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경기 포천의 명성산… 황금빛·은빛을 넘나들며 물결치는 억새, 명징하고 파란 하늘, 노랗고 붉은 단풍, 병풍처럼 펼쳐진 기암절벽이 매력적인 곳

↑ 은빛 물결이 출렁이는 억새밭. 가운데 나무는 등산객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버드나무다.

 

by 김지지

 

오늘 코스는 억새 명산 중 한 곳인 명성산(923m)이다. 경기 포천시와 강원 철원군 경계에 솟아 있는 명성산 정상은 철원군 땅이지만 일반 등산객이 선호하는 주요 등산로가 포천 땅 산정호수 주변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포천의 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20년 10월 25일, 함께 떠난 일행은 대학 친구인 희용 부부와 우리 부부다. 희용은 11년 전인 2009년 팔각정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온 적이 있고 나는 1년 전인 2019년 7월 고교 동창들과 명성산 정상에 오른 적이 있다.

 

■명성산(鳴聲山)에 대해

 

▲명성산과 궁예

명성산은 가을만 되면 드넓은 산자락에 은빛 억새 물결이 출렁이는 억새의 명산이다. 매년 10월 ‘억새꽃 축제’가 열려 수도권의 많은 등산객과 관광객이 몰려든다. 하지만 작년(2019년)과 올해(2020년)는 각각 돼지열병과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되었다. 남북으로 이어진 주능선을 경계로 동쪽은 완만한 경사에 산세가 부드럽고 서쪽은 대형 기암절벽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명성산 지도 (출처 동아일보)

 

명성산(鳴聲山)에는 후세 사람들이 궁예(?~918년)의 한과 아픔을 스토리텔링 식으로 꾸민 곳이 많다. 역사 기록이 뚜렷하지 않고 실패한 인물일수록 그의 애절한 족적을 가슴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은 법이어서 궁예의 스토리는 포천과 철원에 풍성하다.  산 이름부터가 그렇다. 궁예가 강원도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군림하던 중 918년 자기의 심복 부하였던 왕건에게 쫓겨 이곳에서 망국의 슬픔을 통곡한 후 가끔 산중에서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울 명(鳴)자에 소리 성(聲)자를 써서 명성산이다.

명성산의 한 봉우리인 궁예봉(823m)을 비롯 궁예가 왕건에 맞서 항전했던 태봉산성지, 궁예가 은신했다는 궁예왕굴, 궁예가 패주하며 홀로 지나갔다는 패주골(현재 명칭은 파주골), 궁예가 흐느끼며 넘었다는 느치고개(눌치), 궁예의 망국 한을 달래주려는 듯 명성산 중턱에서 눈물처럼 샘솟는다는 궁예약수도 궁예와 연관된 지명이다.

명성산 인근 산에도 궁예의 전설이 살아있다. 궁예가 적의 동정을 살폈다는 산정호수 뒤편의 국망봉, 왕건에게 쫓겨 도망가다 길이 험해 말에서 내려 걸었다는 도마치봉, 궁예의 부인 강씨가 남편에 의해 죽기 전 피해서 살았다는 강씨봉 등이 그렇다. 다만 명성산이든 울음산이든 언제부터 그런 이름으로 불렸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여지도에도 그런 이름은 없다.

궁예가 적의 동정을 살폈다는 망봉산(산정호수 왼쪽)과 망무봉(오른쪽)

 

▲산정호수 기점의 주요 산행 코스

산정호수 부근에서 명성산을 오르는 길은 크게 네 곳이다. 등룡폭포 코스, 책바위 코스, 자인사 코스, 산안고개 코스다. 지도를 보면 이해가 쉽다. 산안고개 코스를 제외한 3곳의 들머리는 산정호수 옆 상동주차장이다. 산안고개 코스는 상동주차장 앞을 지나는 387번 지방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펜션지구를 지난 곳에서 들머리를 찾으면 된다. 산정호수에서 도보로 40분 정도 걸리고 승용차로는 10분 정도 거리다.

