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라디오 방송은 1906년 12월 24일 밤, 캐나다의 레지날드 페센덴에 의해 이뤄졌다. 그러나 초창기의 라디오는 진폭변조(AM) 방식이었기 때문에 전파가 서로 간섭을 일으켜 혼신(混信)이 되거나 잡음이 생겼고, 때에 따라서는 세기까지 달라지는 등 불안정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잡음이 거의 없는 고감도의 새로운 변조방식으로 창안된 것이 오늘날 스테레오 라디오 방송에서 주로 이용되는 주파수변조(FM) 방식이다.
이 방식을 창안한 에드윈 암스트롱은 1933년 12월 26일 재빠르게 특허를 취득하고 RCA에 FM 방식 채택을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TV 개발에 사운을 걸고 있던 RCA에 이 발명품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결국 암스트롱은 대중을 상대로 FM 홍보에 나섰고, 1939년 7월 잡음없는 FM 신호로 첫 방송을 내보냈다. 1940년에 이르러 FM의 잇점을 알아차린 RCA가 기술사용 댓가로 100만 달러를 제안했으나 암스트롱은 과거 자신을 푸대접한데 대한 앙심으로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암스트롱과 RCA 사이에 정면대결이 펼쳐졌다.
당시 RCA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던 연방통신위원회(FCC)는 그때까지 FM 방송에서 주로 사용하던 42~49㎒ 주파수대를 현재 우리의 FM방송이 사용하고 있는 88~108㎒의 새로운 주파수대로 옮기고, 그 주파수대에 RCA의 TV방송 주파수를 허용함으로써 노골적으로 RCA 편을 들어주었다. 이 때문에 수많은 FM방송시설과 수신장치들이 무용지물이 됐다. 게다가 FM 방송기술을 TV 방송에 사용할 목적으로 RCA가 FM을 자신들이 먼저 개발했다고 주장하자 분을 참지 못한 암스트롱은 RCA를 상대로 1948년 FM 특허 침해소송을 제기했다. 분쟁이 5년 넘게 진행되어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게 되자 육체적·재정적으로 막다른 상황에 처하게된 암스트롱은 결국 최악의 길을 선택했다. 1954년 1월 31일 뉴욕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함으로써 소송으로 점철된 고단한 생을 접은 것이다. 오늘날 그는 탐욕스런 대기업에 홀로 맞섰던 고독한 발명가의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