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루마니아 반공·반독재 혁명 성공… 독재자 차우셰스쿠 대통령은 사흘 뒤 처형

루마니아 제2의 도시 타미시와라는 우리의 ‘5월 광주’였다. 1989년 12월 15일 밤, 정부를 비판하던 이곳의 한 목사가 교회에서 쫓겨날 상황에 처했을 때 신도 수 십명이 교회 앞에서 촛불 시위를 벌인 것이 발단이었다. 악명높은 보안군 ‘세큐리타트’가 투입됐고 신도들은 곧 강제해산됐다. 그러나 이튿날부터 시위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발전하면서 루마니아는 반공·반독재 혁명 물결에 휩싸인 동구권 마지막 국가가 됐다. 규모가 커지면서 최루탄 발사와 곤봉 세례는 총격으로 바뀌었고, 지역은 타미시와라를 벗어나 수도 부쿠레슈티에까지 확대됐으며 참가자는 학생, 지식인, 노동자로 확산됐다. “타미시와라 거리에 시체가 굴러다닌다”는 소문들과 함께 4600명 혹은 1만 명이 죽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훗날 밝혀졌지만 사망자는 1000여 명 정도였다.

20일, 사태의 심각성도 모르고 이란을 방문했다가 급히 돌아온 차우셰스쿠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21일에는 부쿠레슈티의 공산당 중앙위 앞 광장에서 친정부 관제집회가 열렸다. 그러나 집회는 의도와는 다르게 차우셰스쿠의 몰락을 재촉하는 자리가 됐다. 오후 1시, 수 만명 군중 앞에서 차우셰스크가 연설을 시작하자 군중 속에서 야유가 터져나왔다. 일순간 확성기가 고장나 연설이 잠시 중단되는가 싶더니 갑자기 스피커를 타고 녹음된 총성과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영문도 모른 채 집회를 벗어나려는 사람들로 결국 관제집회는 무산됐다.

22일 아침, 차우셰스쿠가 머물고 있는 공산당 중앙위 주변을 몇겹의 인간사슬이 쳐졌고, 시위대 손에는 총이 쥐어졌다. 12시쯤 성난 군중들이 공산당 중앙위 건물로 진입하고 있을 때 갑자기 “타타타” 소리와 함께 헬리콥터 1대가 옥상을 떠나는 모습이 목격됐다. 24년 동안 철권통치를 행사해온 차우셰스쿠가 줄행랑을 친 것이다. 그러나 차우셰스쿠는 그날 저녁 부인 엘레나와 함께 체포돼 25일 오후 4시경 총살됐다. 그날밤 비참한 시신이 TV로 방영되자 곳곳에서 “메리 크리스마스!”가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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