등룡폭포 코스와 책바위 코스는 초입의 비선폭포에서 갈라진다. 책바위 코스는 오르락내리락 하는 급경사 암릉이어서 험준하고 힘이 들지만 조망이 워낙에 좋아 중급 정도의 등산객에 적당하다. 등룡폭포 코스는 명성산 정상에 오르는 거리가 다른 코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지만 경사가 완만하고 계곡을 끼고 있고 웅장한 등룡폭포까지 감상할 수 있어 가볍게 올라가려는 가족과 연인들이 주로 찾는다. 가을철 억새만 보러 오는 탐승객들이 이용하는 코스도 등룡폭포 코스다.

초입의 비선폭포

 

자인사 코스는 능선까지 가장 빠르게 오르는 대신 경사가 급하고 험하다. 자인사 코스와 책바위 코스는 서로 약간 떨어진 곳에서 출발했다가 1.5㎞ 지난 암릉 갈림길에서 만나 0.7㎞ 거리의 팔각정(억새밭)까지 함께 한다. 등룡폭포 코스가 합류하는 곳도 팔각정이다. 비선폭포에서 팔각정까지, 등룡폭포 코스는 3.5㎞이고 책바위 코스는 2.2㎞다. 자인사 코스는 팔각정까지 2.1㎞다. 팔각정에서 명성산 정상까지는 2㎞다. 산안고개 코스는 명성산으로 직등하는 가장 짧은 길이다. 산안고개~숨은폭포계곡~궁예봉 갈림길~정상 남릉 안부를 경유해 명성산 정상에 오르는데 2㎞ 정도 거리다.

 

■우리가 직접 걸어간 코스와 시간

 

우리는 등룡폭포 코스로 올라가 억새밭과 팔각정을 지나 삼각봉과 명성산 정상을 밟고 돌아나와 팔각정에서 책바위 코스로 하산한다. 산행은 상동주차장에 주차한 뒤 탐방로 입구의 식당가를 지나며 시작된다. 식당가에서 등산로 입구까지는 몇 백m이고 입구에서 비선폭포까지는 100m에 불과하다. 코스와 거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입구(비선폭포) →(1.6㎞)→ 등룡폭포 →(1.9㎞)→ 팔각정 →(1.7㎞)→ 삼각봉 →(0.3㎞)→ 명성산 →(2.0㎞)→ 팔각정 →(2.2㎞, 책바위 코스)→ 비선폭포다. 다녀온 후 거리를 계산해보니 9.7㎞(등산 5.5㎞ + 하산 4.2㎞)를 걸었고 먹고 쉬는 시간 포함해 8시간 걸렸다.

 

▲초반 산행 : 비선폭포~등룡폭포~억새밭~팔각정

산정호수 옆 상동주차장에 도착하니 8시 40분이다. 이미 주차장은 만차여서 겨우 한 구석에 주차한 후 식당가를 지나 산행 초입에 도착하니 9시다. 산골이어서 10월 말의 아침이 약간은 쌀쌀하지만 산행 중 기온이 올라가고 습도도 적당하고 청명 쾌청한 날씨여서 산행하는데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일년 중 몇 안되는 최고의 날씨다.

초입에서 100m 정도 지나면 선녀가 노닐었다는 비선폭포가 있다. 계곡을 거의 차지한 암반을 보고 그곳에서 선녀가 놀았다는 스토리를 입혔으나 초입인데다 흔한 계곡 모습이어서 별 감흥이 없다. 비선폭포에서 왼쪽 산길이 책바위 능선이고 직진하는 평지길이 등룡폭포 코스다. 두 길은 억새밭 위 팔각정에서 만난다.

우리는 거리는 길더라도 경사가 덜한 등룡폭포 코스로 올라간다. 길 오른쪽은 계곡의 연속이지만 가을 가뭄 때문에 계류(溪流·산골짜기에 흐르는 시냇물) 수준이다. 팔각정까지 전반부는 돌보다는 흙이 많은 비교적 순한 길이 이어지다가 너덜이 군데군데 깔린 비탈길로 바뀐다.

