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일본군 러시아혁명 간섭 위해 시베리아 출병

1차대전이 한창일 때 일어난 러시아 10월혁명으로 연합국은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 독일과의 강화조약으로 러시아군이 전선에서 이탈하면 그들과 대치해온 독일군이 서부전선으로 대거 투입될 것이 뻔한데다 자칫 혁명의 불길이 자국에까지 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결국 독일과 러시아 간의 브레스트 리토프스크조약(1918.3)으로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나자 영국과 프랑스는 소비에트 혁명정권에 대해 무력간섭에 나서는 한편 미국과 일본의 동참을 요청했다.

파병을 주저하는 미국과 달리 일본은 공식적으로 파병선언만 하지 않았을 뿐 사실상 파병이나 다름없는 행태를 보였다. 거류민 보호 명목으로 블라디보스토크항에 군함을 파견하고 500명의 육군을 상륙시켰다. 미국에 파병 구실을 준 것은 체코군단의 반란이었다. 체코군단은 1차 대전중 독일군과 한패였던 오스트리아군에 편입돼 러시아와 싸우다가 러시아에 투항, 역으로 대독전(對獨戰)에 투입된 체코인 부대였다. 러시아가 대독(對獨) 전쟁을 중단함에 따라 4만 여명의 체코군단은 시베리아를 빠져나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를 타고 유럽의 서부전선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1918년 5월 시베리아에서 철수하던 중 독일·오스트리아 포로들과 충돌했을 때 소비에트 정부가 자신들의 무장해제를 요구하자 혹시 소비에트 정부가 자신들을 오스트리아로 인도할 것을 우려해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을 돕기위해 반 (10월)혁명 연합군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상륙하기 시작한 것은 1918년 8월이었다. 미국을 포함 연합국은 수 천명씩 파병했으나 일본만은 1918년 8월 12일부터 3개월간 무려 7만3000명의 병력을 상륙시켜 시베리아 깊숙한 곳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일본군은 연합국 대부분이 1920년 8월까지 러시아에서 철수할 때도 현지에 남아 2년 동안이나 계속해 혁명을 간섭했다. 연합국의 무력간섭에 의한 이 시베리아 전쟁에서 러시아는 군·민을 합쳐 수백만명이 죽거나 다치고 곳곳이 파괴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래 치른 전쟁 중 가장 길게 끈 이 전쟁을 통해 약 3500명의 전사자와 그 몇배에 이르는 부상자만을 냈으면서도 러시아에서 별 성과를 얻지 못했다며 이 전쟁을 패배한 전쟁으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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