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8인의 배신자’와 인텔 창업

인텔은 한때 세계시장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며 CPU의 역사를 독점해온 세계 최고기업 가운데 하나다. 1968년 7월 18일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티뷰에 ‘인텔(Intel)’이라고 적힌 간판이 내걸리면서 역사적인 항해는 시작된다. 그러나 진정한 출발은 ‘8인의 배신자’에서 시작된다.

이야기는 벨연구소의 윌리엄 쇼클리, 존 바딘, 월터 브래튼 3명이 트랜지스터를 개발(1947)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19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에 쇼클리는 원만하지 못한 대인관계와 팀원간의 불화로 벨연구소를 떠나 쇼클리반도체연구소를 세웠다. 당시 ‘과학계의 샛별’로 불리는 보브 노이스와 고든 무어 등 20여 명의 젊은 과학자를 영입했으나 쇼클리는 조직을 이끌 만한 위인이 못되었다. 결국 1957년 9월 18일 노이스와 무어 등 8명의 핵심 연구원이 쇼클리 곁을 떠난다. 쇼클리가 ‘8인의 배신자’라며 거친 비난을 퍼부었지만 결과적으로 실리콘밸리에는 새로운 기운이 싹튼 중요한 전기가 됐다. 경력을 쌓아 독립하는 오늘날의 실리콘밸리 풍토가 이 ‘8인의 배신자’들로부터 정착됐기 때문이다. 배신자들은 1957년 셔먼 페어차일드 등과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세웠다. 벤처 캐피털 투자가 실리콘밸리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것이다.

페어차일드는 승승장구했고 8인의 배신자는 8인의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페어차일드의 계속된 간섭으로 그들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1959년부터 하나둘 떠나더니 1968년 노이스와 무어를 끝으로 8인의 배신자도 모두 페어차일드를 떠났다. 두 사람은 다시 창업을 꿈꿨고 인텔이 그 결과였다. 앤디 그로브 등 유능한 인재들을 끌어모은 두 창업자는 메인 프레임용 메모리로 첫 승부를 걸었다. 1969년 첫 메모리칩 ‘3101’을 출시한 이래 10년 여간 메모리 시장은 사실상 인텔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일본 반도체가 저가 공세를 펼치면서 위기가 닥쳐왔다. 그때 그로브의 진가가 발휘됐다. 메모리를 포기하고 CPU만을 생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인텔=CPU’의 등식이 성립하는 새로운 인텔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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