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욤 키푸르 전쟁(4차 중동전) 개전

이른바 ‘6일 전쟁’(1967년)으로 이스라엘에 각각 시나이 반도와 골란고원을 빼앗긴 이집트와 시리아에게, 영토를 되찾지 않는 한 다음 전쟁은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설욕을 준비하던 나세르가 3년만에 사망하고 상대적으로 친서방적이고 온건한 사다트가 이집트의 지도자로 등장하면서 평화정착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사다트는 평화협상과 외교적 노력을 통해 실지(失地)를 회복하려 했으나 이스라엘이 무반응으로 나오자 전쟁을 준비했다.

이스라엘은 수에즈 운하 동쪽에 ‘바레브 라인’을 건설, 이집트의 진격에 대비했다. 바레브 라인은 모랫둑을 높이 쌓은 이스라엘판 마지노선이었다. 이스라엘은 골란고원까지 방어 지대를 강화했지만 아랍 측의 전쟁준비와 점증하는 위협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했다. ‘6일전쟁’ 승리 후 과신과 교만, 그리고 아랍군에 대한 멸시에 빠진 것이 주요 이유였다. 전략개념도 전통적인 공세방어 개념에서 수세반격으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1973년 10월 6일, 이집트군이 수에즈운하와 골란고원 양쪽에서 마침내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이날은 이스라엘의 가장 성스러운 명절인 욤 키푸르(대속죄일)로 모든 노동이 금지되는 안식일이었다. 기습으로 이집트군은 간단히 수에즈운하를 도하해 시나이 반도에 침입했고 시리아군도 골란고원 이스라엘령으로 침투했다. 바레브 라인과 골란고원의 방어선이 쉽게 뚫리면서 골란고원에서는 시리아군의 승리가 거의 눈앞에 다가온 듯했다.

이스라엘은 직접적인 위협 지역인 골란고원에 군사력을 집중했다. 수에즈전선은 150마일의 시나이 사막이 방패가 되었으나 골란고원은 이스라엘 심장부에 근접해 있었기 때문이다. 시나이 전선에서 이집트군은 초고압력 펌프로 바레브 라인을 무너뜨리고는 물밀듯이 운하를 건넜다. 고전하던 이스라엘의 전세 역전이 시작된 것은 10일이었다. 골란고원에서는 이스라엘군이 경계선을 넘었고 16일에는 수에즈운하를 역도하하는데 성공, 전세를 일거에 뒤집었다. 결국 미국, 소련,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따라 10월 24일 무승부로 전쟁을 끝냈으나 곧 충격적인 오일쇼크가 몰아쳐 세계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