명성산 등룡폭포 코스

 

길을 걷다보면 오른쪽 계곡에 너른 바위와 무명폭포가 나타나고 계곡 양옆으로 노랗고 붉게 물든 나무들이 저마다 개성을 뽐내고 있어 그것을 감상하며 걸으니 비로소 가을이 왔음을 실감한다. 다만 가을비가 내리지 않아 단풍이 곱지는 않고 바닥에서는 흙먼지가 폴짝폴짝 일어난다. 넓은 계곡에 물이 졸졸졸 흘러 삭막하긴 하나 가끔씩 너른 바위 아래의 이런저런 탕(湯)들에 투명하고 맑은 물이 고여 있어 나름 계곡의 멋을 풍긴다.

그렇게 40분을 걷다 보면 대형 암반 위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등룡폭포다. 폭포 아래 소에 살던 용이 폭포수의 물안개를 따라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가을이어서 잔잔한 물줄기가 암벽을 타고 흘러내릴 뿐 폭포 이미지는 아니다. 그러나 수량 풍부한 여름철이면 세찬 물줄기가 수면에 부딪히는 소리로 사방이 요란할 것이다. 폭포 암반 위에 튼튼한 철제 다리가 있어 폭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도 색다른 맛이다.

등룡폭포에서 30분 정도 오르니 군 사격훈련장을 알리는 경고판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크고 작은 바위 가득한 너덜길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명성산을 억새 명산 반열에 오르게 한 억새군락지다. 비선폭포 초입에서 1시간 20분이 걸렸다.

등룡폭포

 

▲억새밭과 팔각정

억새밭은 명성산 주능선 동쪽의 완만한 사면에 넓게 형성되어 있다. 다가가니 억새가 군무를 추며 은빛 향연을 펼치고 있다. 바람이 불면 은빛 물결이 잔잔하게 퍼져나간다. 다른 억새 명산에 비해 넓지는 않으나 수도권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나마 다행이다. 도시 풍경에 찌들어있다가 은빛 억새밭을 바라보는 눈이 호강한다.

억새와 갈대는 사촌형제쯤 된다. 같은 벼과의 여러해살이풀 한 집안이다. 억새는 산잔등이나 둑길 등 주로 뭍에서 자라고 갈대는 바닷가나 강가의 물가를 떠나지 못한다. 억새는 물가에서도 자라지만, 갈대는 산자락에서 살지 못한다. 갈대가 ‘억센 사내’라면 억새는 ‘조신한 여성’이다. 키도 갈대가 더 크다. 사람보다 훨씬 커서 2~3m나 된다. 갈대꽃은 서로 덩어리져 덕지덕지 엉겨 핀다.

억새꽃은 은발신사 머리처럼 단정하다. 줄기가 여리어 늘 살랑살랑 춤을 춘다. 다만 이름처럼 억센 풀이고 잎 가장자리가 톱니처럼 날카로워 함부로 만지다간 손을 베기 십상이다. 키는 사람과 거의 같거나 작다. 1∼2m 정도다. 억새줄기는 가늘지만 속이 꽉 차 있고 갈대 줄기는 속이 텅 비어 있다.

억새밭 한 가운데에는 억새바람길이, 억새밭 왼쪽 산비탈에는 억새풍경길이라는 이름의 나무데크 길이 조성되어 있다. 억새밭 초입에서 조금 올라간 곳 왼쪽에 홀로 도도하게 서있는 버드나무가 그늘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버드나무가 없었으면 억새밭도 심심했을 것이다. 산속에 버드나무가 자란다는 것은 땅이 습지처럼 물기가 많다는 것이다.

