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지리산 국립공원] 지리산 20번쯤 다녀왔어도 뱀사골 기점, 반야봉~노고단~바래봉으로 이어지는 1박2일 서북능선 종주(42㎞)는 처음

↑ 만복대에서 바라본 일출 장면

 

by 이희용

 

뱀사골~반야봉~노고단~만복대~바래봉 종주 42㎞

 

■종주 산행에 앞서

 

첫째날 청계산, 둘째날 지리산 반야봉, 셋째날 지리산 서북능선 강행군

2019년 10월 19일(토) 청계산 산행을 마치고 가볍게 뒤풀이까지 마친 우리가 향한 곳은 휴식처인 각자의 집이 아니었다. 우리는 미리 약속한대로 서울 남부터미널로 이동, 전북 남원시 인월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여기서 ‘우리’란 나를 중심으로 대학의 과동기 2명과 과후배 2명이다. 우리는 평소 산행을 함께 하는 신문방송학과의 선후배인데 산행기를 쓸 때는 별명을 사용한다. 나는 희망과용기, 과동기는 산바람, 과후배는 알자지라와 뜬구름이다.

이번 산행은 뱀사골로 올라가 반야봉과 노고단을 거쳐 노고단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날 새벽부터 만복대~바래봉을 종주할 계획이다. 대강의 거리는 42㎞. 노고단~만복대~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능선 길이만도 20㎞가 넘는다. 산행 대장은 알자지라(이하 알 대장)다. 그가 없었으면 40㎞가 넘는 산행이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가는 데까지 가보다가 힘에 부치면 중간에 내려온다”는 생각으로 산행에 동참하긴 했으나 첫날 청계산, 둘째날 지리산 반야봉에 이어 셋째날 지리산 서북능선을 걸어갈 생각을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인월에 도착하니 오후 8시 20분쯤 되었다. 민박집은 가격(2실 7만 원)에 비해 방이 넓고 깨끗했다. 마당으로 나오니 아래로 누운 하현달이 교교한 빛을 내뿜는다. 이곳 지명이 달빛을 끌어들인다(引月)는 뜻이어서 더 밝아 보이는 듯했다. 고려 말 이성계가 달밤에 왜구와 황산전투를 벌일 때 달이 지려 하자 신통력으로 달빛을 끌어들여 적을 섬멸했다고 그런 지명이 붙었단다. 근처에는 달궁마을도 있어 이래저래 달과 관계가 깊은 고장이다.

다음날(20일) 이른 아침 택시를 타고 뱀사골 입구 반선으로 이동, 식당에서 산채백반으로 든든히 속을 채우고 길을 나섰다. 나로서는 1989년 뱀사골로 내려온 뒤 30년 만에 걷는 길이고 친구인 산바람은 초행길이다. 초입부터 한참 위까지 나무테크를 깔아놓아 걷기가 편하다.

☞ 클릭! 지리산 탐방 안내도

 

■첫째날 : 뱀사골탐방안내소~노고단 대피소까지 18.7㎞

 

나뭇잎과 하늘이 연출하는 배색의 조화

계곡이 길고 깊은 만큼 요룡대, 탁룡소, 병풍소, 제승대, 병소, 간장소 등 물줄기와 바위가 빚어낸 절경과 명소가 즐비하다. 위로 오를수록 초록빛 나뭇잎이 노랑과 빨강으로 바뀌어간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갈색 나무줄기, 파란 못과 하얀 포말 등 자연이 연출하는 배색의 조화도 아름답다.

뱀사골

 

처음 코스를 잡을 때 알 대장이 “저도 안 가본 길”이라면서 “뱀사골로 올라가다가 간장소에서 산비탈로 길을 잡아 심마니능선으로 오른 뒤 반야봉으로 가자”고 한다. 나는 “예전에 심원마을에서 자고 반야봉으로 막바로 올랐을 때도 그 길은 비법정탐방로였고, 지난 5월에 갔을 때도 주능선에서 오는 길 반대편은 막아놓았더라”고 말했다. 그래도 알 대장은 계획을 바꿀 생각이 없다. 검색을 해보니 국립공원 탐방로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그 길로 다녀온 산행기는 눈에 많이 띄어 현장에서 판단하기로 했다.

간장소에 이르기 전 안내판을 보니 우리가 가려는 길은 비법정탐방로임이 분명했다. 50만 원 이하의 벌금까지 명시해놓았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알 대장은 간장소 오른쪽으로 난 길을 발견하고는 혼자 얼마간 걷다가 돌아왔다. 알 대장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하지만, 능선길이 험할까봐 걱정하던 산바람은 잘됐다는 표정이다.

