가야산 만물상

 

그런데도 전국 어느 산에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바위 이름이 없다. 공원 측이 편의상 지은 이름이 없는 것은 아니나 바위 옆에 이름을 알려주는 푯말이 없어 사실상 이름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각자 상상력을 발휘해 코끼리든 돌고래든 두꺼비든 쌍둥이든 이름을 지으면 된다.

만물상에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올라가든 내려가든 틈틈이 뒤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앞만보고 걷다가 미처 보지 못한 눈부신 풍광이 뒤를 돌아봤을 때 갑자기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곳 만물상만 그런게 아니다. 전국 어느산이든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산행하면 정말 보지 못한 많은 풍광이 펼쳐져 산행의 즐거움이 배가된다. 만물상의 화강암이 오후 햇살을 받아 은은하고 편안하다. 때로는 옅은 황금색을 띤다.

하산 기준 만물상 왼쪽은 용기골이고 오른쪽은 심원골이다. 심원골의 숲이 깊고 넓어 단풍이 들면 장관일텐데 아직은 눈부시고 화려한 가을단풍을 감추고 있다. 인터넷에서 본 심원골의 가을단풍은 환상적이나 우리와는 아직 인연이 없다. 다음 가을에 또 오라는 뜻일 것이다. 만물상 하산길은 마냥 내려가지만 않는다. 하산길이 80%라면 오름길은 20% 정도다. 다만 중반 이후부터는 줄곧 급경사 내리막이다.

가야산 심원골. 아직 단풍이 내려앉지 않았다.

 

만물상 길은 크고 작은 암봉과 암벽과 암릉의 연속

만물상은 역시 힘든 코스다. 가야산 국립공원 측이 탐방 코스별로 등반 난이도를 매겨놓았는데, 만물상 구간은 다섯 단계의 난이도 중 최고인 ‘매우 힘듦’이다. 만물상처럼 경사가 심한 곳은 오르는 게 힘들지만 내려가는 것도 힘들다. 오를 때는 헉헉대고 내려갈 때는 조심조심이다. 이처럼 경사가 급한 곳을 내려갈 때 중년 등산객에게는 무릎보호대가 필수다. 그래야 오래오래 산에 오를 수 있다.

오후 4시 50분, 거대한 입석바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산이 급하지만 바위 앞에 걸터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여유를 부려본다. 행복감이 밀려온다. 영석이 “평일이라 사람 적고 날씨 좋고 조망 좋아 최고”라며 흡족해한다. 입석바위는 만물상의 랜드마크라고 해도 될만큼 우람하고 믿음직스럽다.

하산이 급하지만 만물상의 거대 바위 앞에 걸터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여유를 부리고 있다.

 

이후 하염없이 내려간다. 앞에 가서 몰랐는데 뒤에 따라오는 순호가 뒹굴었다고 기림이 전한다. 순호는 “산에서 다리가 풀리기는 처음”이라며 뒹굴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하산길이 늦어지니 결국 랜턴을 꺼내들었다. 마침 모두 랜턴을 갖고와 다행이다. 랜턴은 해가 짧고 기온이 내려가는 가을과 겨울에는 꼭 갖고 다녀야하는 필수품임을 재차 확인했다.

백운동탐방지원센터로 원점회귀하니 오후 6시 30분이다. 총 7시간 15분 걸렸다. 막바지 하산길에서 시간을 많이 소비해 국립공원 기준 시간보다는 더 걸렸지만 그래도 만족스럽다. 산행에만 전념하지 않고 두루두루 주변 풍광을 보고 사진을 찍으며 여유로운 산행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동시간을 추적해 보니 백운동탐방지원센터 출발(11시 15분) → 서성재 도착(12시 45분) 및 휴식(25분) → 서성재 출발(13시 10분) → 칠불봉을 올려다보는 전망대(13시 50분) → 칠불봉(14시 10분)이다. 이후 상왕봉에 올랐다가 하산을 시작한 시간이 15시 10분이니 칠불봉과 상왕봉에서 먹고 쉬고 한 시간이 1시간이다. 멀리 산이나 여행을 갈 때 숙소와 식당이 맘에 들면 소개하는데 해인사 아래 상업지구에 있는 숙소도 나름 멋진 곳이어서 소개한다. 이름은 ‘달의정원’(055-934-0107)이다. 5인이라니까 2인방은 8만원, 3인은 9만원을 받는다. 정원이 넓고 조경이 뛰어나다.

 

▲가야산 소리길

해인사 아래 홍류동 계곡 옆에 조성한 소리길을 걷는 것은 가야산의 또 다른 매력이다. 2011년 열린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 행사장부터 해인사 들목인 영산교까지 약 6㎞가 산책 구간이다. 이중 홍류문에서 해인사 입구에 이르는 약 4㎞ 구간에 홍류동 계곡의 핵심 경관이 밀집해 있고 수림(樹林)이 발달해 산책에는 최적의 장소다.

가야산 소리길

 

홍류동 계곡은 가야산의 여러 골짜기 중 으뜸으로 꼽힌다. 계곡 주변에는 소나무뿐만 아니라 활엽수가 우거져 있어 해인사와 함께 가야산의 백미로 꼽힌다. 붉디붉은 가을단풍 때문에 계곡의 물까지 붉게 보인다 하여 홍류동이라 불리우고 여름에는 금강산의 옥류천을 닮았다 해서 옥류동으로도 불리운다. 산행하면서 느꼈던 가을단풍의 갈증을 이곳에서 해소했다. 계곡에는 통일신라 말기에 최치원이 이곳에 운둔하다가 신발을 벗어두고 홀연히 사라져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홍류문에서 해인사 방향으로 400m가량 올라가면 왼쪽에 농산교가 보인다. 다리를 건너면 최치원이 머물며 수도했다는 농산정이 나타난다. 고풍스러운 정자와 그 주변을 둘러싼 소나무 숲이 조화롭다. 오솔길을 따라 잠시 오르막을 지나면 자필암, 분옥폭포, 제월담 등 계곡의 명소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용기골은 사실상 물이 마른 상태인데도 이곳 옥류동 계곡에는 여전히 물이 힘차게 흐르고 물소리 또한 요란하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세월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여 소리길이다. 계곡을 따라 흙길과 데크길이 번갈아 이어져 있고 계곡 양쪽은 기암기석의 전시장이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곳곳에 놓여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