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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름 가봐수까 ⑤] 물영아리 오름은 ‘람사르 습지’ 중 한 곳… 산 꼭대기에 대규모 분화구가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

↑ 물영아리 오름의 분화구 습지 (출처 제주관광정보센터)

 

☞ 내맘대로 평점(★ 5개 기준). 등산 요소 ★★★ 관광 요소 ★★★

 

by 김지지

 

물영아리오름은 국제 람사르가 지정한 제주의 5개 습지 중 한 곳이다. 산꼭대기에 둘레 300m, 깊이 40m의 습지가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게다가 습지를 바로 옆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습지를 감상한 후 바로 하산하지 않고 2~3㎞의 둘레길을 추가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덤이다.

물영아리오름은 한라산 동쪽에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남원읍 수망리다. 해발은 508m이고, 비고(比高·오름 자체 높이)는 128m다. 입구에는 울창한 삼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소(牛) 목장과 넓은 초지가 자리잡고 있다. 송중기와 박보영이 주연한 영화 ‘늑대소년’(2012년)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물영아리 오름 탐방 지도

 

▲람사르 습지

오름 꼭대기의 분화구는 다양한 습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습지여서 1999년 제정된 ‘습지보전법’에 의해 2000년 12월 전국 최초로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2006년 10월에는 국내에서 5번째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다. 국제적으로는 1648번째다. 람사르 습지는 사라져가는 습지와 습지에 살고 있는 생물들을 보전하기 위해 체결한 ‘람사르 협약’에 의해 지정된다.

람사르 협약은 1971년 2월 이란 람사르에서 채택되고 1975년 발효되었다. 우리나라는 1997년 7월 101번째 국가로 가입하고 2008년 10월 경남 창원에서 제10차 람사르 협약 당사국 총회를 개최한 바 있다. 협약은 국경을 초월해 이동하는 물새를 국제자원으로 규정하고 가입국의 습지를 보전하는 정책을 이행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습지는 바닷물 또는 민물의 간조 시 수심이 6m를 초과하지 않는 늪과 못 등의 소택지와 갯벌로 정의하고 있다.

2021년 현재 국내 람사르 습지는 24곳이고, 세계적으로는 2300여 곳이다. 국내 습지는 지정된 순으로 강원도 대암산 용늪, 경남 창녕 우포늪, 전남 신안 장도습지, 제주 물영아리오름, 울산 무제치늪, 충남 태안 두웅습지, 제주 물장오리오름, 오대산국립공원습지, 강화 매화마름군락지, 한라산 1100고지, 제주 동백동산습지, 전북 고창 운곡습지, 서울 한강밤섬, 제주 숨은물벵뒤, 강원 영월 한반도습지, 순천 동천하구, 순천만·보성갯벌, 전남 무안갯벌, 충남 서천갯벌, 전북 고창·부안갯벌, 전남 신안 증도갯벌, 인천 송도갯벌, 경기 대부도갯벌, 장항습지 등이다. 제주에만 5개 습지가 있는데 그 중 물영아리오름은 습지 생태계의 물질 순환을 연구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분화구 습지. 4월 말이라 물이 말라있다.

 

▲분화구 습지로 오르는 계단길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입구로 들어서면 목장 가장자리다. 그곳에서 오름 입구까지는 오른쪽으로 너른 초지가 펼쳐있다. 초지와 오름 사이는 온통 삼나무다. 오름 진입로에도 하늘을 향해 쭉쭉뻗은 삼나무들이 도열하고 있고, 분화구 습지로 올라가는 급경사 데크계단길 양쪽에도 삼나무가 빽빽하다.

초입에서부터 볼 수 있는 멋진 초지.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저 뒤가 물영아리오름이다.

 

급경사 계단길을 20분 정도 오르니 눈앞이 훤해지는 능선이다. 그곳에서 다시 2~3분 정도 내려가면 함지박 형태의 분화구 습지가 나타난다. 이처럼 분화구 습지는 가까운 편이나 경사가 가파르고 데크가 880개나 되어 노약자에게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계단길이 워낙에 잘 정비되어 있고 중간중간 쉼터도 있어 쉬엄쉬엄 올라가면 못 오를 일도 없다.