반선에서부터 9.2㎞를 4시간여에 걸쳐 오르자 마침내 주능선 화개재(1,316m)이다. 남원 운봉 지역 사람들이 소금을 구하러 넘나들던 고개다. 고단했을 삶의 무게가 어렴풋이 짐작된다. 마침내 한 고비 넘었다는 성취감과 함께 확 트인 조망과 시원한 바람이 느껴진다.

화개재

 

전망대 벤치에 앉으니 옆 벤치에 초등학생 남매를 데리고 온 아저씨가 있다. 말이 아저씨이지 실은 막내동생뻘 쯤 되는 나이다. 단체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며 물어보니 아침에 성삼재에서 출발해 저녁에는 연하천대피소에서 묵을 예정이란다. 아이들도 대견하지만 아빠도 대단하다. 나는 오래전 초등학생 오누이를 데리고 한라산 백록담에 올랐다가 아이들이 “다시는 아빠랑 산에 안 간다”고 하는 바람에 여태 가족 등반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반야봉은 역시 조망의 끝판왕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삼도봉에 오른다. 해발 1,550m여서 계단으로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주능선 가운데 아마도 가장 가파른 길이 계속되는 구간이 아닐까 싶다. 어차피 반야봉(1,732m)에 오르려면 미리 고도를 높여놓는 게 낫겠다고 여기며 한발한발 내딛는다.

삼도봉에 오르니 경남(하동), 전북(남원), 전남(구례) 경계를 알리는 상징물을 세워놓았다. 멀리 노고단이 바라보이고 가까이서 반야봉이 손짓한다. 민주지산의 삼도봉은 충북(영동), 전북(무주), 경북(김천)의 꼭짓점이니 거기가 충청 경상 전라의 진정한 삼도봉인 듯싶다. 이제 내리막길로 내려가다가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반야봉으로 향한다. 오르막길 200m를 더 가니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배낭을 내려놓고 알 대장 배낭에만 점심 해먹을 도구(코펠 버너 가스)와 재료(전투식량 컵밥) 등을 넣고 다시 출발한다. 짐을 지키는 이가 없어도 각자 배낭이 무거우니 가져갈 사람도 없다.

삼도봉 오르는 계단과 삼도봉 상징물

 

올라갈수록 나무 높이가 낮아지더니 조망이 시원해진다. 천왕봉, 노고단과 함께 지리산의 3대 주봉으로 꼽힐 만하다. 정상석 주변에는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이 빼곡하다. 다섯 달 전에 본 대로 출입금지를 알리는 플래카드와 함께 줄이 쳐져 있다. 그래도 취사할 만한 곳을 알아보려고 줄을 넘으니 바로 한 남성이 제지한다. 알고 보니 국립공원공단 직원이었다. 알 대장 말대로 능선을 타고 반대편에서 반야봉에 올랐다면 정통으로 걸릴 뻔했다. 점심 때를 넘겼지만 과자로 간단하게 요기하고 왔던 길을 내려간다.

반야봉 정상표지석. 지리산 주능선을 종주한 5월에 촬영했다.

 

삼거리에서 배낭을 다시 메고 200m를 더 내려간 뒤 노루목에서 주능선과 합류했다. 표지판에는 노루목에서 주능선을 따라 700m 더 가야 반야봉 갈림길이 나오는 것으로 표시돼 있다. 내가 뜬구름에게 설명한다. “삼각형의 두 변의 합은 나머지 한 변보다 커야 하는데 위에 두 변이 각각 200m, 밑변은 700m로 나와 있지.”, “거리 표시가 잘못됐네요.”, “평면으로 보면 삼각형의 공리를 어긴 셈이지만 입체로 보면 맞을 수도 있어.”, “아하! 그러네요.”

사시사철 물이 콸콸 나오는 임걸령 샘에서 다리쉼을 하며 속을 채우기로 하고 부지런히 걷는다. 배가 고프니 기력이 떨어지는데도 발걸음은 빨라진다. 노고단에서 노루목까지가 걷기는 편한데 경치는 별로이다. 세석산장에서 장터목까지가 걷기는 힘들어도 조망이 멋지다.

반야봉에서 바라본 노고단

 

만복대에서 본 장엄한 일출  

임걸령에 이르자 오후 3시쯤이다. 쉬는 중에 1980년대 말 장승 한 쌍을 임걸령 삼거리에 세우려고 했다가 돼지평전 근처 길에 세웠고, 나중에 개신교 신도로 추정되는 사람들에 의해 장승이 잘렸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뒤이어 1990년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3자 정상회담을 지리산 봉우리에서 한 뒤 ‘노고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유래를 설명하자 모두 허탈해하며 빨리 길을 가자고 재촉한다. 노고단대피소까지 남은 거리는 3.5㎞. 앞서 가고 있는 알 대장은 안 보인다.

