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페르디난트 폰 제펠린 제작 ‘경식 비행선’ 첫 비행

1900년 7월 2일 저녁 8시경, “로스!(Let’s go)”라는 명령과 함께 128m 크기의 거대 비행선 한 대가 서서히 하늘로 솟아올랐다. 독일의 페르디난트 폰 제펠린 백작이 제작해 처음 하늘에 띠운 ‘LZ1호’라는 경식(硬式) 비행선이었다. 기구의 몸통 전체를 구조물로 지지하는 경식 비행선은 아무런 구조물 없이 기체의 압력으로만 동체의 형태를 유지하는 연식보다는 더 발전된 형태의 비행선이다. 비행은 30m 지점까지 솟구쳤다가 20분 만에 끝이 났으나 경식 비행선의 가능성을 증명해 보였다는 점에서는 대성공이었다. 또한 비행의 성공은 20세기의 여명에 하늘을 식민지화하려는 각국 간 경쟁에서 독일이 한발 앞섰다는 것을 의미했다.

제펠린의 높은 명성은 1908년 일어난 갑작스런 비행선 사고가 계기가 됐다. 12시간 이상의 장거리여행에 성공한 136m의 LZ4호가 갑작스런 화재로 불에 탔을 때였다. 비행선의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우는 듯했으나 독일인들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면서 발전의 촉매가 됐다. 고무된 제펠린은 비행선 항공사를 설립했고, 이 덕에 1910년부터 1차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3만4000여 명의 독일인들이 비행선을 경험할 수 있었다. 1차대전 때는 런던 공습에 투입됐다. 비행기 기술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비행선만큼 폭격에 적합한 무기는 없었다. 일몰 때는 높은 고도로 밤 하늘을 몰래 비행해 폭탄을 투하했고, 폭격 후에는 새벽의 미명을 이용해 안전하게 귀환했다. 1915년 1월부터 57회나 이어진 비행선의 야간 공습으로 영국은 200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백작은 전쟁이 한창이던 1917년 3월에 죽었다. 그러나 제펠린 비행선은 비행기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 하늘을 지배하는 거대함의 상징이었고 독일인들의 꿈이었다.

1차대전의 패전으로 제펠린호는 제조가 중단되는 비운을 겪었으나 몇 년 뒤 제펠린호에 매료됐던 독일인들이 다시 비행선에 관심을 보이면서 화려한 부활을 예고했다. 1924년 제작된 ‘로스엔젤레스호(LZ126호)’가 대서양 횡단 여객선으로 사용되고, 1928년 제작된 237m 크기의 ‘그라프 제펠린호(LZ127호)’가 세계 공식 투어에 나서면서 대중의 열광은 최고점에 달했다. 나치도 제펠린 비행선의 성공에 기대 ‘국가가 재탄생했다’는 나치의 신화를 띄우는 데 이용했다. 그러나 나치 정권이 제작비를 댄 축구장 두 배 반 크기의 ‘힌덴부르크호(LZ129호)’가 운항 1년 만에 미국 상공에서 불에 타면서 비행선 시대도 막을 내렸다. 이미 비행기는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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