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는 언제나 침략 구실이 동원된다. 중·일전쟁과 6·25가 그랬듯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 때도 그랬다. 1차대전 후 독일인들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빼앗긴 단치히(폴란드명 그단스크)와 폴란드 회랑을 되돌려받고 싶어했다. 단치히는 자유시가 되어 사실상 폴란드가 관할하고 있었고, 마치 우리의 비무장지대와도 같은 폴란드 회랑은 폴란드에는 바다(발트해)로 통하는 출입구가 된 반면 독일에는 본국과 동프로이센을 갈라놓은 분단의 땅이었다.
히틀러는 독일인들의 민족감정을 부추기며 폴란드에로의 무혈입성을 노렸다. 눈앞의 짧은 평화에 굶주린 영·불 연합군의 묵인 하에 라인란트에 진주(1936년)하고, 오스트리아와 체코령 주데테란트를 점령(1938년)했을 때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자 히틀러는 결국 무력점령을 결정, 1939년 8월 31일 정오에 ‘전쟁지령 제1호’를 내렸다. 뒤이어 밤 8시 폴란드 군복을 착용한 일군의 무리들이 폴란드 국경에 이웃한 그라이비츠의 한 독일 방송국을 점거했다. 곧 4분 동안 반 독일 메시지가 폴란드어로 방송됐고 뒤이어 요란한 총소리가 들렸다. 괴한들은 마치 습격을 받아 사살된 것같은 시체 한구를 입구에 놓아두고 현장을 떠났다. 이들은 수일 전부터 인근 여관에 잠복해있다가 폴란드 군인으로 가장한 독일의 SS대원들이었다. 폴란드군이 독일 방송국을 점령하고 방송국 직원을 사살한 것처럼 꾸민 히틀러의 대담한 사기극이었던 것이다.
사기극에 동원된 SS대원들도 모두 사살돼 완전범죄에 이용됐다. 밤 9시, 모든 독일 방송국이 폴란드에 대한 히틀러의 위장평화공세를 방송함으로써 치밀했던 히틀러의 사전 준비는 일단락됐다. 이튿날인 9월 1일 새벽 4시45분, 독일군이 3면에서 폴란드 국경선을 침범함으로써 2차대전의 서막이 올랐다. 오전 10시 히틀러의 의회 연설이 있었다. “어젯밤 폴란드군이 우리 영토에 총격을 가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