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신부 9명과 수 천명의 가톨릭 신자를 죽음으로 몰고간 병인박해(1866년) 후 프랑스 함대가 보복할지 모른다는 소문으로 조정에는 긴장감이 돌았고 민심 역시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이때 정체불명의 이양선 한 척이 대동강 어귀에 나타났다. 중국 톈진을 출발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였다. 무역선이라지만 대포가 2문이나 장착되고 선원도 24명이나 되는 중무장한 80t급의 증기선이었다.
접근불가를 거듭 경고했지만 셔먼호는 막무가내로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에까지 다다랐다. 사태를 관망하던 평양군민이 격분한 것은 이들을 저지하려는 조선 관리 3명을 셔먼호가 감금하면서였다. 흥분한 평양군민들이 소총과 활을 쏘아대자 셔먼호 역시 포격으로 맞섰다. 탄약이 떨어져 하류로 후퇴한 셔먼호가 줄어든 대동강 수위로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자 평안 관찰사 박규수가 기발한 생각을 끄집어 냈다. 땔감 운반선 3∼4척을 연결한 뒤 인화물질을 가득 싣고 불을 붙여 셔먼호 쪽으로 떠내려 보낸 것이다. 결국 셔먼호는 불타버렸고 선원 역시 전멸됐다. 7월 24일이었다. 대원군은 셔먼호 사건으로 크게 고무돼 문호를 더욱 걸어 잠갔으나 5년 뒤 신미양요를 겪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