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日 ‘제로 전투기’ 해군 전투기로 채택

‘제로 전투기’는 일본이 태양처럼 떠오르고 다시 그 태양이 가미카제와 더불어 태평양 바닷 속으로 곤두박질칠 때까지 일본과 명운을 함께 했던 일본의 대표적인 함상(艦上) 전투기였다. 일본 해군은 1921년 ‘0식 전함’, 1935년 ‘96식 함상전투기(A5M)’를 개발하며 구미 각국의 군사기술을 쫓았으나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중·일전쟁까지 발발하자 신개념의 전투기를 구상했다. 이때 개발돼 일본 해군에 날개를 달아준 전투기가 일명 ‘제로 전투기’라 불린 ‘A6M2’ 전투기다.

전투기는 1940년의 일본 연호가 2600년인 것을 감안해 ‘영식 함상전투기(零式 艦上 戰鬪機·零戰)’로 명명됐다. 제로 전투기는 1940년 7월 24일 일본 해군의 함상전투기로 채택되어 8월 19일부터 중국전에 투입됐다. 제로 전투기가 중국 하늘에 자주 등장하면서 관련 보고서가 수시로 미 정보부에 보고되었으나 미 정부가 일본인(황색인)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보고를 묵살하는 바람에 이듬해 미국은 피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제로 전투기는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 때 진가를 발휘했다. 개전 초기, 속도가 시속 533㎞나 되고 회전성이 뛰어난 제로 전투기 앞에서 미 전투기들은 단지 사냥감에 불과했다. 게다가 일본군 조종사들의 풍부한 실전 경험까지 더해져 제로 전투기는 무적의 신화가 되었다. 1 대 1로 공중전이 벌어질 경우 미 해군의 P-40기가 자기보다 선회능력이 월등히 뛰어나 몸놀림이 민첩한 제로 전투기를 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제로 전투기는 이후 개량을 거듭했으나 전쟁이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강력한 적들이 등장했다. 새로운 기능 추가로 기동성이 떨어진 제로 전투기는 더 이상 태평양의 주역이 아니었다. 그래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가미카제 대원을 태우고 불나방처럼 죽음으로 내달릴 것은 제로 전투기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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