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뉴욕타임스, 미 정부의 베트남전 개입과정 정리한 ‘펜타곤 페이퍼’ 공개

↑ ‘펜타곤 보고서’를 처음 보도한 뉴욕타임스 기사(1971년 6월 13일)

 

북베트남의 어뢰정이 먼저 미국 구축함을 공격해 전쟁을 촉발시킨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게 사실이 아니라니…. 보복으로 미국이 북베트남에 대량의 폭탄을 떨어뜨린 것도 사실은 오래전부터 계획된 것이었다니…. 1971년 6월 13일자 뉴욕타임스를 펼쳐 든 미국인들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1945년부터 1968년까지 23년간 미국 대통령들의 기만과 속임수의 실상을 그대로 까발린 이날 기사의 1면 제목은 ‘펜타곤 페이퍼로 본 미국의 군사개입 확대과정 30년’이었다.

6면에 걸친 이 엄청난 고발은 대니얼 엘스버그라는 군사전문가의 고뇌와 용기가 없었다면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어야 했다. 1959년 하버드대 박사로 랜드연구소에 들어가 전쟁분석가가 된 엘스버그는 1964년에 1961년부터 7년간 베트남전쟁을 지휘한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사람이 되고 1965년부터 2년간은 베트남에서 근무하면서 뛰어난 전쟁 전문가가 되었다. 1967년에는 맥나마라의 요청으로 지난 20여년간 베트남에서의 미국의 의사결정에 관한 1급 비밀을 한데 모아 ‘맥나마라 보고서’, 즉 ‘펜타곤 보고서’를 만드는 작업에 투입됐다. 그러나 엘스버그는 곧 환상과 오판에서 깨어나 47권 7100쪽에 달하는 보고서 복사본을 1969년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에게 전달했다. 풀브라이트가 미적미적하자 뉴욕타임스의 닐 시한 기자에게 다시 복사본을 전달했다. 평생을 감옥에서 보낼 각오였다. 닐 시한이 3개월간 보고서를 검토하고 분석한 뒤 쓴 것이 바로 6월 13일자 기사였다.

불쾌하게 생각한 닉슨 행정부는 보도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이 이 신청을 받아들여 10회로 계획됐던 연재가 중단된 가운데 국가기밀과 언론보도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재판은 속전속결로 진행됐고 엘스버그는 12가지 죄목으로 115년 형을 선고 받을 위기에 처했다. 닉슨의 측근은 엘스버그의 집을 도청하고 병원진료 기록을 빼내는 등 그를 인격적으로 파멸시키려는 공작을 폈다.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으나 이때의 도덕적 무감각은 1년 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발전돼 닉슨의 몰락을 가져왔다. 미 연방대법원은 1971년 6월 30일, 6 대 3의 평결로 언론자유의 손을 들어주어 명분 없는 베트남전의 종식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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