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콩고 독립 선포와 내전

2차 대전 후 아시아를 진원지로 한 식민지 해방의 바람이 아프리카 북부를 거쳐 사하라 사막 남쪽으로 불었다. 한 해 동안 무려 17개국이나 독립해 ‘아프리카의 해’라고 불렸던 1960년은 그 절정이었다. 벨기에의 식민지였던 콩고(콩고민주공화국)에도 독립의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질서 있게 독립을 이룬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폭동, 유혈, 내란 등으로 얼룩져 통일된 독립국가를 이루기까지 5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독립을 전후로, 콩고에서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지향하는 민족주의자 파트리스 루뭄바, 특정 부족을 기반으로 지방분리주의를 주장하는 카사부부, 그리고 구리와 코발트 등 지하자원이 풍부해 백인 자본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카당카주(州)의 모이세 촘베가 각축을 벌였다. 1960년 5월의 총선 결과 루뭄바가 제1당, 카사부부가 제2당이 되었다. 루뭄바는 총리, 카사부부는 대통령이 되어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6월 30일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뒤이은 군대의 반란으로 살인, 강간, 방화 등의 사건들이 잇따르자 벨기에 정부는 잔류 벨기에인들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콩고에 다시 군대를 투입했다. 이는 이미 발화점에 이른 콩고 사태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게다가 촘베가 카당카의 분리독립을 선언하고, 루뭄바의 호소로 유엔평화군이 콩고에 파견되면서 사태는 더욱 복잡하게 꼬여갔다. 미국은 루뭄바를 아프리카의 피델 카스트로로 인식해 루뭄바 제거를 위해 은밀히 작전을 펼쳤다. 군부의 장 모부투가 루뭄바를 가택연금시키고 배후에서 실권을 행사하면서 정국은 더욱 혼미상태로 빠져들었다. 결국 루뭄바는 1961년 1월에 처형돼 세계의 분노를 자아냈고 아프리카 민족주의의 상징이 됐다.
1962년 12월, 유엔군이 카탕카를 완전히 점령하고도 한동안은 혼란스런 상황이 계속되었으나 1965년 12월 모부투가 무혈 쿠데타를 성공시킴으로써 콩고의 유혈참사는 일단락됐다. 그럼에도 모부투의 등장은 신생 아프리카에 만연할 군부통치 시대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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