물영아리의 타원형 분화구 습지는 둘레 300m, 깊이 40m, 바깥둘레 1,000m이니 제법 규모가 크다. 물영아리 습지는 하천이나 지하수 등이 외부에서 유입되어 생기는 다른 습지와 달리 오직 비와 안개가 물을 공급해 만든 습지다. 분화구 주변은 멸종 위기종인 물장군과 맹꽁이, 210종의 습지식물, 47종의 곤충, 8종의 양서류, 파충류 등 다양한 생물군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이곳 습지에는 제주도의 다른 오름과 달리 목재로 만든 관측소 겸 전망대가 바로 옆에 있어 가까이서 습지를 볼 수 있다.

물영아리오름에 올라간 날은 한겨울인 12월 말과 연초록이 한창인 4월 말이었다. 한겨울에 갔을 때는 습지가 얼어있고 주변이 황량했다. 4월 봄에 갔을 때는 물이 부족했으나 습지 위에서 2마리의 백로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강수량이 많은 때였다면 분화구 습지는 물이 고여 있는 큰 연못일 것이다. 얼핏보기에 평범한 오름처럼 보이지만 물이 많을 때는 연못, 물이 적을 때는 습지여서 제주 오름 가운데 가장 신령스럽고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낼 것이다.

오름 입구로 가는길(왼쪽)과 오름으로 올라가는 데크계단길.

 

▲둘레길(=물보라길)

분화구 습지를 감상하고 오름 주변을 산책하는 탐방길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오름 초입에서 중앙의 가파른 계단(530m)으로 올라가 오름 정상의 분화구 습지를 감상한 후 올라갔던 길 그대로 되돌아 내려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습지를 감상한 후 데크로 조성한 능선길을 거쳐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2~3㎞ 거리의 둘레길을 둘러보면서 내려가는 것이다. 앞의 코스는 1시간이면 족하고 뒤의 코스는 1시간 30분 정도 잡으면 된다.

능선길(480m, 지도에서 하늘색)이 끝나는 지점에 둘레길로 연결된 삼거리가 있다. 오른쪽은 삼나무숲길과 중잣성길을 거쳐 오름 초입으로 원점회귀하는 길(물보라길1, 지도에서 파란색)로 1.7㎞ 거리다. 왼쪽은 2.7㎞ 거리의 둘레길(물보라길2, 지도에서 빨간색)이다. 오른쪽보다 거리가 다소 긴만큼 시간도 더 걸리는데 그래봤자 20분 정도다. 두 길 모두 경사가 완만하고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물보라길은 마을 명칭인 수(水·물), 망(望·바라보다)의 순 한글 이름에서 땄다. 잣성길, 삼나무숲길, 자연하천길, 푸른목장초원길, 소물이길, 오솔길 등 6개의 테마길로 조성되어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걷기 좋다. 나는 두 번 다 오른쪽 둘레길(물보라길1)을 걸었는데 중간에 길게 펼쳐진 삼나무 숲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오는 야만인 숲이 떠올랐다. 물영아리오름 북쪽에는 못이 패여 있지 않고 물이 없어 ‘여문영아리’로 불리는 오름도 있다.

능선길에 빼곡한 삼나무들이 쭉쭉 뻗어있다.

 

▲중잣성

물보라길1을 가다보면 삼나무숲 옆으로 중잣성이 길게 이어져있다. 삼나무숲과 중잣성은 처음에는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다가 어느정도 내려가면 살짝 갈라진다. 삼나무숲을 따라 내려가면 오름 초입을 지나 원점으로 회귀하고  중잣성을 따라가면 탐방안내소로 바로 이어진다.

잣성은 조선시대 제주에서 마을과 목장의 경계용으로 쌓은 돌담을 말한다. 제주 잣성은 위치에 따라 구분한다. 해발 150m~250m 일대는 하잣성, 해발 350m~400m 일대는 중잣성, 해발 450m~600m 일대는 상잣성이다. 하잣성은 말들이 농경지에 들어가 농작물을 해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상잣성은 말들이 한라산 삼림 지역으로 들어갔다가 얼어죽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중잣성은 하잣성과 상잣성 사이에 목장의 경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돌담을 쌓아 축조했다. 따라서 중잣성은 조선시대 제주도 중산간 지역에 국영목장이 설치되었음을 말해주는 역사적인 유물인 동시에 제주도의 전통적 목축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이곳의 상잣성, 중잣성, 하잣성 모두 현존하는 제주도 중산간 지대 잣성 가운데 가장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중잣성은 물영아리 인근에서 쉽게 볼 수 있고 하잣성은 마을 북쪽 농경지와 임야에 지금도 남아 있어 관찰이 가능하다.

물영아리오름
4월 말의 중잣성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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