팔각정을 향해 오르다보면 오른쪽 경사면에 너른 데크 전망대가 있다. 등산객들이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맞으며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거나 너른 억새 군락지를 조망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저멀리 아래에서 바라보면 전망대 자체가 하나의 볼거리다. 데크길을 조금 더 오르면 언덕 오른쪽에 ‘궁예약수’ 푯말이 서 있다. “이 약수는 궁예왕의 망국 한을 달래 주려는 듯 눈물처럼 샘이 솟아 예로부터 극심한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었다”고 적혀 있다. ‘음용 불가’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억새밭

 

억새밭 가운데를 관통해 0.7㎞를 걸어올라가면 팔각정이다. 억새밭을 지나는데만 30분이 걸렸다. 그만큼 억새 감상에 정신이 팔렸다는 뜻이다. 팔각정 2층에 올라가면 억새밭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팔각정 옆에 생뚱맞게 ‘鳴聲山(922.6m)’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추정컨대 명성산 정상이 강원도 철원 땅이어서 포천시가 그곳에 영역표시를 할 수 없게 되자 팔각정까지 올라온 사람들만이라도 정상에 올라온 기분을 느끼라고 세워놓았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정상이 아닌 곳에 정상 표지석이 있다는 것은 반칙이다. 정상 표지석 옆에는 빨간색을 한 ‘1년 후에 받는 편지함’이 세워져있다. 10월 한달간만 운용한다.

억새밭의 여름 풍경

 

▲중반 산행 : 팔각정~삼각봉~명성산 정상

팔각정에서 명성산 방향을 바라보면 멀지 않은 곳에 봉우리가 우뚝 서 있다. 이름이 없으니 무명봉이다. 그 봉우리로 올라가는 길 중간쯤에 한 그루의 나무가 사방이 탁 트인 언덕에서 억새밭을 내려다보고 있다. 여름에는 잎이 무성했으나 가을이 되니 줄기만 남은 채 홀로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수십년간 그곳에 버티고 서서 온갖 비바람과 추위를 이겨냈을 것이다.

순간 전지현과 차태현 주연 영화 ‘엽기적인 그녀’(2001년)에 등장하는 소나무가 떠올랐다. 사방이 탁 트인 곳에 있던 영화 속 소나무와 명성산 언덕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나무가 오버랩된 것이다. 나무 아래에 낡고 오래된 벤치가 있어 오가는 등산객들에게 앉아서 쉬고갈 것을 권한다. 등산객들은 벤치에 앉아 억새밭 또는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내겐 그 나무가 명성산의 랜드마크로 보인다.

팔각정과 무명봉 사이에 홀로 서있는 나무

 

이렇게 등산객들의 관심을 끄는 곳이라면 봉우리 이름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팔각정에서 올려다 봤을 때 이 무명봉은 저기만 올라가면 왠지 정상이 곧 나올 것 같은 희망의 봉이자 시각적으로 사진 찍기 좋은 포토존 봉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명성산에는 이런 곳이 몇 군데 더 있어 등산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무명봉을 지나 한참을 가는데 동행한 중년 여성들이 “팔각정에서 기다릴테니 당신들만 다녀오라”며 포기 선언을 한다. 결과적으로 잘한 결정인데 그곳에서 명성산 정상까지는 이런저런 무명봉을 두어개 오르고내리는 구간이 많고 거리도 길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무리해서 정상까지 다녀오다가 체력을 방전했더라면 하산길 책바위 코스에서 꽤나 고생을 했을 것이다.

이후 희용과 나 둘이서만 걸었다. 로프를 잡고 올라가거나 무명봉을 오르고 내리는 곳이 있긴 해도 서쪽(왼족) 자락으로 급경사를 이룬 지형 때문에 막힘없이 펼쳐지는 조망이 압권이다. 산정호수 또한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명성산 능선길에서 내려다본 산정호수

 

오른쪽 동쪽자락으로는 군 사격장의 전체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규모가 엄청나다. 보통 이곳에서는 여러 부대가 참여하는 대규모 사격 훈련이 펼쳐진다. 공중에서는 폭격기가 폭탄을 투하한 뒤 수직으로 날아오르고, 헬기에서는 굉음을 내며 공대지 미사일을 발사하고 기관총을 쏘아댄다. 포병 부대에서는 포탄을 날려대고, 전차포와 토 미사일이 불을 뿜는다.