산바람이 지쳤는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내가 바로 뒤에서 노래를 부르며 응원한다. “굽이굽이 산길 걷다보면/ 한발두발 한숨만 나오네/ 아하~ 뜬구름 하나~” 바로 앞에 뜬구름이 보인다. 나는 지나는 등산객도 없고 길도 평탄해 생각나는 대로 산길에 어울리는 가요와 가곡을 읊조리며 걷는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덧 노고단고개다.

노고단. 5월 촬영

 

오늘도 제 할 일을 마친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기운다. 반야낙조(般若落照)와 노고운해(老姑雲海)가 지리십경(智異十景)에 든다고 하지만 숙박시설도 없고 야영도 못하게 하는 반야봉에서는 낙조를 즐기기 힘들다. 노고낙조도 그에 못지않다고 여기고 일몰을 바라보며 우리끼리 성대한 만찬을 즐긴다.

생수 병에 담아온 소주를 마시려는데 공단 직원의 눈초리가 매서워 보인다. 주변에도 술을 마시는 일행이 안 보이는 듯하다. 조심조심 전전긍긍하며 은근슬쩍 잔에 따라 홀짝홀짝 마신다. 고교 시절 화장실에서 숨어 피우는 담배가 맛있듯이 감시의 눈길을 피해가며 마시는 술이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그날(20일) 서울에 도착해야 하는 산바람이 내려갈 시간이다. 산바람은 혼자 걸어내려가 성삼재휴게소 주차장으로 부른 택시를 타고 구례구역으로 가서 KTX와 SRT를 이용해 귀경했다. 남은 셋은 밥상과 짐을 정리하고 취침 모드에 들어갔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빈자리가 많다. 8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도 온종일 19㎞가량을 걸은 탓인지 금세 잠에 빠졌다.

노고단 고개에서 바라본 반야봉. 5월 촬영

 

■둘째날 : 노고단 대피소~만복대~바래봉~용산리 22.6㎞

 

본격적인 지리산 서북능선 산행

새벽 3시 20분에 길을 나섰다. 기온이 낮은데도 바람이 불지 않아 그리 춥지 않다.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걸어가는데 반대편에서도 두어 팀이 올라온다. 밤기차로 구례구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성삼재에 오른 뒤 산행을 시작하는 등산객들이다. 대단한 정성이다. 그들도 우리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성삼재휴게소에 거의 다와 가는데 뜬구름이 고통을 호소한다. 등산화 신은 발이 아프다며 운동화로 갈아 신겠다고 한다. 신발을 갈아 신으니 날아갈 듯하다고 한다. 등산화는 어차피 발에 맞지 않으니 버리기로 했다가 혹시 누가 필요로 할지 모른다며 성삼재 주차장 길 한켠에 얌전히 놓아두었다.

여명이 시작되려면 아직 멀었다. 맨 뒤에 처진 나는 뒤쫓아가기 바쁘다. 산바람이 있을 때는 뒤처질 걱정이 없었는데 없으니 아쉽다. 길도 제대로 안 보여 몇 번을 헤맸다. 첫 봉우리인 고리봉(1,208m)에 도착했다. 사방이 트여 있는 듯한데 컴컴해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인증샷 찍을 것도 없이 하산을 재촉해 다음 목표물로 향한다. 하산길도 발을 헛디딜까 조심스러워 따라가기 힘겹다. 뜬구름은 그래도 중간중간 나를 기다려주는데 알 대장은 좀처럼 모습을 안 보인다. 묘봉치(1,089m)에 이르렀는데 아무도 없다. 한참을 더 가니 전망대에서 알 대장이 기다리고 있다. 여명이 시작되고 있다. 날은 훤해지고 만복대(1,433m)가 코앞이다. 만복대 뒤편으로 하늘이 붉게 물든다. 마음이 바빠진다. 만복대 동쪽 사면을 오르는 길이라면 오르다가 일출을 볼 수도 있는데, 길이 서쪽 사면으로 나 있어 늦으면 일출 장면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걸음을 빨리 해 뜬구름도 제치고 만복대에 오르니 다행인지 불운인지 해는 공제선 위로 짙게 깔린 구름 속에 숨어 있다. 얼마 후 모습을 드러내며 붉은 햇살을 쏟아낸다. 지난 5월 천왕봉 일출을 본 뒤 다섯 달 만에 감상하는 지리산 일출이다. 그때보다는 못해도 일출은 여전히 감동적이다. 우리 말고는 삼각대를 준비해온 사진쟁이 한 명밖에 없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만복대

