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스웨덴판 쉰들러’ 라울 발렌베리의 비극적 죽음

라울 발렌베리 이야기는 감동적이나 비극적이다. 그는 오늘날 스웨덴 전체 상장기업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기업 발렌베리 가문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6개국 언어에 능통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사업차 방문한 헝가리에서 유대인의 공포를 목격하면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헝가리 거주 유대인의 운명은 1944년 3월 독일군이 헝가리에 진주하면서 비극으로 내몰렸다. 수개월 동안 25만 명의 유대인이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어가자 미 정부는 중립국 스웨덴에 헝가리 유대인을 구해낼 외교관 추천을 의뢰했고, 스웨덴 정부는 유대인에 이해가 깊은 발렌베리에게 임무를 맡겼다. 발렌베리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1944년 7월 외교관 자격으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마지막 해결사’ 아돌프 아이히만이 유대인 사냥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아이히만은 유대인 구출에 여념이 없는 발렌베리가 못마땅했으나 스웨덴과의 우호관계를 중시한 본국 정부의 지시로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히만은 가능한 한 많은 유대인을 잡아들여 분한 마음을 달래려 했고, 발렌베리는 그에 맞서 유대인을 구출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스웨덴의 비자를 발급하거나 혹은 독일군 사령관을 협박해 아우슈비츠로 보내질 7만명의 유대인을 구한 것은 전적으로 발렌베리가 흘린 땀의 결과였다.

1945년 1월 소련군이 헝가리를 점령함으로써 유대인의 악몽은 끝이 났으나 발렌베리에게는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를 미국의 첩자로 오인한 소련 KGB가 그를 잡아들인 것이다. 이후 55여 년간 소문만 무성한 채 그의 종적이 묘연했다. 진실은, 소련 몰락 후 영국으로 망명한 KGB 요원에 의해 밝혀졌다. 그에 따르면 라울베리는 소련으로 끌려가 회유와 협박 그리고 무차별 고문을 당하다가 1947년 7월 17일 독약이 든 것도 모른 채 약물을 먹고 35세의 나이로 숨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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