극히 일부 구간이지만 작년과 올해 희용과 함께 했던 지리산 종주 능선의 축소판 같다는 느낌을 주는 능선도 있다. 아쉬운 것은 능선에는 길을 안내하기보다 오히려 헷갈리게 하는 표지판이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 능선을 걷는 맛은 가을도 좋지만 봄과 여름도 못지 않다. 다만 내 경우 작년 여름 이 능선을 걸어갈 때는 40분간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 때문에 주변을 살펴볼 수 없었다. 천둥번개도 요란해 능선을 걸으면서도 겁이 났다.

명성산 능선. 저멀리 봉우리들은 명성산 삼각봉 궁예봉이다. 그 너머는 철원평야.

 

희용이 능선을 걸으며 내가 알지 못하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나중 알고보니 박두진의 시 ‘하늘’(1949년)에 1972년 서유석이 곡을 붙이고 양희은과 서유석이 홀로 혹은 함께 부른 ‘하늘’이라는 노래다. 희용은 왜 그 노래를 떠올렸을까. 시를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 하늘>
하늘이 내게로 온다 / 여릿 여릿 /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 스미어드는 하늘 /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 초가을 햇볕으로 /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 내가 익는다 / 능금처럼 마음에 익는다

 

실제로 그날 명성산의 하늘은 시에서 노래한 바로 그 하늘이었다. 자연환경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노래가 떠오른다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다.

삼각봉(906m)은 팔각정에서 1.7㎞ 떨어진 곳에 있다. 삼각봉 도착 바로 앞에 ‘여기서부터 강원도 철원입니다’라고 쓰여있는 안내목이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알려준다. 우리는 삼각봉에 바로 오르지 않고 우회해 명성산 정상에 먼저 오른 뒤 귀로 길에 삼각봉에 오를 예정이다. 삼각봉과 명성산 간 거리는 0.3㎞이니 사실상 형제봉이다. 수천년 수만년 세월을 함께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명성산 정상의 봉우리 이름이 없다는 것은 아쉽다.

명성산 정상에 오른 것은 팔각정 위 무명봉을 떠나 1시간 30분 정도 지나서였다. 정상에서 사방을 내려다보니 북서쪽에서는 궁예능선이, 북동쪽에서는 약사령능선이 펼쳐있다. 멀리 철원평야는 누런 황금색 옷을 입고 있다.

명성산 정상

 

▲후반 산행 : 팔각정~책바위 능선~비선폭포

팔각정에 도착하니 두 여성이 반긴다. 그동안 헤어진 시간을 계산해보니 얼추 2시간 40분이다. 두 여성은 그 시간 동안 많은 얘길 나눴을 것이다. 그러면서 대화가 끊길 때는 이 남자들이 왜 안오지 기다렸을 것이다. 사실 두 여성이 살아온 환경은 비슷한 점이 많다. 나이와 학번이 같고 결혼도 같은 해 했다. 첫 아이를 결혼시키는 시기도 내년(2021년) 3월이다. 신혼집을 상계동에서 시작하고 지금은 마포에서 10분 거리에 살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 여성 모두 ‘한 미모’한다는 점이다. 희용과 나는 과는 다르지만 같은 대학을 같은 해 들어가고 30년 이상 언론사에 근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평행이론을 고수하기 위해 더 찾아보면 더 있을지도 모른다.

자 이제 하산이다. 팔각정에서 책바위 능선을 지나 출발지인 비선폭포까지는 2.2㎞다. 거리가 짧은만큼 오르고 내리는 급경사 구간이 많아 험하다. 그러면서도 암릉이 많아 스릴이 있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경사가 더 심하게 보이는 착시가 작용했겠지만 70도 정도 급경사처럼 보이는 곳도 있다.