 

만복대 아래 바위굴에 자리 잡고 식사

뜬구름의 속도가 눈에 띄게 떨어진다. 내리막길을 걸을 때 무릎이 아프기 때문이란다. 무릎보호대를 채워주니 한결 낫다고 한다. 정령치(1,172m)로 가는 길에서 처음 등산객을 만났다. 월요일이어서 그런지 정말 길이 호젓하다. 정령치휴게소에 도착했다. 성삼재휴게소처럼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주차장에 차 두어 대가 보인다. 뜬구름이 더는 걷기가 힘들다고 한다. 여기서는 차를 타고 내려갈 수 있지만 더 가면 하산길이 더욱 걱정스럽다.

그래서 “우리도 함께 하산해야 하자 않을까?”라고 하자 뜬구름이 “그러면 제가 형들한테 미안해서 안 되죠”라며 만류한다. 알 대장도 “이왕 가기로 한 거 가시죠”라고 한다. 나도 “이번에 안 가면 언제 서북능선을 주파하겠는가”라는 생각에 뜬구름 혼자 내려보내기로 한다. 그렇게 뜬구름은 우리와 헤어졌다. 경황이 없어 제대로 못봤는데 뜬구름이 떠난 뒤 능선을 바라보니 경치가 끝내준다. 왼쪽부터 중봉 천왕봉 촛대봉 명선봉 토끼봉 삼도봉 반야봉 노고단에 이르는 지리산 주능선의 연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고, 오른쪽으로는 뒤에서부터 앞으로 우리가 걸어온 능선이 줄이어 있다.

성삼재나 한계령보다 훨씬 조망이 낫다. 다음에 혹시 승용차를 몰고 근처에 올 일이 있으면 꼭 한번 올라오겠다고 다짐한다. 이제 알 대장과 둘이 걷는 길이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면 그룹사운드 멤버가 한 명씩 이탈하는데 우리 일행을 연상케 한다. 공포영화를 봐도 한 명씩 사라진다. 그것도 꼭 말이 많거나 혼자 자리를 비우는 등장인물부터 악령이나 킬러에게 희생된다.

정령치에서 바래봉까지는 9.4㎞. 거기서 용산리까지 또 4㎞ 남짓 내려가야 한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도 10㎞에 이른다. 5시간 넘게 걸어왔는데 앞으로도 7시간 가까이 걸어야 한다. 알 대장을 쫓아가지 못할까봐 걱정스럽긴 하지만 지리산은 위험한 구간도 없고 길 잃을 염려도 적으니 인내와 끈기로 버텨보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알 대장은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혼자 걷는다. 나도 내 페이스대로 터벅터벅 걷는다.

모처럼 긴 산길을 혼자 걷는 기분이다. 큰고리봉(1,305m)에 이르니 알 대장이 웃통을 벗고 햇빛을 쬐고 있다. 나도 맨몸을 드러내고 바람을 쏘인다. 등산객이 없으니 좋은 점이 많다. 초콜릿 바와 초코파이로 속을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선다. 다음은 세걸산(1,216m)이다. 다른 곳은 끝에 봉이나 대나 단이 붙었는데, 홀로 떨어진 봉우리도 아니고 특별히 더 높지도 않으면서 여기만 왜 산이라고 하는지 의아하다. 이제 바래봉(1,167m)이 훤히 보인다. 그 사이로 작은 봉우리와 고개가 겹쳐 있지만 그리 힘들어 보이진 않는다.

 

마침내 바래봉 정상

세동치와 부운치를 지나니 팔랑치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마지막 목표물인 바래봉까지는 큰 나무도 없고 숲도 없어 시야가 훤하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 표지판이 보이지만 여기서 하산할 순 없다.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산길을 오른다. 조금을 더 걸으니 용산리로 내려가는 길과 바래봉으로 오르는 길의 갈림길이 나온다.

