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의 신화는 1975년 시작된다. 그해 막 스무살이 된 하버드대 2학년생 빌 게이츠는 한 잡지에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알테어 8800’에 관한 기사를 보고 대형 컴퓨터의 시대가 저물고 개인용 컴퓨터 세계가 펼쳐지고 있음을 예감했다. 게이츠는 곧 알테어용 언어 프로그램 ‘베이직’을 8주만에 완성하고, 3월에는 단짝 폴 앨런과 마이크로소프트(MS)사를 설립, 신화창조에 박차를 가했다. ‘베이직’이 점차 업계표준으로 자리잡으면서 둘의 명성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갔다.
게이츠가 인생 최고의 기회를 맞은 것은 1980년 7월이었다. 대형컴퓨터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던 ‘컴퓨터 업계의 공룡’ IBM이 PC 사업을 시작하면서 MS를 파트너로 선택한 것이다. IBM은, 기술력은 좋으나 직원수가 15명에 불과한 MS가 장차 IBM을 위협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MS는 자신이 개발한 OS(운영체제)의 소유권을 IBM에 넘겨주는 대신 기술공여(라이센스) 방식을 택해 훗날 PC 시장을 통째로 삼키는 행운을 얻게 된다. 두 회사가 인텔의 16비트칩 8088에 PC-DOS(MS-DOS의 전신)를 장착한 IBM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발표한 것은 1981년 8월 12일이었다.
빌 게이츠의 성공은 MS-DOS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것이지만 다분히 IBM의 오판이 가져다 준 행운이기도 했다. 컴퓨터 분야에서 난공불락의 요새를 구축했다고 과신한 나머지 MS가 MS-DOS를 타사 제품에 공급하지 못하도록 미리 막지 못한 것이 IBM의 실책이었고 비극이었다. PC 수요는 수년 내에 폭발했고, 세계 각국의 컴퓨터 회사들은 MS-DOS를 장착한 IBM 호환기종을 IBM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했다. 흔들거리는 IBM과는 대조적으로 MS는 승승장구했다. MS가 그래픽을 지원하는 윈도우 개발로 방향을 틀었을 때도 IBM은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PC에 관한한, IBM은 서서히 OS 시장을 장악한 MS의 하청업체로 전락해갔다. MS의 성공은 일차적으로 기술의 우수성과 IBM의 오판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물적 감각과 승부근성으로 경쟁 업체를 무자비하게 공략해 나간 게이츠의 사업수완도 큰 몫을 했다. 이 때문에 게이츠에게는 ‘80대의 안목과 10대의 정열을 가진 사람’이라는 찬사와 함께 ‘컴퓨터업계의 불량배’라는 악평이 쏟아졌다. 선택과 집중. 빌 게이츠 성공의 요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