책바위 코스. 급경사에 험하다.

 

그래서 ‘매우 위험한 길이니 전문 산악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두어군데 있으나 이는 과장이 심한 문구다. 오르내리고 험한 바위길이어서 힘들기는 하지만 군데군데 대책을 마련해 놓아 크게 위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난간 밧줄이 있고 바위를 오르고 내리는데 위험하지 말라고 발 디딤쇠도 있고 길다란 급경사 나무데크도 두어군데 설치되어 있다.

게다가 급경사 암릉 구간이어서 하산 속도가 느리다는 것 말고는 매력적인 점도 많다. 사방에 솟구쳐 올라있는 거대한 암릉과 기암괴석을 감상하고 바위 틈에 뿌리내린 연초록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뤄 피곤한 몸을 달래준다. 덕분에 몸은 피곤하지만 컨디션은 피곤하지 않다.

산정호수는 물론 산정호수를 호위하고 있는 모습의 망봉산과 망무봉도 한 눈에 들어온다. 망봉산(382m)은 멀리서 명성산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같은 산이다. 산정호수 서북쪽 암봉인 망무봉(442m)과 함께 궁예가 올라가 적정(敵情)을 살폈던 곳이라는 설이 전해진다. 중간에 길다란 급경사 데크계단에 않아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맞으며 호수와 산들을 바라보니 행복감이 밀려온다.

책바위 코스 하산길. 멋지다.

 

1년 전 여름 분명히 책바위 능선으로 올라갔는데도 이곳이 낯설다. 생각해보니 그때는 초행이고 급경사이고 무더워서 땅만 바라보며 걸었기 때문에 사방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하산길이 이렇게 힘드니 등산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했지만 조망이 워낙에 좋아 1년 전 힘들었던 상황은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책바위 능선 조망은 확실히 어디에 내놔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 구간이 없었다면 명성산이 전국 100대 명산으로 랭크되는게 간단치 않았을 것이다. 책바위 능선 코스는 등산과 하산을 모두 경험해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책바위는 어디에

하산하던 중 문득 책바위 능선을 등산코스로 삼는게 좋은지, 하산 코스로 삼은게 좋은지가 궁금해졌다. 즉 등룡폭포로 올라가고 책바위 코스로 내려올 것인지 아니면 책바위 코스로 올라가고 등룡폭포 코스로 내려올 것인지의 질문이다. 내가 볼 때 중급자는 어떻게 하든 상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오르고 내리는 것을 모두 경험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반면 초급자는 등룡폭포로 올라가 책바위 코스로 내려오는 것이 좋겠다. 기왕에 명성산에 왔는데 책바위 코스를 놓치는 것은 단언컨대 판단 미스다. 팔각정에서 0.7㎞ 내려간 지점에 비선폭포(→1.5㎞)와 자인사(→1.4㎞)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다.

책바위 능선을 걸어내려가면서 문득 책바위가 어떤 바위인지가 궁금해졌다. 팔각정에서 1.3㎞ 정도 내려온 지점의 왼쪽 위에 거대한 암벽이 우뚝 서 있어 혹시 그곳에 있나 올려다보니 하루 전 블로그에서 보았던, 누군가 책바위라고 올린 사진이 보였다. 동행자들에게 “저것이 책바위”라고 잘난체 하는데 동행자들은 내가 말한 그 바위 좌측 상단에 있는 시루떡을 쌓아놓은 것 같은 바위를 책바위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내가 가리키는 바위는 책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자신이 없어져 하산 후 확인해서 알려주겠다며 얼버무렸다. 집으로 돌아와 책바위 사진을 검색하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궁금증을 풀어준 것이 ‘월간山’지의 박영래 기자다. 그에 따르면 상동주차장이나 산정호수에서 동북으로 올려다보면 책바위 암봉이 보이는데 암봉 왼쪽으로 마치 책을 펼쳐 놓은 듯한 경사진 바위가 책바위다. 포천군 홈페이지에도 수년 전 포천군 영북면장이란 분이 책바위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했는데 박영래 기자가 가리키는 그 바위와 일치했다. 이것을 두고 어떤 기자는 그 바위 이름을 책바위라고 한 것은 이항복, 이덕형, 유응부, 최익현 같은 이들이 벼슬에서 물러나 포천 땅에서 산 것에 대한 긍지의 표현인지도 모르겠다고 살을 붙인다.

