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러시아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 결혼… 왕조 몰락의 전주곡

러시아의 차르(황제) 체제가 몰락한 것은1917년의 ‘10월 혁명’이 결정적이었지만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고질적인 유전질환도 혁명을 앞당기는 데 일조했다. 빅토리아는 9남매를 낳았고 이들이 유럽의 주요 황실과 혼인관계를 맺으면서 인적으로도 ‘팍스 브리태니커’가 구현됐지만, 문제는 이들을 통해 혈우병이 유럽 황실로 퍼졌다는 데 있었다. 혈우병의 특징은, 여성은 병을 물려주는 매개자 역할을 할 뿐 직접적인 고통은 그 여성의 아들이 당한다는 점이다. 빅토리아도 아들 하나를 혈우병으로 잃었지만 고통은 빅토리아의 딸, 손자·손녀, 심지어 증손자에게까지 이어졌다. 막내딸은 혈우병으로 두 아들과 두 외손자를 잃었고, 둘째딸 역시 아들 하나를 혈우병으로 떠나보냈다. 둘째딸은 그녀의 막내딸 알릭스를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에게 시집보내 혈우병 유전자를 러시아 황실에까지 전파했다.

1894년 11월 2일, 러시아 차르 니콜라이 2세와 알릭스가 결혼했다. 알렉산드라 황후가 된 알릭스는 결혼 10년 만에 늦둥이 아들 알렉세이를 낳았으나 아들이 6주 만에 혈우병 증상을 보이면서 불행이 시작된다. 사생활이 문란했던 떠돌이 성자 라스푸틴이 나타나 몇 차례 아들의 병을 낫게 해주면서 황후는 라스푸틴을 절대적으로 신뢰했고 이로 인해 러시아의 내우(內憂)는 중층으로 쌓여갔다. 라스푸틴은 1916년에 피살됐으나 이미 러시아에는 볼셰비키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었다.

1917년의 ‘2월혁명’이 있은 뒤 두마(의회)와 소비에트는 니콜라이를 퇴위시키되 알렉세이를 통한 군주정은 그대로 존속시키기로 합의했다. 12세의 어린 황제를 통해 차르 체제는 연명시키되 무력화시킨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니콜라이 부부가 ‘혈우병에 걸린 아들과 떨어져 살 수 없다’는 이유로 동생 미하일을 다음 황제로 지목하면서 로마노프 왕조는 스스로 몰락을 재촉했다. 미하일이 황제가 된다는 것은 성인 전제군주가 다시 등장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2월 혁명’ 세력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그 해에 ‘10월 혁명’은 일어났고 황제 일족은 이듬해 모두 살해됐다. 부질없지만 알렉세이가 정상인으로 태어났다면 ’10월 혁명’은 늦춰지지 않았을까. 또 로마노프 왕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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