팔랑치에서

 

알 대장이 제안한다. “용산리로 내려가는 길은 돌과 시멘트로 돼 있어 발바닥에 불이 납니다. 차라리 바래봉 넘어서 구인월로 내려가면 어떨까요? 거기서부터 5㎞니까 거리도 많이 차이 안 나거든요.” 내가 단호히 답했다. “발바닥이 아파도 길이 넓게 나 있다면 내려가는 시간은 짧지 않겠나. 그리고 여기에 배낭을 내려놓고 맨몸으로 오르려고 했는데 희망을 꺾지 마라. 원래 계획에 맞춰 체력을 온통 쏟고 있기 때문에 코스를 더 늘리면 내가 못 견딘다.” 배낭를 벗으니 홀가분하다. 나무계단을 오르는데 알 대장이 바래봉 정상 바로 아래 전망대에서 또 웃통을 벗는다. 내가 지나쳐 오르려 하니 “여기나 거기나 전망은 똑같아요”라며 말린다. “그래도 정상석에서 기념사진은 찍어야지”라며 올라가자 마지못해 옷을 챙겨 뒤따라온다.

나무 바닥에 드러누워 하늘을 본다.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든다. 알 대장에게 “네 덕분에 서북능선을 주파할 수 있었네”라고 사의를 표하니 “제가 형에게 고마워해야죠. 저도 혼자서는 올 마음을 못 내잖아요”라며 겸손한 표정을 짓는다.

바래봉 정상에서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 정말 내려갈 일만 남았다. 그 유명하다는 바래봉 샘물을 마신 뒤 배낭을 메고 돌길을 내려간다. 바닥이 딱딱해 불편하지만 그래도 길이 넓고 사람이 없어 둘이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기 좋다. 알 대장은 평소 말수가 적어 속마음을 알기가 어려운데 모처럼 소중한 기회이다. 용산리 주차장에 이르니 4시가 넘었다.

 

대식가는 아니어도 맛집에 관심 많고 욕심 많은 알 대장의 고집

알 대장은 인월에서 동서울터미널 가는 버스가 오후 4시 10분에 있는데 놓쳐서 5시 10분 차를 타야 한다며 안타까워한다. 나는 밥 먹을 시간이 생겨 다행이라고 여긴다. 인월에 도착해 둘러보니 마땅한 식당이 눈에 띄지 않아 그저께 저녁에 들른 음식점에서 곰탕에 소주를 곁들여 먹는다.

이번에도 거의 10시간 만에 제대로 먹는 끼니다. 버스에 타자마자 알 대장이 말한다. “버스가 함양 마천터미널에 15분 섰다가 가는데 그 사이에 먹는 잔치국수가 끝내줍니다.”, “촉박하지 않을까?”, “지난번에 늦어서 버스 기사에게 혼나긴 했는데 괜찮을 거예요.”, “근데 우리 방금 밥도 먹었잖아.”, “안 드시면 후회할 텐데요.”

대식가는 아니어도 맛집에 관심 많고 욕심 많은 알 대장의 고집을 누가 말리겠나. 5시 44분께 마천터미널에 버스가 서자마자 국숫집으로 뛰어갔다. 잔치국수 두 그릇을 주문하니 주인아주머니가 버스 탑승시간을 물어본다. 6시 서울행이라고 하자 손사래를 친다. “그카다 차 놓치뿌면 우짤라꼬예. 물 낋이는 시간도 있고, 국수 삶는 시간도 있고. 안 됩니다.” 알 대장은 몇 번 더 간청하다가 포기하고 도토리묵과 소주를 주문한다.

도토리묵을 몇 점 집어먹다가 그래도 미련이 남았는지 다시 한 번 애원하니 못 이긴 아주머니가 헐레벌떡 국수를 만들어 한 그릇 내온다. 면발도 쫄깃하고 국물도 깊은 맛이 있다. 고명으로는 부추를 올렸는데 이게 특색이 있다. 도토리묵은 몇 점 남겼지만 국수는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들이마신 뒤 차에 올랐다.다행히 출발 시간 전이다.

이제 눈 붙였다가 일어나면 서울일 것이다. 의자를 뒤로 한껏 젖혀 곤한 몸을 눕히니 어제 오늘 걸으며 본 풍경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동서울터미널에 내리니 9시가 넘었다. 두어 시간만 일찍 도착했다면 한잔 더 하자고 졸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제 정신이 돌아와 내일 출근할 걱정이 앞선다. 피로감도 갑자기 엄습한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또다른 대학 동창들과 5일 뒤 토요일 검단산으로 정기산행을 다녀왔다가 하루 쉬고 월~화요일 설악산과 오대산으로 번개 여행을 갈 꿈이 부풀어오르고 있다. 지난달 문경새재길을 걸을 때 경영학과 동기 친구가 내게 묻던 말이 생각난다. “너 내년 퇴직하면 뭐할 거니?”, “일단 좀 쉬면서 놀러 다니려고.”, “뭐? 지금도 뻔질나게 다니잖아. 백수도 너만큼 놀러가는 친구 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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