산정호수에서 바라본 책바위. 오른쪽 암봉 왼쪽 경사면에 마치 책을 펼쳐 놓은 듯한 경사진 바위가 책바위다.

 

하산 코스 중간쯤부터 산정호수에서 울려퍼지는 고성의 마이크 소리가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내려와 확인해보니 산정호수 놀이기구 운영자의 목소리였다. 조용해야 할 산 위까지 시끄러운 소음이 들린다는 것은 반드시 대책이 필요하다. 산정호수와 명성산은 관광이나 산행을 하는데 뛰어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마이크 고성이 사방에 울려퍼지게 해 1970-80년대 행락지 같은 느낌을 준다면 문제가 있다. 요즘 여행 트렌드는 조용히 산책하는 것이다.

비선폭포로 하산하니 어느덧 8시간이 지났다. 먹고 쉬는 시간 포함해도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나 가을 햇살을 만끽하고 사방을 조망하며 쉴멍놀멍 여유롭게 산행을 했다는 점에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안된다. 사실 2019년 7월 동창들과 산행할 때도 7시간 반이 걸렸다. 소나기 때문에 다소 늦어진 점이 있긴 해도 중급의 남성 등산객으로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다. 결론은 명성산 산행은 여유있게 7~8시간 정도는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영래 <월간산> 기자

말이 나왔으니 박영래 기자에 대해 알아본다. 박영래(73·朴煐來)는 1969년 ‘월간山’의 전신인 ‘등산’ 창간 이후 2020년 현재까지 51년간 산(山)을 취재한 백전노장이다. <월간山>의 산 역사이자 그대로 한국 등산사를 몸으로 써온 사람인 셈이다. 아들 이름을 자일(등산용 로프)이라 짓고, 뒤이어 태어난 딸은 등반용 쇠고리인 카라비나에서 따 와 ‘비나’라고 지을 정도로 산을 사랑했다.

박영래 기자 (출처 월간산)

 

1947년 함흥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 흥남부두에서 배를 타고 남으로 내려온 피란민이다. 가난한 그였지만 모두에게 인정받는 것이 있었으니 그림이었다. 미술 시간이면 선생님의 칭찬을 독점했고 사생대회에 나가면 상을 받아왔다. 재능이 있었고 막막한 세상에서 인정받는 유일한 통로였다.

고등학교에 접어들면서 만화를 그려 조선일보에 투고하기 시작했고 실력을 인정받아 지면에 자주 소개되었다. 당시 제주일보에도 만화를 연재하는 등 제법 인기를 누린 덕에 어린 나이임에도 매달 일반 직장인 몇 배의 돈을 벌었다. 동양제과에 들어가 과자 포장지를 그리는 도안실에서 근무도 하고 광명인쇄공사에서도 일을 했다.

그러다 1969년 <등산>이 창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합류한 뒤 1970년 9월 그의 손에 의해 만화 주인공 ‘악돌이’가 태어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악돌이를 주인공으로 한 <악돌이의 만화산행>이 ‘월간山’에 연재되고 있다. 그는 1980년 산악문화사에서 조선일보로 <월간山>이 넘어갈 때도 자리를 지켰다. 2004년 퇴직했지만 그의 책상은 여전히 산지 사무실에 남아 있다. 객원기자로 여전히 부록지도 코스 가이드와 악돌이 코너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매달 5~6일은 취재 산행을 간다. 거리로는 50~60㎞다. 그것을 기사화하고 등산 지도를 만든다. 그렇게 51년을 이어왔다. (월간산 기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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